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IER DEBRÉ : MINDSCAPE 올리비에 드브레 : 마인드스케이프] 02
[OLIVIER DEBRÉ : MINDSCAPE 올리비에 드브레 : 마인드스케이프] 02
무제
Untitled (Sans Titre)
연도미상 (1946 추정)
Undated (c. 1946)
종이에 수묵
Indian ink
49.6 × 65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무제
Untitled (Sans Titre)
연도미상 (1946 추정)
Undated (c. 1946)
종이에 수묵, 과슈
Indian ink and gouache on paper
50.5 × 65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죽은 자 와 나치의 사악한 미소
The Dead and the Nazi's Sadistic Smile
(Le Mort et le Sourire Sadique du Nazi)
1946
종이에 목탄, 수묵
Charcoal and Indian ink on paper
74 × 59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나치의 사악한 미소
The Nazi's Sadistic Smile
(Le Sourire Sadique du Nazi)
1946
종이에 목탄, 수묵
Charcoal and Indian ink on paper
62 × 47.5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무제
Untitled (Sans Titre)
1946
종이에 수묵, 과슈, 금칠
Indian ink, gouache and golden painting on paper
47.8 × 63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무제
Untitled (Sans Titre)
연도미상 (1946 추정)
Undated (c. 1946)
종이에 수묵
Indian washdrawing on paper
20.8 × 26.9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무제
Untitled (Sans Titre)
연도미상 (1946 추정)
Undated (c. 1946)
종이에 잉크, 목탄
Ink and charcoal on paper
26.7 × 20.8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무제
Untitled (Sans Titre)
연도미상 (1946 추정)
Undated (c. 1946)
종이에 잉크, 목탄, 색연필
Ink, charcoal and coloured pencil on paper
26.7 × 20.8 ㎝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 소장, 투르, 프랑스
Centre de Création Contemporaine Olivier
Debré ㅡ CCC OD, Tours, France
풀밭 위의 소녀
Little Girl in the Grass
(Petite Fille dans l'herbe)
194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46.5 × 61.5 ㎝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풀밭 위의 소녀
Little Girl in the Grass (Petite Fille dans l'herbe)
1940
<풀밭 위의 소녀> (1940)는 올리비에 드브레가 전쟁기에 투렌 지방에 머물며, 제작한 작품이다. 드브레는 1937년 에콜 데 보자르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건축과에 입학한 후에도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곤 했다. 학교의 아카데믹한 교육은 현대적인 창작과 동떨어져 있었고,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가족이 흩어지면서 그는 혼란과 외로움을 느꼈다. 전쟁기 동안 드브레는 투렌 지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고, <풀밭 위의 소녀> 또한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흐릿한 얼굴에 윤곽이 없는 인물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의 기법과 색채 모두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1941년 파리에서 전시된 이 작품을 본 피카소가 그의 작업실에 드브레를 초대하며 교류한 바 있다.)
Section 1. From Encounter to Abstraction
1부. 만남, 추상으로
1부에서는 올리비에 드브레의 학창 시절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미술과 건축에 흥미가 있던 드브레는 17세에 파리에 에콜 데 보자르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한 후, 현대 건축의 선구자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의 작업실을 다녔다. 하지만, 1940년대 초부터 그는 미술로 전향하여 회화에 전념하고 1941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당시 그는 인상주의에서 파생된 구상 방식의 그림을 그렸으며, 이는 <풀밭 위의 소녀> (1940)의 흐릿한 얼굴과 뭉개진 윤곽에서 쉽게 확인된다. 이 시기 또 다른 전환점은 파블로 피카소 (Pabro Picasso)와의 만남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입체주의를 알고 있던 그는 피카소를 만나 추상화에 더욱 관심이 깊어졌으며,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 투렌 지방 (중심 도시 투르)에서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시기에 점차 추상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 중반에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대한 공포와 충격을 작품에 담았다. <살인자, 죽은 자와 그의 영혼> (1946), <거울 속의 검은 추상화> (1946) 등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암시하는 형태의 요소들이 화면에 드러난다. 1950년대에는 사각 형태의 두꺼운 붓 터치를 수직으로 배열한 형상이 점차 추상화되면서 <기호 인물> 연작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부에서는 올리브 드브레의 작품과 함께 유기적으로 배치된 자료 영상과 사진 등을 살펴보며 작가의 완숙한 전형이 완성되기까지 그 탐색의 과정을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1920 ㅡ 1930년대
올리비에 드브레는 1920년에 프랑스 파리의 의사와 예술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에 그는 투렌 지방에 있는 어머니의 집에서 휴가를 보내며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곤 했다. 1937년 드브레는 파리 세계박람회 스페인관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1937)를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건축가가 되고자 파리 에콜 데 보자르 건축과에 들어갔으나, 1940년대 초반 회화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1937년 11월 저명한 건축가이자 올리비에 드브레의 외삼촌인 자크 드바 퐁상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의 스튜디오에서 에콜 데 보자르 건축과 학생들과 드브레 (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1940년대
1941년 드브레는 파리에 위치한 조르주 오브리의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몇 점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인상주의에서 파생된 구상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피카소가 그의 작품에 주목하며 교류하게 되었다. 1942 ㅡ 1943년 겨울에 피카소의 작업실에 몇 번 방문했던 드브레는 이때의 영향으로 자신의 회화가 구조적인 면에서 변화하게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 (1940 ㅡ 1944)동안 고립된 채 연구하면서 점차 추상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드브레도 상징 혹은 '기호' 를 그림에 도입했고, 1945년에는 주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일들에 대한 공포심을 표현한 드로잉 작업을 했다. 각진 형상을 리드미컬하게 구성한 1940년대의 작품은 드브레가 사실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점차 추상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며, 1949년에 파리 빙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 출품작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드브레는 1949년 <기호 인물> 시리즈를 처음으로 시도하게 된다.
<기호음악가 Sign Musician> 1948
1950년대 초반
1950년대에 드브레는 파리의 살롱 드 메와 살롱 도톤느, 살롱 독토브르 등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살롱에서 한스 아르퉁, 제라르 슈나이더, 세르주 폴리아코프, 마리아 엘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니콜라 드 스탈, 자오 우 키 등 서정 추상의 주요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시기에 드브레는 사각형 형태의 두꺼운 붓터치를 개발해 화면에 수직으로 배열하기 시작했고, 이는 건축적인 구성을 만들어내며 웅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호 인물>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간 형상은 점차 추상화되어 갔고, 대개 늘어진 직사각형 형태와 어둡고 탁한 색상을 띠었다. 이러한 특징은 1950년대 이후의 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판화와 드로잉에서는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 1953년에 그는 <기호 인물> 시리즈를 그만두고 <기호 풍경> 시리즈를 시작했으며, 석판 인쇄가 가진 많은 가능성을 알게 되어 지속적으로 석판화를 제작했다.
1951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올리비에 드브레
1950년대 후반
1959년 드브레는 뉴욕 노들러 갤러리 개인전에서 표면에 물감을 쌓아 올린 밀조 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이 시기에 그는 물감의 층을 얇게 하고 밝은 색상을 사용하는 새로운 회화 방식을 실험했다 드브레는 미국 여행 중에 다채로운 빛을 발산하는 대형 회화 작업을 하던 마크 로스코를 만나기도 했다. 이 만남이 드브레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여행과 더불어 "레 마데르" 의 아틀리에와 카샹의 정원에서 자연을 접한 그는 확장된 형식 안에서 더욱 다양한 제스처를 발전시켰다.
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프랑스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는 비구상미술 작가들은 '누벨 에콜 드 파리' 로 일컬어졌고, 드브레 또한 1960년 《에콜 드 파리》를 포함한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며 그 일원으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1964년 드브레는 프랑스 멍통에서 열린 회화 비엔날레에서 일등상을 수상했다. 1966년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그는 이후에도 자주 노르웨이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렸다. 같은 해 르아브르의 미술관에서 열린 《올리비에 드브레 1943 ㅡ 1966년의 회화》는 드브레가 프랑스에서 갖는 첫회고전이었다. 이 전시는 드브레의 커리어 전반을 되짚으면서 점차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 과정과 다채로운 기법의 변화를 보여주었으며, 처음으로 몇 점의 드로잉을 소개했다. 하단과 대중의 인정을 받은 그는 더 거대하고 건축적인 작품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1967년에 드브레는 '인간과 세계' 를 주제로 개최된 몬트리올 세계박람회 프랑스관에 참여해 5 × 2.5m 크기의 <기호 인물>을 선보였다.
1970년대
1970년 드브레는 도쿄 첫 개인전을 위해 일본을 여행했으며, 교토의 일본 정원과 서예에 관심을 가졌다. 같은 해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박람회 유럽관에 참여한 그는 4 × 18m 크기의 거대한 도자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드브레는 1974년 노르웨이 레르달에서, 1976년 웨일즈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여행을 바탕으로 한 회화 작업을 지속하면서 건축물을 장식하기 위한 여러 커미션 작업을 진행했다. 1975년 시농에 있는 라블레 고등학교에서의 작업이 그 예다. 1970 ㅡ 1980년대에 그의 제스처는 더 자유로워졌고, 작업의 크기도 커져 5 ㅡ 6m 너비의 대형 캔버스가 빈번히 사용되었다. 드브레는 매우 묽은 물감이 캔버스 표면 위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면서 투명한 색채를 표현해냈다.
1980년대
드브레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에콜 데 보자르의 벽화 스튜디오의 대표 교수로 임명되어 교편을 잡았다. 1985년에 프랑스 문화부장관 자크 랑의 의뢰를 받은 그는 파리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막을 제작했다. 10 × 13m 크기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500㎡의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드브레는 항공사에서 두 달간 빌려준 격납고에서 작업하면서 신체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제스처를 확장해갔다. 이 시기의 사진에서는 그가 대형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제작한 긴 빗자루를 들고 색에 둘러싸인 듯 거대한 캔버스 위를 걸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89년에 드브레는 루이비통 재단의 지원으로 홍콩 오페라하우스의 극장막을 제작했으며, 1998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새롭게 지어진 오페라하우스의 극장막을 제작했다.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 (CNAP)의 <올리비에 드브레 : 2023년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막 복원에 대한 최고> 영상 중 1987년 극장막을 제작하는 올리비에 드브레 (좌)와 2023년 복원을 마친 극장막 (우)의 모습
1990년대 초반
투렌 지방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드브레는 투르에 위치한 현대창작센터와 관계를 맺었다. 1990년에 센터는 이듬해 여름에 열릴 전시를 위해 드브레에게 전시장의 벽에 어울리는 작업을 의뢰했고, 그가 제작한 6점의 회화 중 4점이 전시되었다. 이 작품들은 4 × 9.15m 크기로 그의 유화 중 가장 크며, 5점은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에서, 1점은 룩셈부르크의 유럽투자은행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2018년에 센터에서 열린 《올리비에 드브레의 수련》에서 처음으로 함께 공개되었다. 드브레는 1992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샤를 드골 기념공원을 위한 조각 작업, 1993년 프랑스 툴루즈의 아렌느역을 장식하는 작업 등 다양한 커미션 작업을 진행했다.
2018년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에서 개최된 《올리비에 드브레의 수련》 전경
1990년대 후반
1995년에 미술사학자이자 주 드 폼 내셔널 갤러리의 관장이었던 다니엘 아바디는 이전에 여러 차례 협업했던 드브레의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다. 이 전시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제작된 드브레의 작품 60여 점을 한데 모아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진 다양한 표현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드브레가 제작한 여러 커미션 작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사인>이다. 미국의 안무가 캐롤린 칼슨이 창작한 발레를 위해 드브레는 모든 무대와 의상을 제작했으며, 무대는 그의 회화를 참조한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은 1997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여러 차례 재연되었고, 지난해 (2023년)에도 재연되어 화제를 모았다. 올리비에 드브레는 1999년 3월 17일 프랑스 아카데미 회화 부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6월 1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무제 (형상) Untitled (Form)> c. 1998
올리비에 드브레의 아틀리에
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드브레는 자신이 경험한 풍경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넓은 색면을 사용해 화면을 거칠게 구성하는 표현 방식을 발전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행위적 추상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드브레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도 루아르 강변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투르 근교에 위치한 레 마데르 아틀리에에 자주 머물렀다. 바다 접경 지역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레 살랭의 지중해 해안가와 생 조르주 드 디돈의 지롱드 강 하구에도 아틀리에를 두었다.
레 마데르 아틀리에 사진
레 마데르 위치 (좌) / 생 조르주 드 디돈과 레 살랭의 위치 (우)
https://www.youtube.com/watch?v=Tvr9ksxHD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