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급변기]
▲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농기구. / 국립중앙박물관
'감자 역병' 에 인구 반 토막 <아일랜드>··· 흑사병 땐 1억명 줄었죠 <세계 인구>
농사 시작하자 인구 크게 늘었다가
14세기 유럽, 흑사병으로 인구 급감
산업혁명 이후 수명 늘자 다시 급증
매년 7월 11일은 '세계 인구의 날 (World Population Day)' 이에요. 1989년 유엔 산하 유엔개발계획 (UNDP)이 지정한 국제 기념일로, 1987년 7월 11일 세계 인구가 50억명을 돌파한 것에서 유래했죠.
인구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발전 요인이었어요. 전쟁에서는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꼽혔어요. 인구가 많으면 더 많은 병력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인구가 많으면 노동력이 풍부해져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됐어요. 세계사 속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변화한 시기는 언제였을까요?
농경의 시작, 신석기 혁명
기원전 1만년쯤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자연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큰 변화는 농경의 시작이었습니다. 인간이 씨를 뿌려 농작물을 재배하게 됐는데, 우리는 이것을 신석기 시대의 시작이라고 해요. 수렵이나 채집을 통한 경제생활에서 조금씩 벗어나 농업 생활을 시작했고, 유목 생활도 정착 생활로 바뀌었어요. 이 시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일부 학자는 '신석기 혁명' 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최대 1000만명 정도였던 지구 인구는 서기 1세기 무렵 최대 4억명까지 증가했어요. 이 시기 인구 증가에 영향을 미친 큰 요인은 출산율 증가였어요. 이전에는 맹수의 위협에 시달리며 유목 생활을 하다 보니 생존이 쉽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한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안전해지고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 됐어요. 식량도 안정적으로 공급돼 영양 부족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특히 밀, 보리, 기장, 옥수수, 쌀 등 저장하기 쉽고 영양가 높은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식량이 많이 늘어났어요.
폭발적 인구 증가 가져온 산업혁명
'혁명' 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이후 한 번 더 있었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에요. 산업혁명 이전에는 비위생적인 환경과 기근 등으로 영아 사망률이 높았어요. 출산율이 높았지만, 인구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죠.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되자 사망률이 낮아졌고, 폭발적 인구 증가로 이어졌어요.
우선 하수 처리 시스템과 공중위생이 개선됐어요. 여기에 의학 기술이 발전하며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또 다른 나라와 대륙으로 확장된 철도, 대양을 가르는 증기선, 개선된 도로 등 빠르고 값싼 운송 수단과 환경을 갖추며 식량을 운반하기 쉬워졌어요. 농업에도 혁신적인 기술이 도입돼 식량이 풍부해지고 저렴해졌습니다. 이제 기근이 닥쳐도 사람들이 굶어 죽을 가능성이 낮아졌죠.
영국의 경우, 187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사이 기대 수명이 약 40년에서 55년으로 늘어나요. 특히 영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어요. 19세기 후반 1000명당 150명을 약간 웃돌던 영아 사망률이 20세기 초 100명으로 낮아졌고, 20세기 중반에는 첫돌을 넘기지 못하는 아기가 1000명당 30명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 1896년 프랑스 화가 카미유 피사로가 그린 프랑스 루앙의 풍경. 연기를 내뿜는 증기선이 보여요. / 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유럽 인구 3분의 1 사라진 흑사병
하지만 늘 인구가 증가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인구 정체나 감소로 인한 위기가 여러 번 있었어요. 첫 번째는 흑사병입니다. 서기 1000년쯤부터 유럽 인구가 증가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약 3세기 동안 지속했어요. 토지 개간 등으로 정착지가 몇 배로 증가했고, 새로운 도시도 생겼죠. 그런데 1347 ~ 1351년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4억5000만명이던 세계 인구가 3억5000만 ~ 3억7000만명으로 줄었어요. 특히 유럽에서는 4년 만에 전체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4세기 유럽에선 이상저온현상이 발생해 농사를 짓기 어려웠고, 굶주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감염병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굶주림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외부 감염에 매우 취약해졌죠. 특히 당시에는 위생 관념이 없어 더 감염되기 쉬웠어요.
14세기 중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흑사병은 흑해 연안에서 이탈리아로 전파되면서 순식간에 유럽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어요. 흑사병에 걸리면 대개 2 ~ 7일 만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해요. 전염성이 강해 죽은 환자의 가족, 장례식 참석자, 시신을 묻은 사람까지 속수무책으로 병에 걸렸습니다. 지금처럼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 형벌이다' '누군가 독을 탔다' 같은 엉터리 원인 찾기만 난무했죠. 19세기 프랑스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하면서 인류는 흑사병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1735년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크레스피가 그린 그림. 흑사병 유행 당시 성인 베르나르도 톨로메이가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흑사병 확산이 멈추기를 기도하는 장면. / 브리태니커
인구 절반 줄어든 아일랜드 대기근
인구를 감소시키는 원인에는 전염병 외에도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로 피해가 컸어요. 아일랜드는 농업 국가인데, 특히 감자는 습도가 높은 아일랜드 기후에서 재배하기 적합했어요. 밀이나 보리 등 다른 작물보다 생산성이 뛰어났죠. 1600년 200만명 정도였던 아일랜드 인구는 1840년 무렵 800만명을 훌쩍 넘는 수준이 됐어요. 하지만 감자에 의존했던 아일랜드 농민의 삶은 물질적으로 여전히 궁핍했어요. 다른 산업이 전혀 발전하지 않아 식량을 사 올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려웠죠.
1845년 감자 역병이 아일랜드를 덮쳤어요. 감자잎에 생긴 반점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검게 변했고, 결국 줄기와 덩이줄기까지 괴사해 악취를 풍겼어요. 감자 생산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자 감자에 의존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어요. 당시 기록을 보면 사후 6일까지도 시신을 매장하지 못해 죽은 사람 옆에 나란히 누워 지냈다는 말도 있어요. 감자 역병으로 아일랜드의 인구는 1837년부터 1901년 사이 약 80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대기근 추모 조각상. / 브리태니커
서민영 계남고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7월 19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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