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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3

[安重根 書] 04

[安重根 書] 04    다섯 번째 이야기동지 국내진공작전에 실패한 이후 안중근 의사는 뜻을 같이할 동지들을 모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자신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를 모아 단지동맹을 결성했습니다. 단지동맹 동지들은 독립의 의지를 모아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을 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후일을 도모했습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북만주를 시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와 뜻을 모아 의거를 결심하고 하얼빈으로 향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자신은 하얼빈 역에서 의거를 준비했고, 우덕순과 조도선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차이자거우 역으로 향했습니다.          장부가 丈夫歌 장부가 세상을 살아감이여, 그 뜻이 크도다.시대가 영웅을 만듦이여..

전시회 2024.12.23

[하얼빈 의거 후 첫 신문 기록 공개]

[하얼빈 의거 후 첫 신문 기록 공개]    안중근 의사    안중근 "한국 망친 역적을 쐈다"   日외교관 당시 상황 회고록 남겨의거 직후 러시아서 인계받아日영사관 지하 구치실에 감금 安의사, 이토 암살 동기 진술뤼순 가기 전 초기 행적 밝혀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 (1879 ~ 1910)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일본인 외교관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다. 국내 컬렉터인 최영호 82갤러리 대표는 “지난 3월 일본 경매에 나온 오노 모리에 (大野守衛) 친필 원고와 사진 7점 등 일괄 자료를 구입했다” 고 밝혔다. 당시 중국 랴오닝성 잉커우 (營口)에서 영사관보로 근무한 오노 모리에는 1910년 3월 원고지에 친필로 쓴 기록 14장과 의거 ‘몇 분 전 촬영한 하얼빈역’ 사진 등을..

기타 2024.11.10

[중국인과 유대인 애증의 역사]

[중국인과 유대인 애증의 역사] 20세기 초 상하이 중국 상하이 화이하이도로 (옛 샤페이도로)의 20세기 초 전경. 중국과 유대인 사이에는 애증의 역사가 존재한다. 1842년 상하이 개항 때 인도에 살면서 중국과 거래하던 유대인 700여 명이 상하이로 건너왔다. 이들이 영국, 인도, 중국 사이의 삼각무역을 주도해 상하이의 국제화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인도산 아편을 수입해 중국을 해롭게도 했다. 1930년대 말에는 상하이의 유대인 수가 4000명을 넘어섰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동양의 쉰들러 리스트··· 中 영사, 유대인 4000명 상하이로 대피시켜 상하이 유대인들, 英 ~ 인도 ~ 중국 삼각무역으로 국제화 기여 인도산 아편을 대량 수입해 중국을 병들게 한 주역도 유대인 日은 러일전쟁서 패전 직전에 유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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