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일러스트 = 김하경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 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ㅡ 백석 (1912 ~ 1996)
이 시의 인용은 이숭원 문학평론가의 책 ‘백석을 만나다’ 에 실린 현대어 정본을 따른 것이다. 백석은 이 시를 1938년에 발표했다. ‘잠풍 날씨’ 는 바람이 드러나지 않게 잔잔하게 부는 날씨를 일컫고, ‘달재’ 는 달강어로서 흔히 장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이다. ‘진장’ 은 오래 묵은 진한 간장을 말한다.
제목을 대하면서 이런 궁금증이 난다. 시인은 무엇을 피하고 또 얼굴을 돌린다는 것일까. 아마도 세속의 지저분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외면한다는 뜻일 듯하다. 시인은 그런 일로부터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죽 늘어놓는다. 좋은 날씨, 가난하지만 맑고 순량한 친구와 그의 새 구두, 매일 한 가지의 넥타이를 매며 그리워하는 사람, 한 달 치 봉급, 멋을 부려 기른 수염, 비싸지는 않지만 입맛을 돌게 하는 생선 음식 등이 그것이다. 백석은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라고 읊어 염속 (染俗)되는 것을 꺼렸으니 그에게 속된 것은 눈 밖에 있었을 테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2월 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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