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2025년

[2025ㅡ00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02

드무2 2025. 2. 1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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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ㅡ003 연표로 보는 서양미술사] 02

 

 

 

 

 

 

1235년경

고딕 성당의 '꽃'

 

 

 

 

<샤르트르 대성당의 북쪽 장미창>

스테인드글라스, 지름 약 1050㎝,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샤르트르 대성당.

 

 

 

1280 ㅡ 1290년경

옥좌에 앉은 마리아와 예수

 

 

 

 

 

<산타 트리니타의 마에스타>

치마부에, 패널에 템페라, 385 × 223㎝,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296년

피렌체 대성당 착공.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시작되어 여러 건축가의 손을 거쳤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혁신적 설계로 거대한 돔을 얹었다. 이 사업은 140여 년이 지나서야 마무리된다.

 

 

 

 

 

 

1295 ㅡ 130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설자

 

 

 

 

<오상을 받는 성 프란체스코>

조토 디 본도네, 패널에 템페라, 하단 각각 <인노센트 3세의 꿈>, <교단 회칙을 인준하는 교황>, <새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 313 × 163㎝, 파리 루브르 박물관

 

 

 

 

 

 

 

1304 ㅡ 1306년

르네상스의 싹이 움트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함>

조토 디 본도네, 프레스코, 200 × 185㎝,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의 엔리오 스크로베니가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번 아버지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지은 개인 예배당으로 1305년에 완공되었다. 파도바 아레나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 인근에 있어 아레나 예배당이라고도 부른다. 1304 ~ 1306년 사이, 조토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 실내 전체를 장식했다.

 

 

 

 

 

 

1309년

교황청,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가다

 

 

 

 

아비뇽 교황청

 

 

 

1321년

이탈리아의 단테가 대서사시 『신곡』을 완성하다

 

 

 

 

도메니코 디 메켈리노, <신곡을 든 단테>, 1456년

단테의 뒤로는 연옥과 피렌체 시내가 그려져 있고, 단테는 한 손에 『신곡』을 든 채 지옥으로 내려가는 죄인들을 가리키고 있다.

 

 

 

1335년경

시에나에서 아비뇽으로

 

 

 

 

<갈보리로 가는 길>

시모네 마르티니, 패널에 템페라, 30 × 20㎝, 파리 루브르 박물관

 

 

 

1337년

백년 전쟁 시작

 

 

 

 

쥘 르느뵈, <오를레앙을 공격하는 잔다르크>, 1886 ~ 1890년

 

 

 

1347년

흑사병 창궐

 

 

 

 

흑사병으로 매장되는 시신들과 화형당하는 유대인들을 그린 중세의 삽화, 1353년경

 

 

 

1415년

피렌체 길드의 발달

 

 

 

 

<성 게오르기우스>

도나텔로, 대리석, 높이 209㎝, 피렌체 오르산 미켈레 교회

 

 

 

1425 ㅡ 1428년경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원근법

 

 

 

 

<성 삼위일체>

마사초, 프레스코, 667 × 317㎝,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1434년

유화라서 가능한 섬세한 그림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얀 반 에이크, 목판에 유채, 83 × 60㎝, 런던 내셔널 갤러리

 

 

 

 

화가의 모습과 서명이 그려진 부분.

 

 

 

1434년

코시모 데 메디치의 귀환

 

 

 

 

자코모 다 폰토르모, <코시모 데 메디치의 초상> 1518 ~ 1520년경

 

 

 

1439년

피렌체 공의회 개최

 

 

 

 

베노초 고촐리, <동방박사의 행렬>, 1459 ~ 1462년경

메디치 가문이 공의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3면짜리 벽화 그림 중 한 면이다. 앞장선 사람은 코시모 데 메디치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로, 훗날 피렌체인들에게 '위대한 자' 로 불리는 지도자로 등극한다.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술 발명

독일의 금속 세공업자 구텐베르크가 수년의 연구 끝에 낱개의 금속 활자들을 압착기에 넣어서 찍는 방식을 발명하다. 대량 인쇄가 가능한 이 방식으로 지식의 전달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1441년경

개인을 기념하는 초상화들이 제작되다

 

 

 

 

<레오넬로 데스테의 초상>

피사넬로, 목판에 템페라, 28 × 19㎝, 이탈리아 베르가모 아카데미아 카라라

 

 

 

1453년

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

 

 

 

르네상스의 후원자 메디치 가문

 

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나라의 아버지, 즉 국부 國父로 불리던 코시모 데 메디치 (1389 ~ 1464)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 (1449 ~ 1492)는 1469년 20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인 지배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코시모 데 메디치부터 로렌초 데 메디치까지의 시절은 피렌체가 르네상스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후 메디치 가문은 세 명의 교황과 수많은 추기경을 배출했고, 두 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하는 등, 1743년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의 시대까지 피렌체의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반니 디 비치 1360 ~ 1429

 

 

'국부' 코시모 1389 ~ 1464

 

 

 

피에로 디 코시모 1416 ~ 1469

 

 

 

'위대한 자' 로렌초 1449 ~ 1492

 

 

 

줄리아노 1453 ~ 1478

 

 

 

조반니 디 로렌초 1475 ~ 1521

교황 레오 10세 (재위 1513 ~ 1521)

메디치 가문에서 처음 나온 교황으로, 레오 10세 시절 성 베드로 성당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 를 판매하였고, 마르틴 루터가 이를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다.

 

 

 

카테리나 1519 ~ 1589

프랑스식으로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라고 불린다.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이자 남편이 죽은 뒤에는 1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아들 샤를 9세의 섭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끼쳤다.

 

 

 

줄리오 1478 ~ 1534

교황 클레멘스 7세 (재위 1523 ~ 1534)

 

 

 

안나 마리아 루이자 1667 ~ 1743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직계 후손.

피렌체와 인근 토스카나 지역의 통치권을 포기, 가문 소유의 모든 것을 새 통치자에게 양도했는데, 가문의 사무실로 사용하던 우피치, 저택이었던 피티궁, 그리고 이탈리아 각지에 흩어진 여러 저택에 가득한 미술작품, 각종 보석, 가구, 도자기, 장서 등을 '가문의 영광' 이 아니라 '국가의 영예' 를 위해 기증했다. 피렌체는 오늘날까지 에디치 가문이 일구어놓은 업적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피에르프란체스코 1431 ~ 1476

 

 

 

조반니 일 포풀라노 1467 ~ 1498

 

 

 

조반니 1498 ~ 1526

 

 

 

코시모 1세 1519 ~ 1574

토스카나 대공

피렌체의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피렌체와 그 일대 토스카나 지역을 공국의 형태로 지배했다.

 

 

 

마리아 1575 ~ 1642

프랑스식으로는 마리 드 메디시스. 프랑스 앙리 4세의 왕비이자 루이 13세의 어머니로, 어린 아들의 섭정을 맡았다.

 

 

 

1475 ㅡ 1478년경

발이 너무 작은 건 아닐까

 

 

 

 

<죽은 예수>

안드레아 만테냐, 캔버스에 템페라, 68 × 81㎝,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1478년

파치 가문의 음모 발생.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도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파치 가문이 교황 식스토 4세의 묵인하에 메디치가 형제의 암살을 시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로렌초 데 메디치는 목숨을 구했으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사망한다. 이 사건 이후 교황은 피렌체 전체를 파문하기도 한다. 한편 로렌초의 아들과 줄리아노의 아들은 차례로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1481년

메디치 가문의 영광

 

 

 

 

<봄>

산드로 보티첼리, 목판에 템페라, 203 × 314㎝,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481 ㅡ 1482년경

조화와 비례의 대칭

 

 

 

 

<성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

피에트로 페루지노, 프레스코, 335 × 550㎝,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1490 ㅡ 1510년경

의문에 싸인 제단화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스, 패널에 유화, 220 × 19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얼굴은 화가의 얼굴로 여겨진다.

 

 

 

1492년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 완료.

스페인은 711년 이슬람 세계에 정복당한 이후 지속적으로 국토회복운동, 즉 레콩키스타를 추진했다. 반도 북쪽에 있던 스페인의 기독교 왕국 중 카스티야왕국의 왕위 계승자인 이사벨라 1세와 아라곤의 왕위 계승자 페르난도 2세가 1469년 결혼한 지 20여 년 만에 일구어낸 쾌거였다.

 

 

1492년

레콩키스타가 완료되고 몇 달 후,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사벨라 1세와 대항해를 위한 협의에 들어갔고, 이윽고 인도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대륙, 중앙아메리카의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

 

 

 

1495 ㅡ 1497년경

수도원 식당에 그려진 만찬 장면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 × 880㎝, 밀라노 산타마리아 텔레 그라치에 교회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에 도착. 당시 밀라노 공국의 수장이던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를 위해 군사 고문. 궁정의 연희 총감독 등의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1516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부름을 받고 앙부아즈에 정착하여 궁전 건축과 운하 설계 등의 일을 하다 2년 뒤인 1519년 유언장을 작성하고 열흘이 채 못 되어 사망한다.

 

 

 

 

 

 

1498 ㅡ 1499년

젊은 얼굴의 성모 마리아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대리석, 높이 174 × 195㎝,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1500년

보티첼리, 사보나롤라에 열광하다

 

 

 

 

<신비한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캔버스에 템페라, 109 × 75㎝, 런던 내셔널 갤러리

 

 

 

1498년

사보나롤라 화형당하다. 수도사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공화국의 실질적 지배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를 비판하고 부패한 교회도 맹비난하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림, 음악, 문학 등 예술은 그저 인간에게 쾌락과 탐욕만을 줄 뿐이라고 공격했는데, 1497년에는 '허영의 소각' 이라는 행사를 개최, 수많은 서적과 예술품, 값비싼 옷과 장신구 등을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결국 파문당한 그는 1498년 피렌체의 베키오 광장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이 잘리고 불태워졌다.

 

 

 

1503년경 (혹은 1518년경)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소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패널에 유채, 76 × 53.3㎝, 파리 루브르 박물관

 

 

 

1506년

성 베드로 대성당 착공. 베드로가 묻혔다고 여겨지는 자리에 있던 낡은 성당을 허물고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이 거대사업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507년부터 교황청에서 일정 금액을 내면 죄를 사해준다는 면죄부 판매를 주도, 훗날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성당은 건축가 브라만테의 최초 설계도가 채택된 아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여러 미술가들의 손을 거쳐 1626년에 완공되었다.

 

 

 

1508 ㅡ 1512년

초고속으로 그린 대작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프레스코, 약 4100 × 1400㎝,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하나인 <아담의 창조>에서 손가락으로 교감하는 장면은 스필버그의 영화 <ET>에서 오마주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아담의 손가락은 미켈란젤로 사후 1년 뒤 심하게 훼손되어 다른 화가가 다시 그린 것이다.

 

 

 

1509 ㅡ 1511년경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은 진리의 전당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산치오, 프레스코, 579.5 × 823.5㎝, 바티칸 사도 궁전

 

 

 

1513 ㅡ 1515년경

머리에 뿔이 달린 예언자

 

 

 

 

<모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대리석, 높이 235㎝, 로마 산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발표

 

 

 

 

루카스 크라나흐, <마르틴 루터의 초상>

 

 

 

 

면죄부 판매를 풍자하는 그림.

 

 

 

1519년

카를 5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다

 

 

 

1527년

로마 대약탈

 

 

 

 

요하네스 링겔바흐, <1527년 로마 대약탈>, 17세기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과 예술가들을

연표로 만나다

 

미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환경에 대한,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과 같다. 그 그림과 조각을 예민한 예술가들로 하여금 만들게 한 시대적 배경, 그 작품을 외면하게 만든 당대인들의 한계, 그들을 찬양하게 만든 그 사회 특유의 취향을 읽는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읽기의 향연에 기꺼이 발을 디딘 이들에게 작은 안내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제작 연도순에 따라 작품을 소개하여 미술사적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 전후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엮어 미술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현장에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 <여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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