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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기념관 등 122

[이성자 화실 건물 '은하수' 佛 주목할 현대건축 지정]

[이성자 화실 건물 '은하수' 佛 주목할 현대건축 지정]    1993년 프랑스 남부의 풍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세워진 이성자의 아틀리에 ‘은하수’. 완전히 합일하지 않은 ‘음양’ 의 건물 사이로 시냇물이 흘러 ‘은하수’를 형성하는 이곳에서, 작가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업 의지를 불태웠다. / 이성자기념사업회    이성자 화백의 佛 아틀리에, 프랑스 문화유산 됐다   '음양' 을 모티브로 직접 설계해남부 투레트에 1993년 완공2009년 별세 때까지 지냈던 공간 佛 정부 지원받아 보존될 예정올 10월에 현지서 현판식 열려 1951년 佛로 건너가 예술 활동회화 · 판화 등 1200여 점 남겨    재불 (在佛) 화가 이성자 (1918 ~ 2009)가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 세운 아틀리에 (작업실)가 프랑스..

[간송미술관 내일 재개관]

[간송미술관 내일 재개관]    서화가 11명이 구한말 정치인 민영휘 (1852 ~ 1935)의 망팔 (望八 · 71세)을 기념해 그린 '축수 서화 12폭 병풍' 을 한 관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그동안 낱폭으로 보관돼 왔으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래 하나의 작품이었다는 점이 확인돼 처음으로 12폭 병풍 형태로 복원돼 전시됐다. / 오종찬 기자    최초 공개 36점··· 간송의 보물창고 다시 열렸다   1년 7개월간 보수 · 복원 공사하며발견한 유물 등 6월까지 전시 '1937년 6월 겸재 작품 대금 500원'작품 구입할 때 들인 돈 내역 적은간송의 일기 대장 최초로 공개    1936년 1월 17일 : 현재 심사정의 ‘산수도권’ (보물 ‘촉잔도권’ 으로 추정) 대금 ※문광서림 2000원 1..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4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4          하늘광장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을 넘어 하늘까지 열려 있어 땅과 하늘이 소통하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이다. 낮에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야외전시와 다양한 퍼포먼스를, 밤에는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서 있는 사람들 | 정현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종교를 빌미로 박해받다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한 예술작품으로, 침묵으로 만들어졌다. 무거운 기차가 수백 번, 수천 번 위로 지나가며 부지불식간 짓밟히며 누워있던 침목 枕木이 현재 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하여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이 땅에서 순교한 거룩한 이들과 닮아 있다.       미디어아트 감상..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3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3                2014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_ 광화문 광장 김홍식 87 × 167㎝, 2020      [출처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1984년 103위 시성식 _ 서울 여의도 광장 김홍식 87 × 167㎝, 2017    [출처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1925년 79위 시복식 _ 성 베드로 대성전 김홍식87 × 167㎝, 2017   [출처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1968년 24위 시복식 _ 성 베드로 대성전 김홍식 87 × 167㎝, 2017    [출처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순교자의 문 | 조완희 서소문의 한글초성 ㅅ과 ㅁ자를 소재로 하였다. ㅁ자는 연못을, ㅅ..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2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2       영원을 담는 그릇 최종태 기증전시실 최종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작가는 일평생 창작해온 다양한 작품 가운데 157점을 엄선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하였고 2024년 2월 15일 기증전시실을 열었다.작가는 삶과 종교, 예술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인간' 이라는 소재를 통해 탐구해 온 한국 현대 조각계의 거장이다. 또한 한국 현대조각 내 또 하나의 흐름으로서 가톨릭교회 조각이 현대화, 토착화될 수 있도록 앞장서 온 선구자이기도 하다.          성모 나무에 채색2023       영원을 담는 그릇 한국 현대 조각계의 원로 최종태 (崔鍾泰, b, 1932,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작가는 시민들이 자신의 작품을 일상적으로 만나기를 바라며 일평..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1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01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5 관람 시간 : 화요일 ~ 일요일 09 : 30 ~ 17 : 30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 추석 당일관람료 : 무료단체 관람 : 10명 이상의 단체는 사전 예약주차 시간 : 06 : 00 ~ 23 : 00홈페이지 : https://www.seosomun.org  오래전부터 '서소문 밖 네거리' 로 불리어 온                      이 공간 속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흐름이현재 지상 서소문 역사공원과 지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되어 오늘의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첫 번째 ㅅ은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두 번째 ㅅ은 대지의 길을 걷는 순례자를, 마지막의 ㅁ은 순교의 정신을 ..

[농협 농업박물관] 02

[농협 농업박물관] 02 초기 농경의 시작 신석기시대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면서 식량을 직접 생산하였으며 물과 먹을 것이 풍부한 바닷가나 강가에 움집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기원전 4,000년 무렵에는 평양 남경, 황해도 지탑리 등 중서부 지방을 중심으로 조, 수수와 같은 잡곡의 재배가 시작되었다. 돌괭이나 돌보습 등 간석기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원시적인 밭농사를 지었다. 당시에는 산이나 들에 불을 지른 뒤 땅을 개갠하는 화전 火田 위주의 농사였다. 여전히 사냥과 채집이 생계를 위한 주된 활동이었으나 자연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이전의 생활방식에서 직접 생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초기 농경의 의..

[농협 농업박물관] 01

[농협 농업박물관] 01 관람안내 관람시간 화 ~ 일요일 (하절기) 3월 ~ 10월 : 09 : 30 ~ 18 : 00 (동절기) 11월 ~ 2월 : 09 : 30 ~ 17 : 30 입장마감시간 17 :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 설 · 추석 연휴, 근로자의 날 관람료 무료 교통안내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버 스 농협중앙회, 서대문역사거리, 적십자병원 정류소 주 차 인근 유료 공영주차장 이용 문의 TEL 02ㅡ2080ㅡ5727 ~ 8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16 농협 농업박물관 www.agrimuseum.or.kr 작가명 : 송은영 (宋恩英) 작품명 : 농도불이 (農都不二) ㅡ 비전 제작년도 : 2005. 5. 연자방아 硏子磨 소나 말을 이용하여 곡식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

[화교역사관] 01

[화교역사관] 01 니하오 ! 나의 살던 고향은 화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2년으로, 임오군란 때 한국에 파견된 군대를 따라 40여 명의 상인이 입국하였는데 이들이 한국화교의 시초이다. 그해 '상민수륙무역장정 (商民水陸貿易章程)' 을 체결하고 1884년 인천, 1887년 부산, 1889년 원산에 화상조계지 (華商租界地)가 설치됨에 따라 당시 화교 수는 인천에만 1,000명을 넘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화교들이 살고 있는 마을 앞에는 패루를 세웠다. 이것은 마을의 영역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마을 외부로부터 나쁜 것을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지녔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도 중국 산동성에서 기와와 재료를 가져와 지었던 인천역 앞 제1패루 외에도 한중문화관 앞에 제2패루 (인화문),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한중문화관] 07

[한중문화관] 07 차이나타운 中華街 이국적 정취가 숨쉬는 화교의 본거지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4년 4월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된 후로 화교들이 몰려와 생성되었습니다. 북성동, 선린동 일대의 5천 평에 청국의 영사와 학교가 설치되고, 중국의 산동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영되면서 화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화교들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식료잡화, 소금,곡물을 팔고 우리나라의 사금 등을 중국으로 보내어 상권을 장악하고 세력을 넓혀 나갔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청관의 상권이 마비되면서 화교들은 대만, 미국, 동남아시아로 떠나고, 일부는 요리집과 잡화상들을 운영하거나, 일부는 부두근로자로 전락하기도 했답니다. 1948년 한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각종 제도적 제한,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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