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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63

["민족의 영웅" 이승만의 환국]

["민족의 영웅" 이승만의 환국] 일러스트 = 한상엽 조선공산당은 왜 이승만을 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추대했나? 해방 두 달 만의 귀국 험난했지만 美 설득 좌우 다 지도자로 추대 李는 반공 · 반소주의자 공산당은 국민 지지받는 그를 이용하려 했으나 훤히 꿰뚫고 "화합" 강조 이승만은 1945년 8월 14일 밤 11시 워싱턴DC 자택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자신의 집에 모여든 동지들에게 그는 “소련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미국이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하면 한반도에서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고 우려를 표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후인 8월 8일, 이승만은 백악관에 귀국 청원 편지를 보냈다. 군 작전 지역이었던 한국으..

[인하대 있던 동상, 훼손된 채 방치]

[인하대 있던 동상, 훼손된 채 방치] 1979년 2월 인하대 인경호 (湖) 인근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제막식에 우산을 쓴 시민들이 모여 있는 모습. 해당 동상은 건립된 지 5년 만인 1984년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 인하대 총동문회 제공 운동권이 철거한 이승만 동상, 40년째 창고에 이승만 "美 MIT 같은 대학 만들자" 하와이 학교 매각금에 성금 더해 인천 · 하와이 글자 따 인하대 설립 1984년 총학생회, 밧줄로 끌어내려 상자 넣어진 채 자재 창고에 보관 동창회 일각서 '재건립' 의견 나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인천 인하대학교에는 1979년 이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다. 이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었다. 하지만 1984년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철..

이승만 2023.12.03

[공화국 대한민국 ⑥ 정동 (貞洞) 시대 과학기술처와 원자력병원]

[공화국 대한민국 ⑥ 정동 (貞洞) 시대 과학기술처와 원자력병원] 서울 한복판 세종로사거리 뒷골목에 있는 사무실건물 ‘사조빌딩’ (왼쪽 흰 건물)은 대한민국 과학기술 혁명이 태동한 역사적인 장소다. 1959년 이승만 정부가 만든 원자력연구소는 4년이 지난 1963년 이 자리에 건물을 신축하고 방사선의학연구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또 4년이 지난 1967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처 첫 사무실이 이 병원 건물에 입주했다. 1970년 과기처가 종합청사로 이전할 때까지 이 건물에서 이승만 정부가 만든 과학기술의 산실과 박정희 정부가 신설한 과학기술 근대화 작업실이 공생하며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 박종인 기자 그들은 정동 뒷골목에서 과학과 기술 혁명을 꿈꿨다 1959년 탄생한 원자력연구소 1963년 서울 정동 뒷골목에..

[공화국 대한민국 ⑦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와 과학기술처의 발족]

[공화국 대한민국 ⑦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와 과학기술처의 발족] 1959년 7월 15일은 대한민국 과학계에 큰 획을 그은 날이었다. 문교부와 학술원이 후원한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 가 서울 동숭동 서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제목은 원자력이지만 이 학술회의는 과학기술계 다양한 분야 학자 600여 명이 참석한 종합학술회의였고 공화국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최대 규모 과학기술 학술회의였다. 전날인 7월 14일 당시 양주 공릉리 서울공대에서 열린 연구용 원자로 1호기 기공식을 계기로 열린 이 학술회의에서 과학 - 기술학계는 원자력 종합개발정책과 과학기술진흥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 과학자의 요구는 7년 뒤인 1966년 12월 과학기술진흥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 서울기록원 1959년 7월 15..

[공화국 대한민국 ⑨ 켈로부대 출신 94세 원자력 아버지 이창건]

[공화국 대한민국 ⑨ 켈로부대 출신 94세 원자력 아버지 이창건] 대한민국 원자력의 아버지 이창건이 대한민국 1호 원자로 트리가 마크 2 (TRIGA MARK II) 앞에 섰다. 1929년생인 이창건은 30년 뒤인 1959년 대한민국이 도입한 이 원자로를 운전하며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했다. 먹고살 일도 막막했던 1950년대부터 이들을 길러낸 지도자, 그리고 이들 전문가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아버지들이다. 서울 공릉동에 있는 트리가 마크 2는 핵심은 다 해체되고 외형은 근대유산으로 지정됐다. / 박종인 기자 "이승만은 애국자요, 82세에 20년 뒤 보고 원자력 준비시켰으니까" 내가 94년 살아보니··· '일본 미웠지만 이젠 손잡아야' '켈로 대원들 생각하면 눈물만' '훌륭한 선배들, 지도자 덕에 싸고..

[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제헌의회 개원… 이승만 "투표율 90% 넘는 건, 세계에 민족의 애국심 보여준 것" - 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 개원식이 열리고 있다. 개원식에는 5 · 10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 198명 (정원 200)이 참석했다. 이승만은 개원식에 앞선 예비 회의에서 국회의장으로 당선됐다. 소련은 남로당을 앞세워 5 · 10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전국에서 폭동을 일으켰지만 선거는 95.5%의 투표율로 마무리됐고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이승만은 투표율이 90%를 넘은 것에 대해 "우리 민족의 애국심을 세계에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기파랑) '피의 세례' 에도 투표율 95.5%··· 제헌의회 선거의 기적 이끌다 소련, 남로당 앞세워 전국..

[④ 한반도 문제, 유엔에 회부]

[④ 한반도 문제, 유엔에 회부] 한국 문제를 UN에서 다루도록 제안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이승만이 중국 난징에 들러 장제스와 회담한 후 1947년 4월 21일 귀국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규식, 김구, 지청천, 이승만, 프란체스카. 한국 문제를 미소공동위원회에서 UN으로 이관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이승만의 중요한 성취였다. 이를 통해 두 강대국 간 협상이 아니라 UN의 주관 아래 자유민주국가 수립이 가능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소련 지시로 남한서 폭동··· 자유민주 정부 수립 위해 유엔 설득하다 소련, 北에 위성국가 세우고 사회 혼란 유도해 남한 장악 야욕 이승만 "통일 고대하나 여의치 않아, 남방 임시정부 조직하자" 시민 모금으로 방미··· 미국에 '유엔 주재 정부수..

[③ 얄타 회담 비밀협약 폭로]

[③ 얄타 회담 비밀협약 폭로] 얄타 회담 참석한 미·영·소 정상 - 1945년 2월 얄타 회담을 위해 모인 미국, 영국, 소련 정상들. 앉은 사람 왼쪽부터 영국의 처칠, 미국의 루스벨트, 소련의 스탈린. 이승만은 같은 해 국제연합(UN) 창립총회가 열린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얄타 회담 때 '조선을 소련 영향권 안에 둔다'는 비밀 협약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 미 정부 문서보관소 한반도 운명 바꾸려… 루스벨트 · 처칠 · 스탈린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다 정치는 돈이다. 정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독립운동은 순수한 정치 활동이지만, 망명정부 지도자는 자금을 마련할 길이 마땅치 않다. 그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을 짓누른 짐이었다. 1919년에 상해임시정부가 서자..

[② 워싱턴 · 제네바를 무대로 상해 임시정부 중심 잡아]

[② 워싱턴 · 제네바를 무대로 상해 임시정부 중심 잡아] 1920년 12월 28일 상해교민단의 이승만 환영회 모습. 배경에 태극기가 있고 그 위에 '대통령 리승만' 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왼쪽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박은식, 신규식, 오른쪽 마지막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뒤에도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계속했고 1920년 12월 5일 상해에 도착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공산주의자들이 임시정부 흔들 때마다··· 외교로 김구에 힘 실어줘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총회서 '日 만주 침략 규탄 성명' 발표 중국 외교관들과 친분 바탕, 국제사회의 임시정부 지지 이끌어 저서 '일본 내막기' 서 '美 ·..

[① 최초의 자발적 민중집회 지도자로서 두각 드러내]

[① 최초의 자발적 민중집회 지도자로서 두각 드러내] 스승 서재필과 군축회의 참석한 이승만 1921년 워싱턴에서 열리는 군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위원부 청사를 나서는 이승만 (왼쪽) 한국 대표단장과 서재필 부단장. 이승만 46세, 서재필 57세 시절의 일이다. '독립협회' 를 세운 서재필은 배재학당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 중 이승만이 있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19세기말 만민공동회 주도··· 왕정 허물고, 민주공화정으로 나가다 서재필의 가르침 받은 이승만 · 주시경 · 김규식 ··· 토론 모임 만들어 민중 1만여명과 러 강력 비판, 부산에 '급탄항' 만들려던 시도 막아 정부 정책 방향 바꾼 혁명적 사건 ··· 조선왕실에 의회 설립도 요구 탄압 시작되자 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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