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MEMORY OF YOU] 01
[기록 MEMORY OF YOU] 01
기록
MEMORY OF YOU
광복 80주년 기념 공동기획전
2025. 05. 01 ~ 07. 0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3층
만 명의 엽서,
특별한 날의 기억
우리 모두에게는 기념하고 싶은 특별한 날들이 있습니다.
생일, 소중했던 만남, 바라던 것을 이뤄낸 순간 등...
소중한 기억을 엽서에 적어 우체통에 넣어보세요.
여러분의 특별한 기억을 배달해드립니다.
공동기획
국립청주박물관 관장 이양수
국가기록원 원장 이용철
대만민국역사박물관 관장 한 수
자료협조
강원일보, 고베영화자료관, 광주일보,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 대한체육회, 독립기념관,
동아일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 빙그레, 손기정기념관,
우리나비, 이승준, (주) 창비, 통일부 UNI TV, 한국정책방송원,
한글학회, 5 · 18민주화운동기록관, KBS, 한국 기계연구원 (폰트)
전시를 열며
우리는 매일 기록합니다. 기록하지 않고 지나가는 하루가 있을까요? 우리가 남긴 기록이 쌓여 역사가 되었고, 문명이 발전해가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인 구석기 눈금돌이 충청북도에서 발견되었습니다.기록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향도 충북입니다. 2024년, 국립청주박물관은 '기록의 고장' 충북을 조명하여 '기록' 을 통해 '나' 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기록, Map of You》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국가기록원이 이 여정에 함께합니다. 국립청주박물관이 보여준 '기록의 여정' 에 광복과 현대사의 주요 기록을 더해 《기록, Memory of You》라는 확장된 이야기를 여러분께 새롭게 소개합니다. 우리의 하루, 우리의 기록이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지 기록의 여정을 지금 함께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Prologue
과거로부터의 수수께끼
수십 개의 눈금을 새긴 돌이 있습니다. 3 ~ 4만 년 전에 누군가 남긴 기호입니다. '김생' 이라는 글씨를 새긴 거울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당시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남긴 흔적이겠지요.
어떤 날의 흔적인지 의문을 자아내는 달력이 있습니다. 초보 부모가 남긴 육아일기를 읽다보면 이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집니다. 기록의 흔적을 따라 가다보면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기록을 남겼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 이 수수께끼의 단서를 찾을 날이 오겠지요.
종이 이전의 지우개
초기 철기 | 국립청주박물관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나무로 만든 '목간' 에 글을 썼습니다. 실수했을 때는 나무를 깎아 글씨를 지웠는데, 그때 사용한 도구가 바로 이 동사 銅鉈입니다. 지우개처럼 쓰였던 이 유물은 문자 생활이 이루어진 시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눈금이 새겨진 돌
구석기 | 국립청주박물관
구석기 사람들이 남긴 눈금돌입니다. 사람들은 돌에 새겨진 이 눈금에 대해 사냥한 동물의 숫자나 집단의 사람 수, 날짜를 세는 단위 등을 기호화한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의도적으로 기하학적 선을 새긴 이 돌은 동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눈금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단단한 돌에 눈금을 새긴 이유는 이 기록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생 金生이 새겨진 거울
고려 | 국립청주박물관
거울 가운데에 '김생' 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공이 共二' 와 '신씨 남편과 홍씨 아내의 백년해로를 바란다' 는 글도 새겨져 있습니다. '공이' 는 짝이 있음을 뜻해, 이 거울과 짝을 이루는 또 다른 거울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생이라는 글이 유독 진한 것은 그가 이 거울의 마지막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세 성씨가 얽힌 이 거울, 이들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제시의 일기』외손녀 김현주 정리
제시를 위한 사랑의 기록
일제강점기
첫 아이를 키우는 초보 부모의 애정이 담긴 일기입니다.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랐는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네요. 아이의 이름은 제시입니다. 1939년 7월에 첫돌을 맞았습니다. 부모의 이름은 양우조와 최선화, 이들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부부였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아이에 대한 기록을 잊지 않았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
언젠가 제시가 이 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제시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부모된 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기쁨을 계속 전하는 사람이 되어 가기 바란다.
”
ㅡ 제시의 일기 중 ㅡ
시간이 멈춘 달력
1950
소유자를 알 수 없는 이 달력에는 김주경 작가가 1936년에 그린 수채화 <가을의 자화상>이 담겨 있습니다. 달력의 시간이 5월 27일에 멈춰있습니다. 이 날은 무슨 날이었을까요? 단기 4283년은 서기 1950년이었습니다. 1950년 5월, 6 · 25전쟁 한 달 전이었습니다. 달력의 주인은 왜 그 다음 날로 넘기지 못했을까요?
아이가 그린 평온한 하늘
1951
나무 주변에 새가 지저귀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날아가고, 태극기가 펄럭입니다. 어느 평온한 날의 일상일까요? 그림을 그린 아이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1951년, 6 · 25전쟁이 한창이던 당시의 그림입니다.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을 그렸을까요.
1
기록의 힘
기록이 곧 힘이자 권력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문자를 알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자가 지식과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권력이나 통치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소수가 기록하는 시대를 지나,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다수의 목소리가 기록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기록을 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중요한 것으로 남길지 정합니다. 한 자 한 자 새겨진 이 기록들에는 당시 사람들이 잊지 않고 지키고자 했던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과거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록의 힘입니다.
| 다스림의 미학
신라의 새로운 다짐, 단양적성비
신라 | 국립청주박물관
단양 신라 적성비의 탁본입니다. 6세기 진흥왕 때 세운 이 비석은 고구려 영토였던 단양 지역을 차지한 신라가 이 지역의 민심을 다잡기 위해 남긴 기록입니다. 신라에 충성한 이들을 포상하고, 앞으로의 충성도 약속받고자 했습니다. 새 영토를 차지한 자신감과 백성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효종이 송시열에게 보낸 비밀편지
조선 | 송정훈 소장 | 국립청주박물관 수탁
송시열을 신임했던 효종은 당시 정치현안과 청나라 정벌계획 등을 송시열과 비밀편지로 긴밀하게 논의했습니다. 효종과 송시열은 '물을 만난 물고기' 에 비유될만큼 가까운 사이였지만 청나라 정벌의 방향성에서는 입장이 달랐습니다. 국정을 이끌기 위한 두 지도자의 깊은 고민이 드러납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는 서로 마음을 아는 것이 귀중한 것이니 이후로는 멀리하는 말투를 쓰지 말고 성실하게 힘써줄 것을 바라노라.
비밀편지로 가르침을 준 말은 더욱 나의 뜻과 같다.
정천의 호적등본
조선 | 국립청주박물관
한양부에 살던 정천이라는 사람의 호구 증빙 문서로, 1681년에 발급받은 것입니다. 정천과 그의 아내 청송 심씨의 호구 사항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의 대다수 분량을 차지한 것은 노비 148 명의 이름입니다. 당시 노비는 재산에 속했기 때문에 소유권 증명을 위해 상세히 적었습니다. 심지어 도망간 노비들의 이름도 적혀있는데, 왼쪽 윗부분에 띠처럼 도드라진 부분은 '네금이' 라는 노비가 도망간 내용을 덧붙인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찾아올 수 있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철저히 이름을 적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노비의 삶이 느껴지는 자료입니다.
신라촌락문서, 백성의 삶을 기록하다
통일신라 | 국립청주박물관 | 복제
통일신라 시기 서원경 (현 청주) 4 개 마을을 조사해 작성한 이 문서에는 성별 · 연령별 인구, 마을의 토지 · 가축 · 과일나무의 변동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지배체계와 함께 백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송시열 후손들의 호패
조선 | 송정훈 소장 | 국립청주박물관 수탁
송시열 宋時烈과 그의 후손 송환세 宋煥世, 송택규 宋宅圭의 호패입니다. 호패는 조선시대 16 세 이상의 남성이 소지해야 했던 신분증으로 국가에서는 인구 파악과 세금 징수를 위해 호패법을 실시했습니다. 호패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신분이나 관직 이력, 거주지, 제작 연대 등이 기록됩니다. 송시열의 호패는 그가 75 세 되던 1681년에 발급된 것으로 태어난 해인 '정미생 丁未生' (1607), 관직에 들어간 시기인 '계유입사 癸酉入仕' (1633)가 새겨있습니다.
萬曆壬辰正月 造別樣七斤二兩 藥五戔 匠俊金水上
만력 임진 (1592년) 정월에 이전과 다른 형태로 제조했는데, 무게는 7 근 2 량이며 화약은 5 전을 쓴다. 장인 준금이 수영에 바친다.
장인의 자부심이 담긴 별승자총통
조선 | 국립청주박물관
이 총은 개인용 무기인 승자총통을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손잡이 앞부분에 '장인 준금이 수영 水營에 바친다' 는 글귀가 새겨 있습니다. 준금이라는 사람은 수영에 소속된 장인으로, 무기를 생산한 장인의 이름을 새겨 일종의 책임을 지운 것으로 보입니다. 장인의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동시에 드러나는 자료입니다.
| 지켜내는 힘
주중 舟中
표연히 이 한 몸 만리길 떠나갈 때
배안엔 모두 원수이기에 벗할 이 뉘 있는가
···
오늘날 몸 숨기고 바다 건너는 사람은
그 몇 해를 참으면서 와신상담 하였던가
평생 뜻한 바 갈길 정하였으니
고향을 향하는 길 다시 묻지 않으리
김지섭 의사의 폭탄 의거 보도
1924
1924년 4월 24일 자 아사히 신문 호외에 김지섭 의사의 일본 왕궁 폭탄의거 소식이 실렸습니다. 신문은 '범인은 상하이에서 특파된 의열단원 김지섭으로, 무기를 가지고 동경에 도착했으며 본인의 범행을 자백했다' 라고 전하며 일본의 입장을 전했습니다. 김지섭 의사는 1923년, 관동대학살 소식에 분노하여 폭탄의거를 결심하고 동경행 배를 탔습니다. 배 안에서 지은 시 <주중 舟中>이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1907년, 빚을 갚기 위한 국민의 결심
1907
1904년 전후,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큰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1907년 2월 21일 자 대한매일신보에는 담배를 끊어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의 발기문이 실렸습니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들이 모여 헤쳐 나갔던 힘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운동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지금 나라 빚 1,300만 원은 곧 우리 대한의 존망에 관계된 일입니다.
2.000만 동포가 3 개월 동안 담배를 끊고서 한 사람이 한 달에 20 전씩 모으면 대략 1,300만 원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니 잠시만 결심하면 갚을 수 있는 일입니다.
조선물산장려회 회보
1930
"내 살림 내 것으로" 라는 구호가 눈에 뜁니다. 물산장려 운동은 민족 기업을 키워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전국에서 토산품 사용 결의가 이어지고, 무명교복 입기 운동도 확산되었습니다. 당시 인기품목 이었던 거북선표 고무신은 광고 노래로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신을 신고 행진곡 울리니 나도 이순신~ 너도 이순신~' 위기 앞에 단결했던 국민들의 마음에 울렸을 가사입니다.
국민들이 만든 임시정부의 힘
1943
신한민보는 미주 한인 단체 대한인국민회가 발행한 신문으로, 독립금 후원과 인구세 납부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인구세는 20세 이상 성인이 자발적으로 낸 연간 1 원 또는 1 달러의 세금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연락망인 연통제가 소멸되자, 임시정부의 운영 자금은 해외 동포들로부터 모였습니다. 임시정부의 활동 뒤에는 이를 뒷받침 한 국민들의 힘이 있었습니다.
임시정부를 후원한 해외 한인
1939년 이후 | 등록문화유산
미국, 쿠바, 멕시코, 중국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임시정부를 후원한 한인들의 이름과 주소, 단체 등이 적혀 있습니다. 힘든 이민생활을 견디면서도 조국을 위해 임시정부를 후원했던 동포들의 헌신이 배어있는 기록입니다.
1919년 4월, 필라델피아 한인대회 | KBS
임시정부 청년들의 삶을 엿보다
1937년 | 등록문화유산
이 졸업앨범은 김덕목이 중국 광주의 중산대학을 졸업할 당시의 기록입니다.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김붕준의 세 자녀 김덕목, 김효숙, 김정숙 모두 민족학교인 인성학교를 거쳐 중산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들의 행로를 통해 임시정부 청년 세대의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덕목은 광복군 창설을 위한 임시정부의 계획에 따라 중국군에서 활동하다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두 자매는 임시정부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광복군의 심리전 업무에 참여했습니다.
광복군 박시창의 편지
1926
이 편지는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했던 박은식의 아들 박시창이 누나 박영애에게 보낸 것입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권유로 군관학교에 진학하게 된 과정과 몇 해나 보지 못한 누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 박시창은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며 광복 후에는 국군 창설에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약헌
1927 | 등록문화유산
임시정부는 헌법을 바탕으로 조직을 운영하며 활동했습니다. 여러 차례 개정된 헌법에서도 늘 맨 앞에 자리한 구절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국권은 인민에게 있음."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바뀌는 전환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인성학교 학생들과 김붕준의 자녀 *김정숙, **김덕목 | 1920년대
대한민국임시정부, 민주공화제의 시작
1920년 | 등록문화유산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제를 기본개념으로 삼았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우리 국민이 반드시 실행해야 할 6대사」를 통해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정부는 국민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소 대한나라에 과거에는 황제가 한 사람 밖에 없었지만 금일에는 이천만 국민이 다 같이 황제요.
황제란 무엇이오? 주권자를 이름이니, 과거에 주권자는 유일이었으나 지금은 여러분이 다 주권자외다.
젊은 독립운동가의 서재
독립운동가 양우조 · 최선화 부부의 서재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라의 독립을 고민하고,
하루하루의 소소한 일상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역사 속 그 순간으로 들어가 보세요.
독립운동가 양우조 · 최선화와 그들의 딸 제시의 이야기
아이들에게 한글과 역사, 민족혼을 심어주는 임시 학교에 가겠다고 제시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ㅡ 1944년 5월 14일 <제시의 일기>
국내로 진격, 일본군을 몰아낼 작전을 세우고 있던 한국광복군
히로시마 원폭 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