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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기자의 흔적 12

[안중근 유묵에 숨은 역사의 아이러니]

[안중근 유묵에 숨은 역사의 아이러니]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서 있는 안중근 동상. 역사에 그가 남긴 흔적은 깊고 넓다. 사형 선고 후 안중근은 많은 교훈적인 글들을 남겼다. / 박종인 기자    안중근 유묵을 받은 사카이는 을미사변 범인이었다   '思君千里' 유묵 선물 받은수사관 사카이 요시아키알고 보니1895년 을미사변 가담해피묻은 채 영사관 복귀한순사 사카이 마쓰타로    1909년 10월 30일 중국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관동도독부 여순고등법원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 (溝淵孝雄)가 안중근에게 물었다. “왜 이토 공작을 적대시하는가?” 첫 번째 답은 이러했다. “이토의 지휘로 한국 왕비를 살해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안중근편1′, 2.1909년 10월 30일 미조부치 신문조..

[대문 하나에 숨은 父子 권력투쟁의 흔적]

[대문 하나에 숨은 父子 권력투쟁의 흔적]    서울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은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행사하던 공간이다. 대원군은 사진에 보이는 솟을대문 안쪽 사랑채, 노안당에서 집무를 했다. 1993년까지 이 솟을대문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여닫고 잠그게 설치돼 있었다. 아들 고종과 권력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흔적이다. / 박종인 기자    운현궁 솟을대문은 왜 100년 동안 뒤집혀 있었나   1863년 고종 즉위1864년 '本宮' 운현궁에대원군ㅡ고종 전용문 설치 1885년 고종이'정적' 아버지 유폐하려대문에 '가로잠금목' 설치솟을대문이 뒤집힌 이유   뒤집혀 있었던 솟을대문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서울 운현궁에는 수수께끼 같은 문이 하나 있다. 대원군이 사무실로 쓰던 사랑..

[현장 사진으로 분석한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

[현장 사진으로 분석한 한강 인도교 폭파사건]    2016년 서울시가 한강대교에 설치한 동판. '일방적인 교량 폭파로 피란민 800여 명 사망' 이라는 문구는 사실과 다르다. 서울시에 따르면 역삼각형 형태는 '국가 폭력' 을 상징한다.    7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6 · 25 인도교 폭파 사건의 진실   서울시 한강대교 동판'피란민 800명 희생' 에서'군중 500 ~ 800 추정' 으로 북한군 촬영 사진들에는군인과 경착 시신들만···민간인은 찾을 수 없어 국방부, 검증없이 戰史에'사람' 을 '피란민' 으로 폭파 사건 당시중지도 주변은 육지민간인 희생 배제는 못해    ‘피란민들 사지가 찢겨 허공을 날아 강물로 떨어질 때.’ (2023년 6월 28일 ‘오마이뉴스’) ‘피란민 4000여 명이 현..

[왕비 민씨와 흥선대원군 그 사진들의 진실]

[왕비 민씨와 흥선대원군 그 사진들의 진실]    '꼬레아 꼬레아니' 실린 '기생의 의복 한 벌' 사진    '합성사진' 속 여자가 왕비요, 마고자 차림 남자가 대원군이라는데···   '민비' 라며 돌아다닌사진 두 장알고 보니 모두 가짜"진짜" 라는 사람 아직도 '흥선대원군' 이라는마고자 입은 남자 사진 촬영한 미국학자 방한 때대원군은 중국 유폐中대원군은 귀국 후도 유폐촬영 자체가 불가능   고종비 민씨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녀를 명성황후라고 부르면 민족적이라고 하고 민비라고 부르면 친일적이라고 한다. 왕비 민씨는 존경을 받기고 했고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을 일으킨 왕십리 하급 군인들은 “한 사람만 골라 처치하고 나머지 민씨들을 다 죽인다 (區處一人盡殺諸閔 · 구처일인 진살제민)”..

[부실 검증이 낳은 혼돈 서대문 순국선열추념탑]

[부실 검증이 낳은 혼돈 서대문 순국선열추념탑]    서울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순국선열추념탑. 주요 독립운동 8개 장면을 탑 뒷면 화강암에 조각해놨다. / 박종인 기자    순국선열추념탑 '의병 처형상' 속 의병, 진짜 의병인가 떼강도인가?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1992년 세운 추념탑'출처 불명 사진' 이용해의병 처형상 새겨 원본 사진엔 일본군 대신흰갓 쓴 조선 형리 (刑吏) 국장 (國葬) 기간인1904년 3월 15일형집행 장면으로 추정 '실록' 에 따르면이들은 집단 강도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에는 ‘순국선열추념탑’ 이 있다. 해마다 순국선열의 날인 11월 17일이면 탑 앞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탑은 1992년 광복절에 서울시가 설치했다. 뒷면에 설치된 대형 화강암에는 ‘..

[서울 안국동 윤보선가옥 100년사]

[서울 안국동 윤보선가옥 100년사]    서울 종로구 안국동 8ㅡ1번지 윤보선 가옥 사랑채. 1870년대 여흥민씨 민영주가 처음 만든 이래 1970년대까지 구한말 ~ 대한민국 주요 사건 주역들이 살았던 공간이다. 오른쪽 향나무는 정보과 형사 눈을 피하려는 가림막이고 앞의 연못가는 민주화 가족들이 모였던 곳이다. / 박종인 기자.    100년 역사가 흐르는 안국동 8ㅡ1번지, 나는 집이다   민비 친척 민영주가 짓고갑신정변 박영효가 살고고종 고문 일본인이 살고친일파 애첩은 살다 달아나고개화파 기업가 윤치소가 사서대통령 윤보선이 살았던 집    서울 종로구 안국동 8ㅡ1번지에 큰 집이 있다. 집 이름은 ‘윤보선 가옥’ 이다. 도로명 주소는 ‘윤보선길62′ 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던 집이다. 지금은 ..

[기록에 나와 있는 고종 사망의 진실은]

[기록에 나와 있는 고종 사망의 진실은]    고종 초상화. 1919년 1월 21일 그의 죽음은 거국적인 독립운동을 촉발했다. / 국립고궁박물관    10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는 '고종 독살' 괴담   영친왕 결혼 나흘 앞둔1919년 1월 21일 급서 "독립불원서 서명 거부해친일파가 독살" 소문 독립불원서 자체가 괴담그런 문서는 없어숙직하며 지휘했다는이완용은 당시 일본 체류 사실과 칭작을 섞어서100년째 사실처럼 유포   105년 전 유인물 한 장 1919년 3월 1일 서울 시내에 유인물이 유포됐다. ‘국민회의’ 명의로 살포된 유인물에는 ‘이완용으로 하여금 윤덕영, 한상학이 궁녀들을 끌어들여 고종을 독이 든 식혜로 죽였다’ 고 적혀 있었다. 이완용과 김윤식, 윤택영, 조중응과 송병준, 신흥우가 파리..

[명월관에서 식도원까지 원조 외식사업가 안순환]

[명월관에서 식도원까지 원조 외식사업가 안순환]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 시립박물관에 있는 기생 홍련 그림. 이중섭 스승인 이시이 하쿠테이 작품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던 요리점 명월관 단골인 이시이가 즐겨 찾던 홍련이 모델로 추정된다. / 마츠모토시립박물관    명월관, 원각사, 태화관··· 대한제국에도 '백선생' 이 있었다   사업의 귀재가 된전환국 기수 안순환1903년 명월관 개점1908년 원각사 운영1908년 황실 주방 책임자1918년 인사동 태화관말년은 유학에 몰두    21세기 대한민국 외식 산업계는 물론 TV를 휩쓸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백 선생’ 백종원 (57)이다. 프랜차이즈 외식 사업가로 성공해 TV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더니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소환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

[서울 옥인동에 남은 윤덕영의 벽수산장]

[서울 옥인동에 남은 윤덕영의 벽수산장]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윤덕영의 한옥. 부패한 친일파 윤덕영은 1921년 고종 부태묘 행사 때 참봉 벼슬첩 수백장을 팔아 비웃음을 샀다. / 박종인 기자    나라 망하고도 제 버릇 못 고친 '매관매직' 의 흔적   친일 행각으로 비난받던순종 비 큰아버지 윤덕영 1921년 고종 부태묘 때'분참봉' 벼슬 판매'매관매직' 행각 서울 옥인동에아방궁 '벽수산장'골목 곳곳에 그 흔적    서울 종로구 옥인동 골목에는 뜬금없는 돌기둥이 있다. 연립주택 사이로 난 도로 양편에 서 있는 육중한 돌기둥이다. 큰길가 ‘송석원 터’ 라는 표지석 뒤쪽 골목이다. 한쪽 기둥은 온전하고 다른 쪽 기둥은 몸통 없이 기단과 머릿돌만 있다. 그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지번이 옥인..

['행방불명' 경복궁 영추문 소문 (小門)의 행방을 찾았다]

['행방불명' 경복궁 영추문 소문 (小門)의 행방을 찾았다] 서울 경복궁 자경전 동쪽 담장에는 정체 모를 벽돌문이 붙어 있다. 꽃담을 가진 자경전과 어울리지 않는 문이다. 그 어느 보고서나 안내서, 안내판에도 설명이 없다. 그런데 이 문은 1926년 붕괴됐던 경복궁 서쪽 영추문 문루에 있던 소문 (小門)임이 밝혀졌다. 영추문이 전면 철거된 이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 문이 경복궁 한 가운데 떡하니 숨어 있는 것이다. / 박종인 기자 100년 전 실종됐다는 궁궐 문··· 경복궁관리소 140m 앞 담장에 박혀 있다 1926년 붕괴된 영추문 총독부가 전면 철거 문화재청이 말하길 "원자재들 행방불명" 그런데 '부속문' 하나가 경복궁관리소 앞 담장에 100년째 '멀쩡' 행방불명됐다고 알려졌던 경복궁 영추문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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