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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4

[反 이승만계의 허망한 꿈 서재필 대통령 추대운동]

[反 이승만계의 허망한 꿈 서재필 대통령 추대운동]    일러스트 = 한상엽    이승만 견제하느라 대선판에 휘말린 '미국 시민 필립 제이슨'   갑신정변 실패 후 도미반세기만에 방한한 徐단독정부 반대 전면에 김구 · 김규식 등 협상파北 · 소련에 이용만 당해徐, 국민영웅 李에 백기    1884년, 서재필은 스무 살 약관의 나이에 갑신정변을 주도했다. 혁명이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야간 의과대학을 다니고 의사가 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사면돼 방한해서는 미국인 신분으로 중추원 고문에 임용돼 독립신문 창간, 독립협회 창립과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된 지 2년이 가까워 오던 1947년 7월 ..

[① 최초의 자발적 민중집회 지도자로서 두각 드러내]

[① 최초의 자발적 민중집회 지도자로서 두각 드러내] 스승 서재필과 군축회의 참석한 이승만 1921년 워싱턴에서 열리는 군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구미위원부 청사를 나서는 이승만 (왼쪽) 한국 대표단장과 서재필 부단장. 이승만 46세, 서재필 57세 시절의 일이다. '독립협회' 를 세운 서재필은 배재학당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 중 이승만이 있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기파랑) 19세기말 만민공동회 주도··· 왕정 허물고, 민주공화정으로 나가다 서재필의 가르침 받은 이승만 · 주시경 · 김규식 ··· 토론 모임 만들어 민중 1만여명과 러 강력 비판, 부산에 '급탄항' 만들려던 시도 막아 정부 정책 방향 바꾼 혁명적 사건 ··· 조선왕실에 의회 설립도 요구 탄압 시작되자 이승..

[공화국 대한민국 ③ 까막눈 조선인이 문화를 창조하기까지]

[공화국 대한민국 ③ 까막눈 조선인이 문화를 창조하기까지] 언문 즉 한글을 멸시하고 한문에 집착한 지식인들 탓에 조선 백성은 500년 내내 까막눈 신세를 면치 못했다. 10명 중 9명은 까막눈이었던 조선은 식민 시대 종료 후 문맹률 80%에 이르는 문맹 사회로 해방을 맞았다. 미군정이 민간과 함께 역점적으로 실시한 한글 교육 결과 1948년에는 문맹률이 41%로 낮아졌다. 그해 치러진 선거는 까막눈을 위해 이름과 함께 '작대기' 로 입후보자 이름을 표시했다. 자유민주주의 정착과 근대화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문맹 국민 완전 퇴치 계획'을 세우고 5년 동안 민관 합동으로 성인 한글 교육을 실시했다. 1958년 말 대한민국 문맹률은 4.1%로 급감했다. 교육은 문화적 각성을 촉발시켰다. 지금 대..

[근대로 가는 길목 ⑤ 독립협회 강제해산과 공포의 3년]

[근대로 가는 길목 ⑤ 독립협회 강제해산과 공포의 3년] 대한제국 광무제 고종은 권력 장악을 위해 근대를 포기하고 정치 파트너였던 독립협회를 강제로 와해시켰다. 개혁 세력은 권력 분산을 통해 근대국가 건설을 꿈꿨지만 고종은 1899년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시킨 '대한국 국제'를 통해 반근대적 입법 독재를 완성했다. 이듬해 1900년 고종은 갑오개혁 때 폐지했던 참수형을 부활시키고 이를 국사범에게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10년 뒤 대한제국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독립협회가 야심 차게 건설했던 독립문은 일본 사진 엽서에 '도쿠리쓰몬'이라는 볼거리로전락했다. /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역적 처벌을 위해 참수형을 부활한다" ㅡ 1900년 9월 29일 대한제국 ① 총리대신 김홍집 살인사건 ② 홍영식의 야만적인 죽음 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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