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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 전쟁 60년 41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㉚ 한국 이해하려 힘쓴 밴플리트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㉚ 한국 이해하려 힘쓴 밴플리트 현대그룹을 창설한 고(故)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내게 들려준 일화다. 그가 감격스러운 첫 방북을 마치고 난 뒤였다. 강원도 통천에 있는 고향을 다녀왔던 정 회장은 헤어졌던 누나와 해후했다. 누나가 그를 만나자 대뜸 “주영아, 우리는 장군님 덕분에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하더란다. 그러나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 밤이 되자 그 누나가 슬그머니 오더란다. “주영아, 사실은 배고파 죽겠어….” 늘그막에 만난 누이의 처량한 호소에 정 회장의 감회가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작전대로였다면, 휴전선은 금강산 이북에 그어졌다 정 회장이 찾았던 고향 통천군에는 고저(庫底)라는 곳이 있다. 그가 자랐던 고향이자, 남북이 분단되면서 역시..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㉘ 천재 전략가의 귀국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㉘ 천재 전략가의 귀국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유엔군 총사령관 직에서 해임된 뒤 일본 도쿄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51년 4월 19일 미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6·25전쟁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중앙포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벌이기 전에 적에게 ‘공간’을 내주는 대신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공간을 우회해 적의 후방을 사정없이 휘갈겼다. 개전 초기 영등포 전선을 시찰하는 그의 뇌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상륙작전의 천재’ 맥아더, 원산에서는 결정적 패착 대구 북방에서 포항까지, 왜관에서 함안까지의 사각형 방어선을 설정한 ‘..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㉗ 떠나는 한국전의 별, 맥아더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㉗ 떠나는 한국전의 별, 맥아더 더글러스 맥아더 1880~1964 갑자기 순직한 김백일 장군의 후임으로 내가 국군 1군단장에 임명됐다. 1951년 4월 7일이었다. 그래서 1사단을 떠나게 됐다. 50년 6월 25일 적의 침입을 당한 뒤로 줄곧 지휘했던 부대다. 북진으로 평양에 처음 입성하는 영광을 안겨 줬던 나의 1사단. 6·25 발발 두 달 전인 50년 4월에 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1년 만이었다. 개전 당시 사단장 가운데 그때까지 같은 부대를 계속 지휘해 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삶과 죽음, 처절한 고생과 화려한 영광을 함께했던 국군 1사단이었다. 포화가 치솟고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 운명을 걸고 함께 싸웠던 전우들과 헤어지는 감회는 착잡..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㉖ 38선 북방 방어 거점을 확보하라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㉖ 38선 북방 방어 거점을 확보하라 1951년 3월 말 이제 38선을 넘어야 할 때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의 정가에 형성된 기류는 분명히 우리와는 달랐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뭔가 멈칫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북진해서 적을 섬멸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은 그대로 북진을 밀어붙이고자 했지만 워싱턴과 다른 연합국은 38선으로 전선을 고착화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51년 3월, 38선 재돌파 앞두고 워싱턴은 멈칫했다 1951년 3월 27일 38선으로 전선이 일단 굳어지는 시점에 매슈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이 여주에서 소집한 회의에 참석했던 한·미 야전지휘관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앨런 미 8군 참..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㉕ 퇴로 막아 적을 분산시켜라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㉕ 퇴로 막아 적을 분산시켜라 미 187공수전투단이 1951년 3월 23일 문산 지역에 낙하하고 있다. 적의 퇴로를 끊는다는 차원에서 벌인 이 공수 작전은 보병인 국군 1사단이 서울에서 밀고 올라가는 지상 작전과 연계해 벌어졌다. 아군은 이 작전으로 임진강 북방까지 전선을 밀어 올렸다. [백선엽 장군 제공] 1951년 3월 23일 경기도 문산에 투하된 미 187공수전투단의 단장은 프랭크 보웬 준장이었고, 부단장은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훗날 베트남전 초대 미군 총사령관) 대령이었다. 투하에 앞서 미 1군단 부군단장 페러 준장은 급기야 내게 “한국군이 미 공수부대와의 링크업(link-up: 연계) 작전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평안..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㉔ 맥아더의 통 큰 선물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㉔ 맥아더의 통 큰 선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1951년 3월 중순에 국군 1사단 사령부로 찾아 왔다. 지프에 앉은 맥아더 사령관(왼쪽)이 당시 1사단장이던 백선엽 장군과 악수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그는 당시 71세의 고령이어서 웬만하면 차에서 내리기 싫어했다. [백선엽 장군 제공] 국군 1사단이 서울을 재탈환한 뒤 사흘이 지난 1951년 3월 18일, 만리동 고개의 한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에 차린 사단 사령부로 큰 손님이 찾아 왔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다. 전쟁 기간 중 나는 그를 여러 차례 만났다. 한마디로 거물이다. 구사하는 전략의 단위가 평범한 장군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수퍼 히어로’다. 그 점은 나중에 서술..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㉑ 전세 뒤집은 51년 2월 중순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㉑ 전세 뒤집은 51년 2월 중순 미 1기병사단 소속 전차가 1951년 2월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서 다리를 건너다 무게 때문에 바닥이 기울어지자 멈춰서 있다. 공병들이 다리 아래에 버팀목을 대고 구난전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중공군의 4차 공세(1951년 2월 11~18일)는 이렇게 끝났다. 50년 12월 31일에 벌여 이듬해 1월 10일까지 이어진 공격이 3차 공세였다. 우리는 이 공세로 북위 37도까지 밀렸지만, 다음에 벌어진 중공군 4차 공세에서는 전세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중공군 기습 무력화시킨 ‘킬러 작전’ … “다시 서울이 보인다”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원 겸 정치위원’이라는 직함으로 중공군을 총지휘했던 펑더화이(彭德..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⑳ 연합군의 영웅들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⑳ 연합군의 영웅들 1951년 2월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에서 격전을 치렀던 프랑스 대대원들이 재정비를 하던 중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 2사단 23연대 전투단에 배속됐던 이들은 고립 상태에서 중공군 39군을 물리치고 반격의 전기를 마련했다. [백선엽 장군 제공] 중공군은 개활지(開豁地:탁 트인 땅)에서는 승산(勝算)이 없어 보였던 모양이다. 1951년 2월 그들은 산악지대인 동쪽으로 공격해 왔다. 미 10군단이 맡고 있던 지역이었다. 그것도 무기와 보급이 약한 한국군을 주요 타깃으로 잡았다. 6·25전쟁에 참전하는 자국 병사들에게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내렸다는 지시가 있다고 들었다. “(화력이 좋은) 미군을 피하고 철저하게 한국군을 공략하라..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⑲ 서울을 탈환하라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⑲ 서울을 탈환하라 유엔군의 거센 반격이 1951년 1월 15일 시작됐다. 미 25사단의 27연대 마이켈리스 대령이 선두에 나섰다. 1개 전차대대와 3개 포병대대 등 막강한 화력을 마이켈리스 연대에 지원해 연대전투단(RCT)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항공과 공병의 지원 아래 수원 방면으로 위력수색을 펼쳤다. 리지웨이, 후퇴작전 짠 참모 즉각 경질 … 반격이 시작됐다 위력수색은 적의 무력 상황을 가늠해 보기 위해 펼친다. 적의 저항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떠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다. 모든 작전에 독립 명칭을 붙이기 좋아했던 리지웨이 8군 사령관은 이번 작전을 ‘울프하운드(Wolfhound: 늑대)’로 명명했다. 연대전투단은 늑대처럼 거침없이 나아갔다. 평택에서..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⑨ 전장에서 만난 영웅

[6·25 전쟁 60년] 운산 전투 -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⑨ 전장에서 만난 영웅 1950년 10월 평양에 처음 입성한 국군 1사단의 공을 기려 프랭크 밀번 미1군단장(오른쪽)이 평양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백선엽 사단장에게 은성무공훈장을 걸어주고 있다. 백 사단장의 키는 1m75㎝ 남짓, 밀번 군단장이 5~6㎝ 정도 작아 보인다. [백선엽 장군 제공] 이 대목에서 미군의 한 지휘관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6·25전쟁 기간 중 미군의 제2차 세계대전 영웅들을 수없이 만났다. 더글러스 맥아더, 월턴 워커, 매튜 리지웨이, 제임스 밴 플리트, 맥스웰 테일러 등이다. 당대 최고 엘리트인 그들과 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나는 미군의 뛰어난 시스템과 노하우, 지략을 배웠다. 군사 스승 밀번, 작전까지 바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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