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성주 (城主)]

드무2 2024. 7. 6. 11:56
728x90

[성주 (城主)]

 

 

 

일러스트 = 김성규

 

 

 

성주 (城主)

 

당신은 성주가 되었다

성 하나에 한 사람뿐인

그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모자를 벗지만

그때 웃음판이 멈추기도 한다

당신의 고독은 깊어간다

 

탁월함이 인격인 건 아니고

행복이 가치의 지표도 아니다

재물은 너무 많아도 안 되고

고독은 너무 적어도 안 된다

 

멀리 보며 전체를 생각하라

좋은 꿀의 꿀물을 타서

많은 이가 감미롭게 마시게 하라

겸허히 기도하라

 

ㅡ 김남조 (1927 ~ 2023)

 

 

 

김남조 시인은 2020년에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람아’ 를 펴냈다. 시인의 열아홉 번째 출간 시집이었다. 이 시는 그 시집에 실려 있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면서 자신에게 시 (詩) 혹은 시심 (詩心)은 “한 덩이의 작은 흙이었으면서 기적처럼 풀씨가 돋아나는 신비를 보여 주었” 다고 회고했다. 나는 이 시심을 사람이 갖고 있는 내면의 옥토 (沃土)로 이해한다. 그리고 내면의 너른 옥토를 소유하고 있기에 모든 사람은 제 스스로 성주의 지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편들은 긍정과 사랑, 기도의 노래였다. 이러한 시학이 이 시의 행간에 숨 쉬고 있다. “삶은 언제나 / 은총 (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라고 쓴 시 ‘설일 (雪日)’이 얼핏 보이고,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고 쓴 시 ‘편지’ 의 뭉클한 감동도 느껴진다. 시인은 내게 큰 양초를 포장해서 보내주신 적이 있는데, 그 뜻은 마지막 행에 담겨 있는 듯하다.

 

 

문태준 시인

 

 

[출처 : 조선일보 2024년 2월 19일 자]

 

 

 

 

 

 

728x90

'詩, 좋은 글 ... >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담 한 송이]  (0) 2024.08.03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0) 2024.07.26
[매화를 찾아서]  (2) 2024.06.08
[오 따뜻함이여]  (0) 2024.06.01
[사랑]  (0) 2024.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