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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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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일러스트 = 한상엽    조선공산당 1인자 박헌영은 왜'수령' 이 되지 못했나   스탈린이 호통쳤다"인민은 땅을 파고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 朴, 가정 파탄나도공산당에 몸 바쳤지만소련군 출신 金에 밀려    1900년생 박헌영은 1912년생 김일성보다 열두 살 위였다. 해방 이전 공산당 관련 사건으로 세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복역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을 때는 법정과 구치소에서 광인처럼 날뛰었고,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대변을 보고는 손에 쥐어 벽에 바르고 간수가 밥을 갖다주면 밥은 그대로 두고 변을···” (박갑동, ‘박헌영’)이라는 일화는 당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서는 만삭 아내..
[어지러운 해방 정국 우익 지도자 송진우 암살사건] [어지러운 해방 정국 우익 지도자 송진우 암살사건]    일러스트 = 한상엽    해방 후 첫 정치 테러, 배후 없는 '몽상가' 의 범행이었나?   29세 청년 한현우宋을 찬탁파로 오해담장 넘어 권총 난사 '단독범' 결론 났지만김구 측근과 모의 정황폭력은 폭력을 낳는 법    총독부 2인자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이 패전 후 ‘치안 유지’ 요청을 위해 처음 접촉한 인물은 여운형이 아니라 전 동아일보 사장이자, 우익 지도자 송진우였다. 그 또한 일본과 타협하는 행위라 생각한 송진우는 엔도의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했다. 이후 엔도의 제안을 수락한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 참여를 요청했을 때는 여운형을 ‘경멸’ 하며 그 제안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대신 호남 지주와 우익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임정) 봉..
[김수임과 이강국의 미스터리 러브스토리] [김수임과 이강국의 미스터리 러브스토리] '조선의 마타하리' 는 진짜 간첩이었을까, 양다리 불륜녀였을까 영어 잘하는 신여성 金 美 헌병감과 동거하며 군기밀 빼내다 사형 독일 유학파 李 남로당 2인자 돼 미군 지프 타고 월북 ‘여간첩’ 김수임과 ‘공산당 2인자’ 이강국의 38선을 넘나든 ‘간첩 행위’ 와 러브 스토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자주 극화된 소재 가운데 하나다. 영화 ‘나는 속았다’ (1964, 문정숙 · 신영균),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윤소라 · 신일룡), TBC 드라마 ‘운명’ (1974, 지윤성 · 김세윤), MBC ‘제1공화국 : 여간첩 김수임’ (1981, 정애리 · 현석), SBS ‘서울 1945′ (2006, 한다감 · 류수영)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남과 북에..
[일제시대 유명 만담가 신불출의 탈선과 월북] [일제시대 유명 만담가 신불출의 탈선과 월북] 일러스트 = 한상엽 '좌파 개념 연예인' 의 태극기 모독, 국민이 분노했다 입담으로 웃겨준 연예인 해방 후 좌익 · 찬탁 선동 "태극기 붉게 물들 것" 성난 군중이 끌어내려 월북 후 한 · 미 비방 공연 믿었던 北서도 숙청당해 만담가 신불출은 한국 최초의 ‘국민 예능인’ 이었다. 신영일, 신흥식 등 본명도 증언과 기록마다 다르고, 출생 연도도 남한은 1905년, 북한은 1907년으로 다르게 기록된다. 사망에 대해서도 북한 자료에는 그가 뇌출혈로 투병하다 1971년 사망했다고 하지만,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탈북한 전직 배우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1960년대 초 종파주의자로 숙청돼 1976년쯤 요덕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한다. 신불출이라는 예명 외..
[조선공산당 돈줄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조선공산당 돈줄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일러스트 = 한상엽 공산당에겐 그들만의 '정의의 법정' 이 따로 있었다 서울 도심 고층빌딩을 공산당 아지트 만들고 위폐 1200만원 찍어내 경제사범 수사하는데 "친일경찰의 정치탄압" "판 · 검사 죽여라" 선동 패전 이후 미군 진주 직전까지 총독부와 조선은행은 엄청난 양의 조선은행권을 찍어댔다. 조선은행권 인쇄를 전담하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일본인 지카자와 (近澤) 가문이 경영하던 ‘지카자와인쇄소’ 에도 일부 물량을 할당했다. 비슷한 시기 지카자와 가문은 귀국을 준비하며 지카자와 빌딩과 인쇄소를 헐값에 내놓았다. 조선공산당 (이하 조공)은 20만원의 자금을 ‘조달’ 해 이를 인수했다. 소공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의 ‘근택 (..
[좌익의 경찰 조직 와해에 맞선 남한 첫 치안총수 조병옥 박사] [좌익의 경찰 조직 와해에 맞선 남한 첫 치안총수 조병옥 박사] 일러스트 = 한상엽 "친일파와 親직업인은 다르다" 조병옥이 일제 경찰을 등용한 이유 日政 경찰 40%가 조선인 97%는 생계형 하위직 해방 후 간부로 진출 趙, '친일 경찰' 공격에 "업에 충실했던 동포를 친일로 매도할 수 있나"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직후, 총독부를 비롯한 관공서 굴뚝에서 한여름에 난데없이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거리마다 잿가루와 타다 만 종잇조각이 흩날렸다. 화신백화점 앞 집회에서 한 연사가 거리에서 모은 타다 만 종이 뭉치를 흔들며 외쳤다. “여기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조선 애국자들을 체포하여 총살하라는 명령서, 고문 실시에 대한 중앙기관의 명령서, 밀정들의 명단과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서울..
['꿈꾸는 백마강' '선창' 쓴 조영출의 월북이 빚은 혼란] ['꿈꾸는 백마강' '선창' 쓴 조영출의 월북이 빚은 혼란] 일러스트 = 한상엽 친일파였다 '김일성 장군님' 품에 안긴 스타 작사가의 처세술 일제때 가요계 군림하다 해방 후 좌익 운동 앞장 인민군가 써 北계관인 돼 김일성 비호에 親日 묻혀 조영출이 배신한 남한엔 허무한 '노래비' 만 남아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힌 백일홍 /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선창’ · 1941) ‘선창’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데뷔 2년 차 신인 가수 고운봉은 일약 조선 최고의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에서 80년 이상 수많은 가수가 무대에 올렸고,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1..
[신의주 학생의거와 대대적 우파 탄압] [신의주 학생의거와 대대적 우파 탄압] 일러스트 = 한상엽 '자유' 외치는 학생 시위대에 공산당은 따발총을 쐈다 소련군 범죄로 여론 악화 의거 후 '반동분자 숙청' 반공 청년들 월남 본격화 “기마순사는 학생 떼를 제지하려고 말고삐를 휙 돌린다. 그와 동시에 도청 편에서는 별안간 으악! 소리가 들리자 후두두 후두두 콩 볶는 소리가 바로 발 밑에서 나듯이 난다. 그 한순간이 지나니까 사방이 괴괴하여졌다. (···) 그러나 기마순사에게 길이 막혀 갈팡질팡하던 학생들만은 그 고함과 총소리에 피가 다시 끓는지, 말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틈을 족제비처럼 살살 빠져서 굳게 닫힌 철창문을 바라보고 단숨에 뛰어들어간다” (염상섭, ‘그 초기’, 1948) 1937년 만주로 이주한 소설가 염상섭은 압록강 건너편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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