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외교]
▲ 지난 7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아기 판다 푸바오가 대나무를 먹고 있어요. / 박상훈 기자
이집트는 기원전부터 기린, 中은 7세기부터 '판다'로 외교
中 측천무후, 일본에 판다 2마리 선물
1941년 쑹메이링은 미국에 한쌍 보내
이집트 기린, 권력 과시용으로 쓰기도
아기 판다 푸바오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푸바오는 중국 '판다 외교' 정책상 만 4세가 되는 내년 7월 전까지 중국으로 돌아가야 해요. 자이언트 판다는 만 4세가 되면 성숙기에 접어들어 다른 판다와 생활하며 짝을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물 외교' 는 주로 멸종 위기 동물처럼 희귀한 동물을 상대국에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중국의 판다는 세계 곳곳에서 동물 외교 특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 8월 중국 베이징과 청두에서 열린 한 · 중 · 일 청년 모의 정상회의 (TYS)에서는 각국에서 사랑받는 판다 가족이 사절단으로 소개 영상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동물 외교는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선물에서 임대로 바뀐 판다 외교
판다는 귀여운 외모 덕에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의 훌륭한 외교 대사 역할을 해왔어요. 기록상 최초의 판다 외교는 7세기 당나라 때로 전해집니다. 당은 국제무역이 활발했던 국가로, 수도 장안은 전성기 때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을 정도예요. 일본 등 수많은 국가가 장안을 방문했죠.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 예종의 친모 측천무후는 원활한 외교 관계를 위해 일본 천황에게 '곰 2마리와 모피 70장' 을 선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 '곰' 이 판다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현대 판다 외교의 시작은 1941년 중국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이 미국에 선물한 판다 한 쌍이었습니다. 중일전쟁 (1937 ~ 1945) 때 미국이 중국을 도와준 데 대한 감사 표시였죠.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후 중국이 미국에 보낸 판다 2마리는 가장 유명한 판다 외교 사례예요. 미국과 중국은 친선의 상징으로 동물을 교환하기로 했어요. 마오쩌둥은 판다 2마리를 미국 동물원에 보냈고, 닉슨은 그 대가로 사향소 2마리를 선물했어요. 냉전 상황에서 이념 대립을 완화하고 새로운 교류를 시작한 두 국가가 우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선택한 외교 방식이었죠.
1984년부터 중국은 판다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해 판다를 선물로 제공하지 않고 있어요. 대신 10년 기한 임대를 하는 조건으로 상대 국가에서 매년 임차료 약 100만달러(약 13억원)를 받고 있죠. 임차료는 판다 보호와 연구를 위해 쓰인다고 해요. 이런 노력 덕분에 2년 전 자이언트 판다는 멸종 등급이 '위기' 에서 '취약' 으로 한 단계 내려갔어요. 우리나라도 한중 수교 기념으로 1994년 판다 부부인 밍밍과 리리를 받았어요. 1997년 외환 위기 때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중국으로 돌려보냈죠. 2014년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바오 · 아이바오 판다 부부를 보내면서 판다 외교가 재개됐고 푸바오도 태어났답니다.
기원전부터 이어진 기린 외교
주로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은 수천 년 전부터 좋은 외교 선물이었어요. 기원전 46년 카이사르는 소아시아와 이집트를 정복하고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승리를 축하하고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자 · 표범 · 원숭이 · 앵무새 · 타조 등 이국적인 동물을 데리고 거리를 행진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선물로 추정되는 기린이었죠. 로마인들은 기린을 보고 낙타 (camel)의 긴 목과 표범 (pardalis)의 점박이 무늬를 모두 지닌 이상한 동물이라며 '카멜로파달리스 (Camelopardalis)' 라고 불렀어요. 이 단어는 오늘날에도 기린의 학명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후에도 이집트를 지배한 여러 통치자들이 기린 외교를 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 콘스탄티누스 9세도 기린을 선물로 받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 때는 흰 곰과 이집트의 기린을 교환했어요.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술탄 파라즈는 당시 이슬람 세계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던 티무르 제국에 잘 보이기 위해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까지 기린을 포함한 사절단을 보냈답니다.
맘루크 왕조 술탄 카이트베이 (재위 1468 ~ 1496)와 피렌체 공화국 메디치가의 로렌초 간 기린 외교도 유명합니다. 카이트베이는 당시 세력을 확장하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고자 로렌초와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로렌초는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과시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기린을 원했어요. 그렇게 1487년 카이트베이가 보낸 기린이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엄청난 화제가 됐죠. 피렌체 시민들은 2층 창문에서 기린에게 먹이를 주며 열광했다고 해요.
▲ 로렌초 데메디치의 요청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한 기린과 외교 사절단을 그린 조르조 바사리의 그림. / 이탈리아 베키오궁 박물관
300년 만에 막 내린 '비버' 외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브라질의 재규어, 카메룬의 코끼리 등 많은 이국적인 동물을 선물받았어요. 그중 1970년 캐나다에서 온 검은 비버 두 마리는 300년 전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받았답니다. 1670년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캐나다 북동부 허드슨만에서의 모피 전매권을 국책 회사인 허드슨 베이 회사 (HBC)에 줬습니다. 대신 HBC는 공납으로 영국 국왕에게 비버 두 마리 등의 가죽을 바치도록 헌장에 명시했죠. 공납 의식은 영국 왕족이 캐나다에 방문할 때만 이뤄졌기 때문에 역사상 총 4번만 행해졌어요. 가장 마지막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이 1970년이었지요. HBC는 회사 창립 300주년 기념으로 살아있는 비버 한 쌍을 여왕에게 선물했어요. 이후 비버 등 공납에 관한 내용을 헌장에서 삭제해 비버 외교는 막을 내렸어요.
점차 동물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동물 외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요. 동물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낯선 환경으로 동물을 보낸다는 비판이죠. 갑작스럽게 동물이 죽는 경우 오히려 외교 갈등으로 번지기도 해요. 지난 5월 태국 치앙마이 동물원에 있던 판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직접 유감을 표하고 양국이 공동 부검해 자연사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세심하게 동물의 복지를 생각하는 외교가 중요하겠죠.
▲ 1970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왼쪽 맨 앞)은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허드슨 베이 회사 (HBC)에서 비버 한 쌍을 받았어요. / 허드슨 베이 회사(HBC)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9월 27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