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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2

[남이흥 장군과 '전란의 세대']

[남이흥 장군과 '전란의 세대']    ▲ 조선 중기의 무신 남이흥 (1576 ~ 1627) 영정.    10대 임진왜란, 40대 이괄의 난, 50대 정묘호란 겪었죠   임진왜란 후 무과에 급제이괄의 난 때 무공 세웠어요"후금에 화약 못 뺏긴다" 자폭    1576년생 남이흥이라는 조선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장군이었대요. 그런데 그와 같은 세대였을 조선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이들은 10대 소년 시절에 임진왜란 (1592 ~ 1598)을 겪었고, 40대에는 이괄의 난 (1624), 50대엔 정묘호란 (1627), 그리고 이 모든 전란에서 살아남았다면 환갑 무렵 병자호란 (1636 ~ 1637)의 참상을 겪었을 테니 말입니다. 평생을 난..

[<6> 만주의 위협과 '병자호란']

[ 만주의 위협과 '병자호란']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명나라의 범종안 (范宗顔) 부대를 무찌르는 누르하치 군대. ‘만주실록’ 에 나오는 그림이다. 명 · 청 교체의 결정적 전투로 꼽히는 사르후 전투에서 약 10만명의 조 · 명 연합군은 약 6만명의 후금군에 대패했다. / 위키피디아 무릎 꿇은 인조··· 조선은 明 과 淸 의 이중적 제국 질서 속으로 들어갔다 13세기 몽골에 흡수된 만주인에게 히데요시 조선 침략은 부흥의 시간 병자년 겨울 압록강을 넘어 조선 침공 버티던 인조 치욕적 평화협정 맺어 병자호란, 임진왜란보다 짧았지만 조선의 주권에는 더 치명적이었다 1592년 이후 1598년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전쟁에 대한 기억은 워낙 강렬해서 다른 기억들을 지워버린다. 임진왜란 이전 한반도에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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