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무대 위 인문학

[로제타 셔우드 홀]

드무2 2023. 2. 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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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셔우드 홀]

 

 

 

❶ 미국인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구한말 조선 의료계에 투신해 의학전문학교와 맹학교를 설립합니다.

 

 

 

❷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였던 박에스더. 로제타의 통역을 도운 인물이기도 하죠.

 

 

 

❸ 리빙 시어터의 창립자 줄리엔 벡 (맨 위)과 주디스 말리나 (가운데)가 연극 리허설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❹ ❺ 연극 '로제타 셔우드 홀'의 한 장면. 로제타가 조선에서 의료 활동을 하던 도중, 치료하던 아픈 아기가 목숨을 잃게 되자 괴로워하는 모습.

 

 

 

❻ 연극 '로제타 셔우드 홀'의 한 장면. 로제타의 남편 윌리엄이 열악한 환경에서 의료 활동을 벌이다 전염병에 걸려 목숨을 잃게 되자 주변 지인들이 다 같이 슬퍼하는 모습.

 

 

 

60여년 한국서 생명 구한 美 의사, 한인 첫 洋의사도 키웠죠

 

 

 

박에스더 유학시켜 의대 졸업 돕고

고대 의대 전신 경성여의전 설립

생애 다룬 연극 한미 합동 제작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학으로 환자를 진료한 양 (洋) 의사는 누구일까요? 박에스더 (1876 ~ 1910)로 알려진 여의사입니다. 본명은 김점동이지만 남편 박유산의 성씨인 박을 따르고, 세례명 에스더를 붙인 이름이죠. 김점동이 태어난 구한말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까지 이르는 시기)은 딸이 태어나면 '언년이' '간난이'로 이름 붙일 정도로 여성의 인권이 제한된 사회였고, 배움의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남성이 아니라 여성 의사가 탄생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죠. 김점동을 한국 최초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해서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을 졸업하도록 지원하고, 조선 여성들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로제타 셔우드 홀 (1865 ~ 1951) 입니다.

미국인 선교사이자 양의사였던 로제타의 삶을 그린 연극이 지난 1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간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무대에 올랐어요.공연을 앞둔 1월 6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많은 기자가 참석해 연출과 배우들을 인터뷰할 정도로 이 작품에 큰 관심이 쏠렸는데요. 로제타가 한국에 남긴 봉사와 헌신의 삶을 기린다는 작품의 의미도 한몫했지만, 미국의 세계적인 극단 '리빙 시어터 (The Living Theatre)'가 한국과 공동 제작하고,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서 공연하게 된 것이 주된 이유였지요.

리빙 시어터는 1947년 뉴욕에서 창단한 70여 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입니다. 화가였던 줄리엔 벡 (1925 ~ 1984)과 배우 주디스 말리나 (1926 ~ 2015) 부부가 함께 설립했죠. 그들은 당시 소수의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만 즐겼던 극장 문화를 널리 개방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공연장이 된다는 열린 개념을 만들었어요.

또 극단에 속한 배우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연극 작업을 했는데요. 이는 '공동 창작'으로 발전해 향후 연극 제작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됐지요. 부부는 이처럼 삶과 공연을 아우르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내놓으며 이를 통해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연극은 아름다워야 하며, 비폭력적이고, 아나키즘 (무정부주의)적이어야 한다.' 이게 이 극단의 방향이었습니다. 아나키즘은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 (不在)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했는데, 리빙 시어터에서는 모두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정부가 필요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같은 명배우들은 물론,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T. S. 엘리엇 (1888 ~ 1965) 등 다양한 인물이 리빙 시어터 극단과 함께 작업해왔어요.

연극 '로제타'는 로제타 셔우드 홀이 남긴 6권이나 되는 방대한 일기를 바탕으로 그녀의 삶을 사실적으로 따라가면서도 리빙 시어터의 실험주의적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요. 한국 극단 '마방진' 소속의 한국인 배우 5명과 리빙 시어터소속 배우 3명을 더해 총 8명이 등장하는 무대에서, 이들 모두가 바로 주인공 '로제타'를 연기합니다. 국적도, 성별도 다른 이들이 로제타라는 인물의 내면과 독백까지 세밀하게 연기하는 방식이죠. 이런 방식은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습니다. 미국인 배우가 영어로 대사하면, 한국인 배우가 나란히 서서 그 내용을 한국어로 통역해서 전달해요. 한 배우가 아픈 아기를 치료하면서 당황하는 로제타를 연기하면, 그 옆에서 다른 배우는 "학교에서 배운 치료법이 왜 생각나지 않지?"라며 그녀의 내면을 독백으로 전달하면서 로제타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냅니다.

로제타는 1890년, 스물다섯에 한국 땅을 처음 밟게 됩니다. 그녀가 처음 진료를 시작한 곳은 1887년에 메타 하워드라는 미국인 여의사가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 '보구녀관 (保救女館)' 이었어요. 메타가 병에 걸려 귀국하게 되자 로제타가 후임으로 오게 된 것이죠. 당시 여성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 자유롭게 갈 수도 없었는데, '널리 여성을 구하는 집' 이라는 뜻의 보구녀관에서 많은 여성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로제타는 이곳에서 혼자 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정신과까지 모든 분야의 진료와 수술을 도맡아 했어요.

하지만 늘 언어가 문제였죠. 그때 로제타의 곁에서 통역을 도와준 여성이 바로 김점동, 즉 박에스더였고,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인 최초 여성 의사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로제타는 약혼자였던 윌리엄 제임스 홀과 1892년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죠. 부부는 청일전쟁 이후 전염병이 창궐한 조선에서 의료계에 투신해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윌리엄이 발진티푸스에 감염되면서 34세 젊은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나게 돼요.

로제타는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이후에도 조선 땅에 계속 남아 한국 최초로 맹학교인 '에디스 마그리트 어린이 병동'을 개원합니다. 현 고려대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인천간호전문보건대학도 설립하죠. 그리고 1951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로제타와 남편 윌리엄, 그리고 딸의 시신까지 모두 양화진 외국인 묘지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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