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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 2

[⑨ 최초로 아인슈타인 만난 황진남]

[⑨ 최초로 아인슈타인 만난 황진남]    1919년 안창호 (왼쪽)와 황진남. 황진남은 1916년 UC버클리에 입학했지만, 1919년 3 · 1운동 때 대학을 자퇴하고 캘리포니아 각지를 돌며 동포들에게 조국의 만세운동을 알렸다. 당시 미주 한인 사회 지도자였던 안창호는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를 이끌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황진남은 임시정부에서 외교 업무를 맡았다. / 독립기념관    베를린 유학시절 첫 만남··· 조선의 아인슈타인 열풍에 불 지르다   UC버클리 다니다 자퇴, 독립운동안창호 눈에 띄어 上海 임정 합류 임정 내분에 獨유학 중이던 1922년아인슈타인 만난 뒤 국내 신문에상대성이론과 그의 일대기 기고 팔레스타인에 유대대학 세우자우리 선조들은 아인슈타인에 열광그 중심에 황진남이 있었다 6..

[① 성리학과 결별한 윤치호]

[① 성리학과 결별한 윤치호] 러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간 윤치호 · 민영환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민영환 (앞줄 가운데)과 윤치호 (민영환의 왼쪽). 러시아와 조선 관리들의 복장이 대조적인데, 조선 관리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 황제 외에는 모자를 벗어야 했지만, 민영환은 조선의 전통을 고집했다. 윤치호는 이 대관식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중 독일 베를린 박람회에 들러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과학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100년前 조선판 카이스트 세워··· 한국인 첫 양자역학 논문 씨앗 되다 러 황제 대관식 참석했던 윤치호 1896년 열린 베를린 박람회 들러 엑스레이 보고 과학 중요성 절감 서재필과 독립협회 이끌다 고초 지방 외직 떠돌며 산업학교 구상 을사늑약에 분노, 공직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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