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빛이 돼주시고···' 가호를 비는 절박한 기도]
충남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 길이 10m가 넘는 발원문 두루마리에는 1346년 불상 조성 당시 시주한 1078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 문화재청
도와주소서··· 구원을 갈구하는 인간이라는 슬픈 조건
14세기 금동약사여래상
몸속서 발견된 成佛願文
소원이 빼곡한 붉은 비단
더위부터 기근 해결까지
자력만으론 안 되는 세상
아픈 이들의 애끓는 열망
"어둠 속에서는 밝은 빛이 돼 비춰주시고, 병으로 괴로워할 때는 뛰어난 의사가 돼주시고, 고난의 바다에서는 커다란 배가 돼 건너가게 해주시고, 춥고 배고플 때는 옷과 음식이 돼주시고, 빈곤 속에서는 여의보를 내어 베풀어 주시고, 벌을 받게 돼 손발이 묶여 있을 때는 모두 풀어주시고,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는 용서받게 해주시고, 가뭄이 들 때는 큰 단비를 내려주시고, 독약을 먹었을 때는 해독제를 주시고, 호랑이와 이리에게 둘러싸였을 때믄 사자가 돼 쫓아 주시고, 새들에게 둘러싸였을 때는 큰 봉황이 돼 구해주시니, 어디에서든 구해주시지 않는 경우가 없다 (於黑闇處/爲明灯照, 於病苦中/爲作醫王, 於苦海中/爲作舡度, 於饑寒中/爲作衣食, 於貧困中/作如意寶, 於枷鎖中/作解脫王, 於囚罪中/作赦書樂, 於枯河中/降大甘雨, 於毒藥中/作大良藥, 於狼虎中/作大獅子, 於衆鳥中/作大鳳凰, 於一切處/無不救度)." ㅡ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에서 나온 '성불원문 (成佛願文)' 중에서
"나, 사실 요즘 종교에 귀의하려고 하고 있어." 꽤 오래전,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선배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그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모순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오랫동안 학생운동에 매진한 사람이었다.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정치인의 타락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수동적이고 나른한 태도였다. 억압과 모순에도 세상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을 그는 참기 어려워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주고 받는 것도 패배주의적이라고 여겼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면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새해 복 많이 쟁취해라."
그러던 그가 말한 것이다. "나, 사실 요즘 종교에 귀의하려고 하고 있어." 그가 이렇게 변한 데에는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영향이 컸다. 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이 이상향이 아니라는 것은 판명되었으나, 그 공백을 채울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식인들이 자살하고 있었고, 그 선배의 정신 역시 길을 잃었다. 일련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인간의 힘으로 뭔가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를 믿을까, 불교를 믿을까 고심한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아무래도 나한테는 기독교가 나을 것 같아."
"왜죠?" "대략 살펴보니, 불교는 내 안에 불성 (佛性)이 있으므로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고, 기독교는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나같이 별거 아닌 놈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어? 아무래도 내겐 기독교가 맞는 것 같아." 불교나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거친 이해가 얼마나 정확한 것이었는지는 예나 지금이나 내 큰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론을 내린 그는 결국 행복해졌을까. 지금쯤은 복을 많이 쟁취, 아니 받았을까. 연락이 두절된 지 이미 오래. 그의 마음을 지금 헤아릴 길 없다.
한때 영웅적인 사회변혁을 꿈꾸다가 결국 환멸에 빠져버린 그 쓸쓸한 마음을 기억하기에, 그와 비슷한 쓸쓸하고도 애타는 마음을 볼 때마다 당시 생각이 떠오른다. 얼마전 충청남도 청양 장곡사 (長谷寺) 금동약사여래좌상의 복장유물 (腹藏遺物)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상을 만들 때는 사리나 불경 등 다양한 물건을 불상 안에 넣어 봉안하고 하는데, 14세기에 만든 금동약사여래좌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 중에는 '성불원문' 이란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성불하기를 바라는 글이다. 길이 약 10m, 너비 49㎝ 넓고 붉은 비단에 정갈한 소원이 가지런히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소원 끝에는 불상 조성 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이름이 어지러이 적혀 있다 (이 복장물에서 확인되는 발원자는 1000여 명이다). 빼곡히 적힌 이름을 바라보며 애타게 뭔가를 바라지 않고는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이 인간 조건에 대해 생각한다.
'성불원문' 이 전하는 당시 소원 내용 대부분은, 약사여래에게 바라는 "열두 가지 큰 소원" (十二大願) 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고자 하는 부처님으로서,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다. 약사여래에게 애원하는 내용 중에는 질병을 고치고 불구의 몸을 온전하게 해달라는 것도 있지만, 추위 · 더위와 같은 일상 문제와 형벌과 굶주림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도 있다. 저 소원을 빌던 이들에게는 사회적 문제조차도 변혁 대상이라기보다는 신의 가호가 필요한 심신의 질변이었던 것 같다.
심리적 문제로 여기던 자살마저도 실은 사회적 문제라고 뒤르켐 같은 사회학자가 그토록 역설했건만, 사회적 문제를 심신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있다니! 사회과학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은 개탄할 지 모른다. 이런 수동적이고 퇴행적인 자세가 다 있나! 어디 사회과학도만 개탄하겠는가. 종교가 단순히 마음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 포괄한다고 종교인들이 그토록 역설했건만, 매사를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다니! 사회적 책임에 불타는 종교인이 개탄할 지 모른다. 이러한 개탄에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떠올린다. 사회변혁을 꿈꾸다가 마음 깊은 곳을 다쳐 끝내 종교에 귀의하고 만 이의 마음을. 이것저것 해보다가 어느 깊은 곳이 무너져 결국 타력을 찾아 나선 이의 마음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저 기나긴 '성불원문' 말미에 어지러이 적힌 사람들 이름을 무심하게 보기는 어렵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불상 조성에 기금을 낸 이들의 명단을 통해 당시 유력자들의 네트워크를 밝혀낼 수도 있고, 사회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구체적인 소원 내용을 꼼꼼히 읽어 당시 사회 분위기를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불원문' 을 보며 가장 먼저 마음을 끄는 것은 생로병사를 자력만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었던 인간의 모습이다. 그 슬픈 인간 조건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픈 인간들의 애끓는 열망이다. 이 사바세계에서 살고싶으면서도 살고 싶지 않던 그 모순된 열망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6월 3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