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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2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1 ① 일본어 사용 장려 포스터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국어, 곧 일본어 생활을 실행하고자 적혀있다. 당시 일본어 사용과 보급은 징병제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생활 전반으로 확대시키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② 조선총독부 기관지 발행처인 매일신보사가 1940년부터 발행한 잡지이다. 표지에서는 국민복을 입고 목검을 든 남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총독부는 전쟁 홍보와 정신교육을 위해 시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③ 애국기 헌납 모금 전단 자료에 '모두 헌금', '애국기 충남호 헌납'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충남호라고 이름이 붙인 것은 충남 지역민에게 '헌금'을 동원하려는 의도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각 지역마다 진행되고 있었다. ④ 저축장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0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10 친일 협력자들 일본은 통치의 안정을 위해 영향력있는 한국인을 포섭하였다. 대한제국의 황실종친과 고위관료에게 특혜를 주며 자문기구에 참여시켰고,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였다. 한국인 유력자는 이러한 지방자치선거에 참여해 식민지 체제 속에서 지위를 얻고자 하였다. 일부 한국인은 다양한 위치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봉사하였고,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았다. 한국병합기념화보 1910년 9월 28일 일본 오사카 신보에서 한국병합을 기념해 제작한 화보이다. 인물사진에서 대한제국 황족 이외에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이완용, 이하영, 송병준, 민병석, 김윤식, 윤덕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중추원 / 서울역사박물관 중추원 일본사찰단 사진엽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사저를 방문한 중..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9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9 강제동원과 저항 일본제국주의는 식민통치와 전쟁 수행을 위해 한국인을 포섭하고 강제동원하였다. 특히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수많은 한국인의 생명과 인권을 짓밟았다. 일부 한국인이 친일반민족 행위로 식민지배에 협력하였으나, 고통 속에서도 저항하는 이들이 있었다. 독립운동 세력은 항일 전선을 통일시켜 나아가며 본격적인 대일항전에 나섰다. 1931 만주사변 발발 1933 독일에서 선거를 통해 히틀러 나찌당 집권 1937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중일전쟁 발발 1939 독일의 폴란드 침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941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태평양전쟁 발발 1943 연합국 체재 수립을 위해 소련이 코민테른 해산 1943 미 · 영 · 중 연합국이 카이로선언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8 신문물과 신문화 문호개방 이후 모든 문화에서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양복, 서양음악, 극장, 라디오, 축음기 같은 신문물이 등장하여 대중문화와 유행을 만들어냈다. 다만 도시에 살며 여유가 있는 사람들 만이 쉽게 소비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대중매체는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거쳤고, 전쟁시기에는 제국주의 선전정책을 노골적으로 반영하였다. 경성가두인물전람 / 서울역사박물관 군산 풍천백화점 광고 일본인니 1935년 군산에 설립한 백화점이다. 광고지를 보면,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 의류잡화, 만년필, 레코드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였다. 가정용 실용춤의 10전 균일가 판매도 홍보하고 있다. 결혼식 사진 신문화와 신문물의 도입은 의례까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7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7 식민지 공업화와 노동자의 성장 일본 대기업 주도로 저임금을 활용한 섬유공업과 광업, 수력을 이용한 전기화학공업이 성장하였다. 특히 1937년 이후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위해 정책적으로 군수산업을 팽창시켰다. 한국인 노동자는 낮은 임금과 장시간의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과 차별 속에서 힘겹게 일하였다. 노동쟁의로 저항하였으나 경찰의 지원을 받는 기업은 노동자의 요구조건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전소와 송전계통도 전국의 발전소와 송전선을 표시하고, 그 위에 금광 개발을 위해 건설 예정인 송전선을 제1기와 제2, 3기로 구분해 보여주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금광 개발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위해 1938년부터 직접 송전선을 건설하였다. 수풍댐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6 지주와 소작인 일제강점기 대다수의 사람은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지주의 소유권을 보호하며 쌀을 증산해 일본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에 적응한 지주는 성장하였다. 반면 소작인은 생활이 늘 궁핍하였고, 소작쟁의로 저항하였으나 소작지를 잃으면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계대공항의 충격이 미치자 총독부는 소작인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지주의 권한을 제한하였으나, 소작인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일본인 거주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지 분포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발행한 지도이다. 1910년 지역별 일본인 수와 1912년 회사의 소유지, 임차지, 출장소, 파견소를 기호로 보여주고 있다. 동척주식회사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5 검열받은 중외일보 1907년 신문지법에 의해 검열당국은 신문발행 전에 신문사가 제출한 내용을 검열하였다. 왼쪽 검열본에는 검열의 흔적이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 신문은 검열 후 발행된 것으로 기사 삭제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어학회 표준어 사정위원 / 한글학회 조선인은 차선적인 최선, 아니 최선의 차선책으로··· 조선문화운동에로! 조선문화에 정진하자! 조선학을 천명하자! 안재홍, "조선과 문화운동", (1935)에서 마친보람 초기 한글학회의 교육기관인 한글배곧에서 고등과를 졸업한 황선운에게 준 증서이다. 한글학자 주시경의 영향으로 한글의 초 · 중 · 종성을 모아쓰지 않고 가로로 풀어 쓰고 있다. 창간호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교육,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4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4 해외 민족운동 해외 이주와 민족운동 많은 한국인이 고국을 떠났다. 가난과 차별, 억압과 모멸 그리고 동경과 희망 등 자신 만의 사연을 안고 낯선 곳에 정착해 살아갔다. 조국을 잃어 보호 받지 못하였으나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갔다. 또한 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고,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길러 냈다. 강용흘의 시민권 취득을 위한 편지 강용흘의 미국시민권 취득 청원위원회 참가자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1931년 미국에서 출판된 강용흘의 소설 '초당'은 10개 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역사와 전통, 일제의 폭력성과 한국인의 저항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안재창, 안유순의 미국 거주 한인 증명서 태평양전쟁 시기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외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3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3 주막에서 엿들은 이야기 1910년대 한국인 헌병보조원이나 순사가 주막에서 엿들은 사람들의 대화를 모아 일본어로 번역한 염탐보고서이다. 예전에는 양반이면 돈이 없어도 곤란하지 않았으나 이제 와서는 양반이나 상민이나 똑같다.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자제의 교육도 할 수 없다. 양반 신분도 지금에야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조선도 점차 개명하여 만사가 편리하게 된 것은 좋지만 모든 것을 규칙으로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개를 잡거나 소를 잡는 것도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내야하고, 또 도량형기도 반드시 관제품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관헌의 말로는 조선인을 지도계발한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식을 계발하는 원천인 학교를 폐쇄하고 교과 같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2 제국주의의 침략 일본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은 전쟁터가 되었고,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승인 아래 한국을 지배하였다. 한국인은 이에 맞서 저항하였다. 悉ク 殺戮 スべシ 모조리 살육할 것 일본 대본영 병참총감이 보낸 전보에서, 1894년 10월 27일 일본인이 그린 청일전쟁 판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군대를 파견해 조선의 왕궁과 서울을 먼저 장악하였다. 이 과정을 일본의 시각에서 그린 판화이다. 당시 전쟁 소식을 궁금해 하는 일본인을 위해 이와같은 판화가 많이 제작 판매되었다. 1904년 제물포역에서 출발해 서울 남대문역에 내린 일본군 정치 풍자화로 그려진 동아시아의 정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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