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 헬렌 켈러]
▲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 장면. 뮤지컬 ‘마리 퀴리’는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2회 받은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과 라듐 공장 직공들의 죽음을 다뤘어요. / 라이브
두 번의 노벨상, 시 · 청각장애인 첫 학위··· 벽 깬 여성들
마리 퀴리, 여성 최초로 노벨상 수상
헬렌 켈러, 독일어 등 언어 5개 구사
두 여성의 도전 뮤지컬 · 연극에 담아
위인전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 여성의 삶과 도전이 뮤지컬과 연극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선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으로 세계 최초 노벨상 2회 수상자이자 여성 수상자가 된 마리 퀴리 (1867 ~ 1934)의 삶을 다룬 뮤지컬 '마리 퀴리'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 11월 24일 ~ 2024년 2월 18일)가 있습니다. 또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었지만, 스승 설리번의 헌신적 교육을 통해 세계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시각 · 청각장애인이자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평생을 바친 헬렌 켈러 (1880 ~ 1968)의 삶도 연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12월 6 ~ 10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초' 라는 이정표를 세운 두 여성의 이야기가 어떻게 무대화됐는지 살펴봐요.
▲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 장면. / 라이브
퀴리의 조국 폴란드 진출한 창작 뮤지컬
뮤지컬 '마리 퀴리' 는 여성으로서 놀라운 과학적 성취를 이룬 말년의 퀴리가 연구실에서 장녀 이렌에게 남길 이야기를 쓰면서 시작합니다. 무대는 1891년, 24세의 마리가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기차 안으로 돌아가죠. 다정한 교사 부모 아래서 자랐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마리는 가정교사를 하며 프랑스 유학비를 모았습니다. 늦깎이로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려고 기차를 타고 떠나는 길입니다. 마리는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약소국 국민의 서러움과 가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껏 재능을 펼치지 못했던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순간이었죠.
마리는 소르본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뒤 사랑하는 사람이자 연구의 동반자가 되는 피에르 퀴리를 만나 결혼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노력해 1898년 방사성 물질 2개를 최초로 발견했어요. 하나는 어두운 곳에서 푸른빛을 내기 때문에 '광선' 이라는 뜻의 단어 'radius' 에서 딴 라듐 (radium), 또 하나는 마리의 조국 '폴란드' 에서 따 폴로늄 (polonium)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부부는 1903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가 됐죠. 하지만 당시 폴란드 출신 이민자이자 여성이었던 마리를 세상은 쉽게 인정하지 않았어요. 노벨물리학상 역시 남편 피에르 퀴리가 수상하게 돼 있었는데, 피에르가 부부의 공동 연구라고 끈질기게 청원해 공동 수상으로 변경됐다고 전해요.
든든한 동반자였던 남편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마리는 큰 슬픔에 잠기지만, 다시 연구에 매진합니다. 그리고 1911년 순수 라듐을 분리해 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받으면서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가 되죠. 하지만 연구실에서 라듐과 폴로늄에 오랫동안 노출된 마리는 방사선이 원인이 돼 골수암과 백혈병에 걸립니다. 결국 67세에 세상을 떠나죠.
뮤지컬은 마리의 놀라운 업적과 함께, 방사능 위험성에 무지했던 시대에 라듐 공장 직공들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더했습니다. 라듐 추출 방법을 특허 출원해서 부를 쌓는 대신, 인류에게 기증한 마리의 진심이 전해져 감동을 줍니다. 2021년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을 포함, 5부문에서 수상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마리 퀴리' 는 마리의 조국 폴란드를 비롯해 일본 · 중국 · 영국까지 진출해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저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연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공연 장면. 제목의 ‘낙타’ 는 사막의 더위를 견디려 서로의 몸에 기대어 체온을 낮추는 낙타처럼 서로 의지하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을 상징해요. / 국립극장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우정
'빛의 천사' 로 불리는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때 뇌척수막염을 앓고 난 뒤 시력과 청력을 잃었어요. 하지만 그런 헬렌 곁에는 우리에게 '설리번 선생님' 으로 잘 알려진 앤 설리번이 있었죠. 앤은 8세에 시력이 매우 나빠져 맹학교에 입학했지만, 수술받아 시력을 회복했어요. 졸업한 뒤 헬렌의 가정교사가 됐죠.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깊은 우정을 쌓아 나갑니다. 앤을 통해 정신적으로, 또 지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한 헬렌은 하버드대 부속 여학교였던 래드클리프 대학 졸업장까지 거머쥡니다. 헬렌은 독일어를 비롯해 언어 5개를 구사할 정도로 똑똑했죠.
헬렌은 스스로 장애를 이기고 큰 성취를 이뤘지만,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장애인뿐 아니라 여성과 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사회 운동을 펼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작가의 소질도 보여 책을 여러 권 썼는데, 그중에서도 앤과의 인연을 담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 가 책으로 발표되며 두 사람의 오랜 우정과 사랑이 알려졌어요.
연극 제목인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는 작품 속 헬렌과 앤의 관계를 뜻해요.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세상은 마치 사막처럼 힘든 길이지만, 사막의 더위를 견디려 서로의 몸에 기대어 체온을 낮추는 낙타처럼 서로 의지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긴다는 의미죠.
이 연극의 매력은 헬렌과 앤의 연대를 다양한 소리로 표현했다는 점이에요. 처음엔 구음 (口音)으로 의미 없는 소리만 낼 줄 알았던 헬렌이 조금씩 언어를 습득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과정이 타악, 전자음악, 마림바, 고수 등 연주자 4명의 반주에 맞춰 시원하게 내지르는 판소리로 완성되죠. 앤과 헬렌은 수어 (手語)에서 한글 자모음이나 알파벳, 숫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방법인 지화 (指話)를 촉각으로 느끼는 촉지화를 통해 서로 교감합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 연극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 공연 장면. / 국립극장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2월 1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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