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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땅의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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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대한민국 ⑩ 50주년을 맞은 대덕연구특구와 중이온가속기 라온 (RAON)] [공화국 대한민국 ⑩ 50주년을 맞은 대덕연구특구와 중이온가속기 라온 (RAON)]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있는 중이온가속기 라온 (RAON). 수소 (H), 헬륨 (He) 같은 가벼운 원자를 발사해 충돌시켜 다양한 동위원소를 만드는 장비다. 이들 가운데 ‘극도로 짧은 순간만 존재하는’ 희귀동위원소가 연구 대상이다. 거대하게는 우주 탄생의 비밀 규명부터 2차전지 생산까지 이 장비를 통해 연구할 수 있다. 지금껏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돈 되는’ 응용과학이 아니라 성과가 언제 나올지 불확실한 기초과학에 대한민국이 눈을 돌리고 있는 물증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산하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소장 홍승우가 말했다. “대한민국과 선배 과학기술자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고. / 박종인 기자 "대한민국 기초과학을 가능케 ..
[공화국 대한민국 ⑥ 정동 (貞洞) 시대 과학기술처와 원자력병원] [공화국 대한민국 ⑥ 정동 (貞洞) 시대 과학기술처와 원자력병원] 서울 한복판 세종로사거리 뒷골목에 있는 사무실건물 ‘사조빌딩’ (왼쪽 흰 건물)은 대한민국 과학기술 혁명이 태동한 역사적인 장소다. 1959년 이승만 정부가 만든 원자력연구소는 4년이 지난 1963년 이 자리에 건물을 신축하고 방사선의학연구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또 4년이 지난 1967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처 첫 사무실이 이 병원 건물에 입주했다. 1970년 과기처가 종합청사로 이전할 때까지 이 건물에서 이승만 정부가 만든 과학기술의 산실과 박정희 정부가 신설한 과학기술 근대화 작업실이 공생하며 대한민국을 이끌었다. / 박종인 기자 그들은 정동 뒷골목에서 과학과 기술 혁명을 꿈꿨다 1959년 탄생한 원자력연구소 1963년 서울 정동 뒷골목에..
[공화국 대한민국 ⑦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와 과학기술처의 발족] [공화국 대한민국 ⑦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와 과학기술처의 발족] 1959년 7월 15일은 대한민국 과학계에 큰 획을 그은 날이었다. 문교부와 학술원이 후원한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 가 서울 동숭동 서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제목은 원자력이지만 이 학술회의는 과학기술계 다양한 분야 학자 600여 명이 참석한 종합학술회의였고 공화국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최대 규모 과학기술 학술회의였다. 전날인 7월 14일 당시 양주 공릉리 서울공대에서 열린 연구용 원자로 1호기 기공식을 계기로 열린 이 학술회의에서 과학 - 기술학계는 원자력 종합개발정책과 과학기술진흥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 과학자의 요구는 7년 뒤인 1966년 12월 과학기술진흥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 서울기록원 1959년 7월 15..
[공화국 대한민국 ⑨ 켈로부대 출신 94세 원자력 아버지 이창건] [공화국 대한민국 ⑨ 켈로부대 출신 94세 원자력 아버지 이창건] 대한민국 원자력의 아버지 이창건이 대한민국 1호 원자로 트리가 마크 2 (TRIGA MARK II) 앞에 섰다. 1929년생인 이창건은 30년 뒤인 1959년 대한민국이 도입한 이 원자로를 운전하며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했다. 먹고살 일도 막막했던 1950년대부터 이들을 길러낸 지도자, 그리고 이들 전문가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아버지들이다. 서울 공릉동에 있는 트리가 마크 2는 핵심은 다 해체되고 외형은 근대유산으로 지정됐다. / 박종인 기자 "이승만은 애국자요, 82세에 20년 뒤 보고 원자력 준비시켰으니까" 내가 94년 살아보니··· '일본 미웠지만 이젠 손잡아야' '켈로 대원들 생각하면 눈물만' '훌륭한 선배들, 지도자 덕에 싸고..
[공화국 대한민국 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초대 소장 최형섭] [공화국 대한민국 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초대 소장 최형섭] 1970년 1월 9일 서울 홍릉 시절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멤버 기념사진. 모두 미국 유수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최형섭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의 설득으로 한국에 돌아온 박사들이다. 1967년 KIST를 방문한 미국 부통령 험프리는 "역두뇌유출 (counter brain drain)" 이라고 부르며 놀라워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나보다 봉급이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들은 미국에서 받던 연봉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과학을 연구했고 기술을 개발했다. 박정희 정부 과학기술비서관이었던 현 한국기술경영교육연구원 원장 김주한이 말했다. "조선을 정체시켰던 사농공상 (士農工商) 질서를 무너뜨리고 과학자와 ..
[공화국 대한민국 ④ 공동체의 에너지원, 인력 (人力)에서 핵융합으로] [공화국 대한민국 ④ 공동체의 에너지원, 인력 (人力)에서 핵융합으로] 대한민국은 석탄조차 외면하고 인력에 의존했던 조선과 차원이 다른 국가다. 사진은 대전광역시 대덕연구개발특구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운영 중인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 태양과 같이 핵융합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치다. 핵융합에는 1억도라는 초고온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이 관건인데, 연구원에 따르면 이 기술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다.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에 이어 핵융합발전이 상용화되면 대한민국은 또 한번 변신한다. / 박종인 기자 석탄도 모르던 나라, 지금은 인공태양을 띄우다 1948년 北 송전 중단과 1950년 6 · 25 전쟁으로 대한민국 미래 건설할 에너지원 사라져 1956년 원자력법 통과 1959년 원자력..
[공화국 대한민국 ② 김일성을 조종한 소련군 군사위원 테렌티 스티코프의 일기] [공화국 대한민국 ② 김일성을 조종한 소련군 군사위원 테렌티 스티코프의 일기] 1946년 3월 20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미국 측 수석대표는 하지 (앞줄 맨 왼쪽) 중장, 소련 측 수석대표는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 군사위원 스티코프 (하지 중장 오른쪽) 중장.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설계도는 김일성이 아니라 스티코프가 만들었다. 스티코프가 쓴 일기에 따르면 소련군 대위 김일성은 일거수일투족을 스티코프에게 지시받았다. 김일성은 완벽한 꼭두각시였다. / 국사편찬위원회 소련 꼭두각시 김일성이 농락한 대한민국 건국 북한 정권 과정 기록한 스티코프 일기 "김일성은 '동의하며' 지시를 수행" 46. 9. 11 '反압제 항의집회 조직' 46. 9. 28 '요구 관철 때까지 총..
[공화국 대한민국 ③ 까막눈 조선인이 문화를 창조하기까지] [공화국 대한민국 ③ 까막눈 조선인이 문화를 창조하기까지] 언문 즉 한글을 멸시하고 한문에 집착한 지식인들 탓에 조선 백성은 500년 내내 까막눈 신세를 면치 못했다. 10명 중 9명은 까막눈이었던 조선은 식민 시대 종료 후 문맹률 80%에 이르는 문맹 사회로 해방을 맞았다. 미군정이 민간과 함께 역점적으로 실시한 한글 교육 결과 1948년에는 문맹률이 41%로 낮아졌다. 그해 치러진 선거는 까막눈을 위해 이름과 함께 '작대기' 로 입후보자 이름을 표시했다. 자유민주주의 정착과 근대화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문맹 국민 완전 퇴치 계획'을 세우고 5년 동안 민관 합동으로 성인 한글 교육을 실시했다. 1958년 말 대한민국 문맹률은 4.1%로 급감했다. 교육은 문화적 각성을 촉발시켰다. 지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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