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좋은 글 .../최영미의 어떤 시

[날아가는 낙엽 (Das treibende Blätter)]

드무2 2024. 1. 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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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낙엽 (Das treibende Blätter)]

 

 

 

일러스트 = 이철원

 

 

 

날아가는 낙엽 (Das treibende Blätter)

 

 

마른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실려 내 앞을 날아간다.

방랑도 젊음도 그리고 사랑도

알맞은 시기와 종말이 있다.

 

저 잎은 궤도도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만 가서

숲이나 시궁창에서 간신히 멈춘다.

나의 여로는 어디서 끝날까.

 

ㅡ 헤르만 헤세 (1877 ~ 1962)

                          (송영택 옮김)

 

 

 

내 나이 또래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독일 작가, 한국에서는 ‘데미안’ ‘유리알 유희’ 등 소설로 더 알려졌지만 시도 곧잘 쓴 헤세. 중학생 시절에 그의 ‘수레바퀴 아래서’ 를 읽으며 나는 ‘사춘기 혁명’ 이라고도 할 만한 충격을 받았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빌려 읽지 않았다면 나는 작가의 길을 걷지 않았고 오늘날처럼 독립적이고 개성이 강하고 ‘불편한’ 여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85세까지 살았으니 충분히 오래 산 시인. 그의 시는 쉽고 ‘센티멘털’ 하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나뭇잎 하나로 시 한 편을 만든 그의 재능은 칭찬할 만하다. 나뭇잎이든 뭐든 하나를 붙잡고 치열하게 응시하면 시가 나온다. “방랑도 젊음도 사랑도 알맞은 시기와 종말이 있다” 는 1연은 달콤했으나, 2연의 “궤도도 없이” 에 이르러 심각해졌다가 “나의 여로는 어디서 끝날까” 를 읽으며 문득 슬픔이 몰려와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

 

 

최영미 시인 · 이미출판 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23년 10월 30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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