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숨어있는 세계사

[파라오]

드무2 2024. 5. 2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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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파라오의 저주' 로 유명한 고대 이집트 유물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1922년 무덤 속 미라로 발견된 파라오 투탕카멘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순장품으로, 당시 발굴 이후 고령 작업자 등이 사망하면서 '저주 걸린 것이 아니냐' 는 음모론이 유행했어요. / 이집트박물관

 

 

 

父子가 '파라오' 로 공동 통치··· 권력 승계 혼란 없었죠

 

 

 

아버지는 외교, 아들은 내정 맡아

이집트 역사상 200명 넘게 존재

'황소 꼬리' 달고 뛰며 건강 증명도

 

 

 

이집트의 압델파타흐 시시 대통령이 3선 (선거에서 세 번째 당선)에 성공했대요. 올해부터 2030년까지 6년간 더 이집트 대통령으로 집권하게 된 거예요. 그는 2012년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이었어요. 그런데 이듬해엔 자신을 장관에 임명한 무르시 대통령을 쿠데타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로 쫓아내는 일을 주도했어요. 반대 세력은 강제 진압했습니다.

시시 대통령은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 군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97%라는 득표율로 당선됐어요. 이어 2018년에 치러진 선거에서도 97%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죠. 당시 이집트 헌법에서는 대통령이 3번 연속으로 집권할 수 없도록 했어요. 그다음 번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 해야 했죠. 그러나 그는 2019년엔 헌법을 고쳐서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리고 '3연임 (3번 연속 집권) 금지' 조항을 완화했어요. 2030년까지 장기 집권의 틀을 만든 거죠. 결국 이번 선거에서 목표를 이뤘고요.

이런 장기 독재 권력을 구축한 엘시시 대통령을 두고 '현대판 파라오' 라고 불러요. 그렇다면 실제 역사 속 파라오의 모습은 어땠는지 알아보기로 해요.

 

 

인간으로 태어나 죽어서는 신으로

파라오란 고대 이집트의 왕을 일컫는 말이죠. 원래는 '위대한 거처' '큰 집' 을 뜻했대요. 이집트 파라오만큼 엄청난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은 다른 고대 국가에선 없었다고 해요. 그만큼 파라오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통치했어요. 그를 지칭하는 표현도 화려했어요. '호루스 (이집트의 지상신)' '황금의 호루스' '두 여신의 보호자' '상 · 하 이집트의 왕' '라 (이집트의 태양신)의 아들' 등 이름 다섯 가지를 조합해서 불렀죠.

고대 이집트인은 파라오는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대관식 (왕에 오르는 행사)을 거친 다음엔 '반신 (半神)' 이 된다고 여겼어요. 파라오는 신과 사람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사망하면 완전한 신이 됐습니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미라로 만들어졌고, 피라미드와 같이 하늘과 연결될 수 있는 무덤에 안치했어요.

이집트 역사에서 파라오의 숫자는 학자들의 계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200명이 넘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파라오가 있었음에도 이집트에는 커다란 왕위 계승 다툼이 없었어요. 물론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집트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기도 했어요. 고대 이집트엔 파라오가 2명인 시기가 상당 기간 존재했습니다. 아버지 파라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신의 아들인 황태자를 자신과 똑같은 권한을 가진 파라오로 책봉해서 이집트를 공동으로 통치했기 때문이죠.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이원적 시스템이 이집트의 정치적 안정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합니다. 종종 아버지 파라오가 외국과 전쟁에서 사망하더라도, 아들 파라오가 바로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권력 승계 과정에서 큰 혼란을 방지할 수 있었던 거죠.

 

 

복잡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 삶

새 파라오의 대관식은 모든 이집트인이 참여하는 큰 행사이자 중요한 의식이었어요. 파라오가 될 자는 목욕재계 (부정을 타지 않도록 목욕하고 몸가짐을 깨끗이 하는 일)한 후 신전으로 들어가 각종 장식, 머리띠, 목걸이 등의 파라오를 상징하는 징표를 받았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식은, 성직자들이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흰 관과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붉은 관을 파라오의 머리에 씌워 주는 것이었어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라는 국가의 두 지역을 결합하고, 이전 파라오의 죽음과 더불어 무너졌던 통일성을 복구하는 의식이었죠. 이 밖에도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수도인 멤피스의 성벽을 돌아본다거나, 신성한 나무에 새 파라오의 이름을 새기는 등의 다양한 의식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대관식을 마친 파라오는 신전을 나가 왕국을 돌며 백성들을 만났어요.

그렇다면 파라오의 일상은 어떠했을까요? 사실 파라오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힘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복잡한 의식을 거쳐야 했고, 그 방의 비밀을 관리하는 책임자까지 있었거든요. 파라오의 취미 또한 여느 왕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통치를 위한 목적이었어요. 전차 경주, 사냥 등의 스포츠 활동은 고대 왕국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이처럼 파라오의 사적인 생활도 결국 공적인 생활의 일부였던 거죠.

파라오의 하루는 왕국의 정치 · 경제 · 군사 등 모든 분야를 두루 살피는 것만으로도 부족했습니다. 파라오는 가장 상위 존재로서 왕국을 다스렸지만, 그 책임도 막중했던 겁니다. 이집트인들은 마트 (이집트의 법, 조화, 정의의 신)의 옹호자인 파라오가 법과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파라오는 법령과 규정을 제정하는 최고 입법자 역할을 했어요. 반역이나 왕국에 대한 범죄와 같은 큰 사건의 경우, 파라오가 직접 사건을 주관하고 처벌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군 지휘관으로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했죠.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파라오의 종교적 역할이었어요. 파라오는 행동 지침을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가 선조들의 지혜를 연구했어요. 신전도 지어 신에게 주기적으로 숭배와 예식을 드려야 했죠.

 

 

주기적으로 통치 능력을 증면

오랜 기간 이집트인들을 다스리려면 본인이 훌륭한 통치자임을 백성에게 보이는 장치가 필요했어요. 그중 하나가 축제였습니다.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가 '세드 (Sed)' 축제였습니다. 이는 파라오의 통치를 축하하고 신성한 합법성을 재확인하는 자리였어요. 파라오는 30년을 통치한 후엔 세드 축제를 열고 육체적 시험과 종교의식을 통해 여전히 통치할 능력이 있는지 신과 이집트인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파라오는 황소의 꼬리를 달고 달리기를 했는데, 이는 왕의 신체적 능력을 강조하는 의미였다고 해요. 이후 이 축제는 2년이나 3년마다 반복됐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선 파라오와 같은 절대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지만 파라오조차도 권력을 아예 제 마음대로 휘두를 수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권력이 큰 만큼 많은 책임이 따랐던 거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선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이 직접 권력자를 뽑고 있어요. 그런 만큼 국민 모두 누가 제대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인지 꼼꼼히 확인해야 하겠어요.

 

 

 

 파라오가 신에게 제의를 진행하는 모습.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에 벽화로 새겨져 있어요. / 브리태니커

 

 

 

 이집트 기자에 위치한 피라미드 군 (群). 이 중 가장 큰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쯤 살았던 파라오 '쿠푸' 의 무덤이에요. 높이가 약 140m에 달해 신에 버금가던 파라오의 권력을 보여줘요. / 위키피디아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장근욱 기자 (muscle@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4년 1월 1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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