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극]
▲ 청소년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연극 ‘영지’ 한 장면. / 국립극단
10대가 직접 참여해 성장 · 상처 · 치유극으로 만들었죠
국립극단 '연구소' 에 청소년들 활동
트라우마 이겨내는 우정 이야기
무거운 주제도 명랑하게 풀어내요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특별한 시기를 우리는 청소년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른데요. '청소년 기본법' 에서는 청소년을 9세 이상 24세 이하로 규정하지만, '청소년 보호법' 에서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미성년자' 처럼 만 19세 미만을 청소년이라 하지요. 하지만 보통 우리는 '10대' 를 청소년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의 주기에서 '청소년' 은 신체와 마음 모두 성숙해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형성되는 이때의 자아 정체감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특별히 청소년 문학이나 청소년 영화처럼 그 시기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문화 콘텐츠가 개발되기도 하는데요. 연극은 1985년 윤대성 작가의 청소년극 '방황하는 별들' 이후로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 없었어요. 하지만 최근 청소년에게 특화된 '청소년극' 이 활발하게 제작되고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그렇다면 일반적인 연극과 청소년극은 어떻게 다를까요?
▲ 연극 ‘영지’ 의 주인공 영지. / 국립극단
청소년이 만든 이상한 아이 이야기 '영지'
가장 활발하게 청소년극을 제작하고 있는 곳은 국립극단입니다. 2011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를 연 이후 청소년극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어요. 연구소에서는 특별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를 '12살' 로 보고 '12살 프로젝트' 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 결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영지' '발가락 육상천재' 라는 청소년극을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됐습니다. 두 작품 모두 매해 재공연할 만큼 청소년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중요한 파트너는 청소년들입니다. 청소년들이 연극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2011년 연구소가 문을 열 때부터 청소년들이 '서포터스' 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는데, 현재는 총 17명이 활동하고 있어요. 공연 연계 워크숍, 청소년예술가탐색전, 희곡 개발, 연구 등 과정에서 공연 제작에 협력하고 있지요. 성인이 바라본 청소년들의 세계가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공감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겠죠.
2018년 '병목안' 이라는 이름으로 초연한 '영지' 는 올해 세 번째 공연 (5월 18일 ~ 6월 11일 국립극단 소극장 판)으로 관객을 만났어요.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동네 1위에 뽑힌 마을 '병목안' 에 이상한 아이 영지가 나타나요. 어느 날 밤 악마 선생님이 영지에게 이야기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영지는 병목안 마을 친구들과 매일 이야기를 만들게 되지요. 연극은 특별한 줄거리를 향해 흘러간다기보다는 주인공 영지라는 특별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요. 매일 같은 시간에 학교와 학원, 집을 오가는 아이들이 보기에 영지는 이상하기 짝이 없어요. 공상의 세계에 갇혀 이야기를 꿈꾸는 영지는 '다른 세계에서 온 다른 존재' 이고 정상의 세계에서는 비정상처럼 보이죠. 영지가 병목안 마을을 떠나면서 끝이 나지만, 연극은 많은 질문을 던져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올바른 것일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 우리 마을 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건 아닐까. 비정상처럼 보이던 영지는 다른 세계로 떠나서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살까' 라는 질문이지요.
▲ 청소년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 ‘유원’ 한 장면. / 앤드씨어터
청소년 소설을 연극으로 제작한 '유원'
기존에 발표된 '청소년 소설' 을 연극으로 제작하는 방식의 청소년극도 있습니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백온유 작가의 소설 '유원' 을 연극으로 만든 동명의 작품 '유원' (6월 16 ~ 2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 있지요. 18세 유원은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에요. 12년 전, 6세 어린아이였던 유원은 불이 난 11층 아파트에서 언니와 함께 고립됩니다. 어이없게도 화재 원인은 윗집 할아버지가 던진 작은 담배 불똥이었어요. 그 불똥이 튀어 유원의 집 베란다에 쌓아 둔 종이에 옮겨붙었던 것이지요.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는 젖은 이불로 어린 동생을 감싸 안아 창문 밖으로 떨어트렸어요. 마침 지나가던 행인이 그 아이를 품에 안아 살려 냈지만, 그 행인은 다리를 다쳐 못 쓰게 되지요. 언니는 탈출하지 못하고 생을 달리하게 됩니다. 유원은 살아남았다는 감사함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죽은 언니, 자신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된 아저씨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10대를 보내죠. 그런 유원에게 어느 날 친구가 생깁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되지만, 그 친구가 자신을 구하고 장애를 갖게 된 아저씨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두 사람의 우정은 변치 않을까요. 이제 유원은 그 누구에게도 미안함이나 죄책감 없이 오롯이 삶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요.
연극은 이처럼 조금은 묵직한 주제를 10대의 명랑함으로 무장하며 즐겁게 이끌어 나갑니다. 무엇보다 성인 연기자가 연기하는 유원과 친구 수현 역은 청소년기에 겪었던 여러 감정과 말투 · 행동 등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유원과 수현이 조심스럽게 서로 다가가며 가까워지는 과정, 그리고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며 오래된 친구가 떠오릅니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떡볶이와 튀김을 먹고 즐거웠던 시간도 함께 떠오르지요. '영지' 와 '유원' 두 작품 모두 청소년들의 눈높이로 만들어졌지만, 성인이 보아도 좋습니다. 그만큼 주제에 대한 고민이 돋보이고, 이를 수준 높은 무대 예술로 구현한 작품이지요. 더욱 다양한 청소년극을 통해 세대를 넘는 공감을 나누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 청소년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연극 ‘유원’ 한 장면. / 앤드씨어터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6월 2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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