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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3

[<12> 청일전쟁과 대한제국]

[ 청일전쟁과 대한제국] 일본 화가가 그린 풍도해전도. 일본군에 의해 포격을 당하고 있는 청나라 함선을 그렸다. 풍도해전은 1894년 7월 25일 현재 경기 안산시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군 함대가 청나라 함대를 공격한 것이다. / 영국박물관 청일전쟁 이후 대한제국 독립···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과거 청나라에 의탁했던 고종 청일전쟁 이후엔 러시아에 의존 아관파천 후 돌아와 재한제국 선포 독립은 가야할 길, 영광이었지만 스스로 힘 아닌 일본의 승전과 국제 간섭 결과였다는 점에서 수치 '조선 = 小중화' 꿈 이루는 듯했으나 권력 독점한 황제, 끝내 독립 못지켜 1894년 조선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은 유교 성리학적 관념에 기초한 천하 질서에 조포 (弔砲)를 쏘았다. 그 충격은 인도인들까지 동원한 영국군이 청..

[<11> 독일 제2제국과 조선, 대한제국]

[ 독일 제2제국과 조선, 대한제국] 1871년 1월 18일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프랑스ㅡ프로이센 전쟁 승리 후 독일 제2제국을 선포하는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 총리대신. 안톤 폰 베르너 1885년 작. 묄렌도르프가 고종에게 조선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정책을 건의한 것은 비스마르크가 추진하고 있던 독 · 러 동맹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 위키피디아 獨 묄렌도르프 , '조선' 에서 중용되고 '대한' 에서 버림받다 淸 이홍장이 추천··· 영향력 막강 러시아 끌어들여 조선 중립화 모색 당시 독일 비스마르크가 추진하던 독 · 러 동맹 정책과 맥을 같이해 빌헬름 2세 후 독 · 러 관계 악화되고 러 · 佛 동맹 맺는 국제 정세 속에서 묄렌도르프는 기피 인물로 찍혀 1897년 대한제국 선포한 고종도 총애..

[면암 최익현]

[면암 최익현] 근대 화가 채용신이 그린 최익현 초상화. '왜 죽을 각오로 을사늑약 못 막았나' 고종 질타한 선비 서원 철폐 등 흥선대원군 정책 비판 고종에게도 날선 상소 올려 유배돼 "을사오적 처단" 73세에 의병 일으켜 충남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 있는 '면암 (勉菴) 고택 (예전에 살던 집)' 이 충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중부지방 양반 가옥의 주요 자료라는 평가입니다. '면암' 은 조선 말 학자이자 의병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최익현 (1833 ~ 1907)의 호입니다. 충남 청양군 목면 송암리에 있는 면암 고택. / 청양군 일본 요구 수용한다면 도끼로 나를 치소서 "전하! 겁이 나서 화친을 청한다면 지금 당장은 좀 숨을 돌릴 수 있겠지만, 이후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무엇으로 ..

[근대로 가는 길목 ⑤ 독립협회 강제해산과 공포의 3년]

[근대로 가는 길목 ⑤ 독립협회 강제해산과 공포의 3년] 대한제국 광무제 고종은 권력 장악을 위해 근대를 포기하고 정치 파트너였던 독립협회를 강제로 와해시켰다. 개혁 세력은 권력 분산을 통해 근대국가 건설을 꿈꿨지만 고종은 1899년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시킨 '대한국 국제'를 통해 반근대적 입법 독재를 완성했다. 이듬해 1900년 고종은 갑오개혁 때 폐지했던 참수형을 부활시키고 이를 국사범에게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10년 뒤 대한제국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독립협회가 야심 차게 건설했던 독립문은 일본 사진 엽서에 '도쿠리쓰몬'이라는 볼거리로전락했다. /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역적 처벌을 위해 참수형을 부활한다" ㅡ 1900년 9월 29일 대한제국 ① 총리대신 김홍집 살인사건 ② 홍영식의 야만적인 죽음 ③ ..

[근대로 가는 길목 ⑥ / 끝, 을사조약과 김구, 이상설, 이승만]

[근대로 가는 길목 ⑥ / 끝, 을사조약과 김구, 이상설, 이승만] 왼쪽부터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주역들인 홍영식, 박영효, 유길준, 서재필, 김옥균, 김홍집, 어윤중, 오른쪽 아래는 1898년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투옥됐던 사람들, 왼쪽 위부터 이승만, 이승인 (이상재 아들), 유동근, 김린, 안국선, 아버지를 대신한 소년수. 아래줄 왼쪽부터 강원달, 홍재기, 유성준, 이상재, 이정식. 이들 가운데 홍영식과 김옥균, 김홍집, 어윤중은 고종 정권에 의해 암살됐거나 처형됐다. 갑신정변에서 독립협회에 이르는 30년 세월 동안 결국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500년 조선왕조는 참담하게 멸망했다. 대한민국은 그 500년 폐허에서 핀 꽃이다. /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국사편찬위, 이승만기념관 조선, 500년 ..

[근대로 가는 길목 ④ 조선 식민지 정책을 결정한 1894년 8월 17일 일본내각회의]

[근대로 가는 길목 ④ 조선 식민지 정책을 결정한 1894년 8월 17일 일본내각회의]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 (建春門). 1894년 7월 23일 새벽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병한 일본군 혼성여단이 건춘문과 서쪽 영추문 (迎秋門)을 부수고 경복궁을 공격했다.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던 경복궁 수비대는 고종 명에 의해 무장해제하고 퇴각했다. 이틀 뒤 일본이 아산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 군함을 공격하며 청일전쟁이 시작됐다. 운명의 8월 17일 일본 내각은 조선 문제 처리를 안건으로 올리고 독립국화, 보호국화, 청일 공동 관리, 중립화 4개 가운데 보호국화를 향후 대조선 정책으로 채택했다. 이에 앞서 고종이 미국에 일본군 철병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 클리블랜드 정권은 이를 거부했다. 훗날 35년 식민지..

[(4) 입헌군주제- 혁명전야의 대격돌]

[(4) 입헌군주제- 혁명전야의 대격돌] ▲ [윤치호 일기]와 관복입은 윤치호. (자료사진) "이것이 왕이라니···" 윤치호의 탄식 "오늘의 관보는 독립협회의 해산과 '헌의 6조'에 서명한 대신들을 면관시킨 칙령을 공포했다. 이것이 국왕이라니!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배신적인 어떤 비겁자라도 대한의 황제보다 더 천박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친일노예 유기환과 친러노비 조병식의 수중에 있다. 러시아인들과 일본인들이 이 사건에 개입해서 의심할 여지없이 모종의 알짜 이권을 위하여 그들의 노예들을 지원하고 있다···" (「윤치호 일기」ㅡ5, 1898. 11. 5.)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국왕'ㅡ그는 고종이다. '혁명의 해' 1898년 11월에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가 이런 일기를 쓰기까지 무슨 일이..

[(3) 1898년: ‘민주화 혁명’의 불꽃]

[(3) 1898년: ‘민주화 혁명’의 불꽃] ▲ 1898년 3월 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연단 앞에 태극기를 세웠다.(자료사진) 왕정개혁과 자유민권 투쟁으로 지샌 1년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기회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때, 기회를 기회로 알고 실천의지를 펼치는 힘이 나타날 때, 그 기회는 새 역사 창조의 전환점으로 재탄생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마찬가지다. 지금으로부터 124년전 1893년이 그런 해였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기회, 500년 왕권독재의 껍질을 벗고 자유민권과 민주공화제의 새 나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1898년이었다. 유럽에선 프랑스 혁명 100년을 맞은 때, 문호를 개방한 고종의 대한제국에도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시대적 요구에 열정을 불태우는..

[근대로 가는 길목 ③ 김옥균의 끔찍한 처형]

[근대로 가는 길목 ③ 김옥균의 끔찍한 처형] 충청남도 아산에 김옥균 무덤이 있다. 도로명 주소 또한 김옥균 호를 따서 고균길이다. 1911년 당시 아산군수였던 양자 김영진이 일본에 있던 김옥균 묘에서 머리카락을 가져와 이장한 묘다.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된 뒤 조선으로 끌려온 김옥균 시신은 4월 14일 밤 온몸을 토막내고 칼집을 내는 부관참시와 능지처참형을 받고 팔도에 뿌려졌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10년째 감옥에 갇혀 있던 아버지 김병태는 아들 시신이 추가형을 받은 다음 날 천안군 감옥서에서 처형됐다. 역적이 죽은 뒤 그 시신에 처벌을 가하는 '역률 추시'는 영조 때, 가족을 연좌해 처벌하는 '노륙형'은 정조 때 법으로 금지된 형벌이었다. 법을 무시하고 복수를 완성한 고종은 "10년 동안이나..

[근대로 가는 길목 ①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살인 사건]

[근대로 가는 길목 ①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살인 사건]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는 조선 첫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무덤이 있다. 1894년 이래 갑오개혁 정부를 이끌던 김홍집은 을미사변 (1895) 넉 달 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도주한 1896년 2월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 육조거리에 있던 경무청에 구금됐다가 경무청 경무관 안환 (安桓)을 비롯한 고종이 보낸 경무청 순검들에게 살해됐다. 시신은 함께 살해된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시신과 함께 새끼줄에 묶여 종로거리를 끌려다니다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돌팔매질을 당했다. 거리에 방치됐던 시신들은 "외국인 눈에 민망하다"는 신하들 조언에 따라 고종이 가족에게 인수시키라 명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조선 첫 내각총리대신 김홍집 유해는 그래서 지금 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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