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숨어있는 세계사

[노예무역]

드무2 2024. 9. 16.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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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

 

 

 

 설탕을 만들고 있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그려진 그림. / 영국도서관

 

 

 

아메리카 대륙에 팔려간 아프리카인··· 물건 취급 받았죠

 

 

 

1441년부터 400년 동안 이어졌어요

대서양 건너다 바다 위에서 죽기도

배에서 반란 일으킨 노예들도 있었죠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과거 대서양 노예무역 시대의 잔혹 행위에 대한 배상을 논의하는 국제 재판소를 만들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어요. 노예무역 국제 재판소는 지난해 유엔 자문 기구인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위한 영구 포럼이 공식 권고한 것이에요. 하지만 대서양 노예무역에 관여한 이들 중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고 구제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국제 재판소 설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그렇지만 노예무역의 비극은 꼭 기억해야 하는 역사입니다.

 

 

유럽 열강들. 아프리카 노예로 일손 채워

지금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이지만 신분제는 인류 역사와 같이해 온 오래된 제도였어요. 신분제 최하층에 속한 노예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했죠.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하기 이전에는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들였고, 아라비아반도와 인도 등으로 끌고 갔어요. 그리고 15세기부터 포르투갈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아랍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서구 열강들이 대서양을 항해하며 신대륙과 수많은 항로를 발굴했던 '대항해 시대' 의 선두 주자였어요.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탐색하며 일찍이 아프리카 대륙에 관심을 가졌죠. 이후 다른 열강들도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에 진출해 많은 이를 노예로 아메리카 대륙에 끌고 갔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노예무역 앞에는 '대서양' 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합니다.

노예들은 왜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간 걸까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은 이후 대서양 노예무역 성행이라는 뜻밖의 부작용을 낳았어요. 에스파냐 등은 아메리카에서 원주민을 동원해 사탕수수, 담배 등을 대규모로 경작하기 시작했는데요. 원주민들이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에 걸리면서 수가 급격하게 줄었어요. 천연두, 홍역 등 원주민이 전혀 면역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염병들이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죠. 서양 국가들은 줄어든 노동력을 충당해야 했어요. 일손을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프리카 노예를 사는 것이었어요. 노예에게는 일한 대가를 줄 필요도 없었죠.

 

 

400년간 지속된 노예무역

1441년 포르투갈인 선장이 서부 아프리카 해안에서 노예를 태우고 유럽으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노예무역은 400년간 지속됐어요. 서양인들은 노예를 사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에게 각종 장신구를 보여줬어요. 아프리카인들은 평생 처음 보는 물건에 감탄하며 자신들의 노예와 맞바꿨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살던 이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였어요.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를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서양인들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총과 화약을 제공하며 전쟁을 부추겼습니다. 노예무역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비극이 벌어지게 된 거죠. 17 ~ 19세기 아프리카에서 노예가 된 이들이 1500만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돼요. 이 중 900만명 이상이 노예무역으로 대서양을 건너갔어요. 끌려간 노예들은 비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이 죽도록 일해야만 했죠.

대서양을 건너가던 노예들 중 10 ~ 20%는 바다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요. 노예선이 '이동 감옥' 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에요. 노예들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2개월 넘게 버텨야 했어요. 노예를 어떻게든 산 채로 데려가려고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갑판 위로 올라와 움직이게 했대요. 또한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항해 중 몇 차례 바닷물이나 식초로 몸을 씻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노예들도 있었지만 노예무역 상인들은 이들이 마음대로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어요. 노예들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였고, 갑판 위에 총으로 무장한 이들을 배치해 감시했습니다.

 

 

'노예 반란' 아미스타드호 사건

선상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1839년 아프리카 노예들을 싣고 항해하던 에스파냐 노예무역선 아미스타드호에서 노예들이 항해에 필요한 소수의 선원만 남겨두고 백인들을 모두 죽이는 일이 발생해요. 노예들은 배를 아프리카로 돌리라고 말하며 선원을 위협했지만, 선원들은 이들을 속이고 바다 위를 계속 맴돌았어요. 그러다 아미스타드호는 미국 군함에 붙잡혔어요.

에스파냐 상인들은 배와 노예 모두 자신들의 재산이라며 돌려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재판이 진행됐는데, 아프리카 노예들이 자유인인지, 노예인지 그 지위가 쟁점이 됐죠. 결국 이 사건은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까지 다뤄졌고 1841년, 아미스타드호에 타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은 불법으로 수송됐고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아프리카로 돌아갔어요. 하지만 노예들이 이처럼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간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계몽사상이 확산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노예보다 금 · 다이아몬드 등 아프리카의 천연자원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서 19세기 들어 노예무역은 폐지됐습니다.

 

 

 

 백인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데려가기 위해 검사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 /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노예를 판매한다는 글이 적힌 광고물. / 뉴욕공립도서관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오주비 기자 (jubi@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4년 4월 2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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