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5전쟁 60년/낙동강 혈전

[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61) 다부동의 마지막 위기

드무2 2021. 6. 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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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61) 다부동의 마지막 위기

 

 

 

‘볼링장’은 계속 시끄럽게 돌아갔다. 핀들이 육중한 볼링공에 맞아 쓰러지면서 울리는 요란한 소리는 그 여름의 천평동 계곡을 가득 채웠다. 전투는 밤과 낮 없이 줄곧 이어졌다.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북한군의 공세는 그칠 줄을 몰랐다. 밤에는 예광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치솟았다. 좁은 계곡 속에서는 미군과 북한군이 산발적이지만 격렬한 전투를 연이어 벌였다.


미 사령부 “한국군 밀렸다, 사단장이 나서라” 격한 목소리

 

 

산 위의 고지에서도 혈투는 이어졌다. 특히 천평동 계곡을 우회해서 이곳을 지키고 있는 미 27연대의 측면을 공격하려는 북한군의 공세가 거세게 이어졌다. 그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주력을 몰아넣었다. 그곳을 파고들어야 우회공격에 성공한다고 본 것이다. 정면 대결로 맞서기에는 미군의 화력이 너무 강했다.

 

 

 

야간 공격에 나선 미 해병대의 탱크가 적 진지를 향해 강렬한 포격을 퍼붓고 있다. 미군은 강력한 화력전을 전개해 전쟁의 주도권을 점차 잡아가기 시작했다. 미군은 이처럼 전차를 고정배치해 야포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1950년 8월 21일쯤인가 그랬다. 이 천평동 협곡에 위기 국면이 벌어졌다. 천평동 계곡이 대구를 향하는 간선로로 이어지는 길목의 양쪽 산에는 국군 1사단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좌측 고지에서 문제가 생겼다. 11연대 1대대(대대장 김재명 소령)가 지키는 산이었다. 계곡 아래쪽 평지의 간선로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존 마이켈리스 대령이 이끄는 미 27연대가 지키고 있었다. 전방에는 지뢰가 매설돼 있었고, 그 후방으로는 2개 대대가 간선로 양쪽으로 포진해 있었다.



오전 10시쯤 됐을까. 먼저, 11연대 1대대의 후퇴 소식이 사단 사령부에 전해졌다. 고지를 지키다 보면 늘 있는 공방(攻防)쯤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후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에 대해 최종적으로 파악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선의 보고에 계속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동명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차린 사단 CP(지휘본부)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미군의 전화였다. 내가 부관으로부터 “미 8군 사령부 전화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받아 든 수화기에서는 “사령관, 지금 뭐 하고 있느냐. 한국군이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고함치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격한 목소리의 이 전화를 받고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당신들이 이러면 우리는 철수한다. 계곡에 적이 들어오고 있는데 한국군이 이렇게 물러난다면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미 8군 참모였을 것으로만 추정되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평동 계곡 좌측방 고지가 뚫렸다. 한국군이 무너졌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내려오는 한국군에 실망했다. 계곡 안의 미 27연대에서 ‘이 상황이라면 우리는 철수한다’고 전해왔다. 사령관이 나서서 수습해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계곡을 비우겠다.”



우리 사단의 11연대 1대대가 후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한 게 나의 불찰이었다. 마이켈리스 대령이 계곡 아래에서 한국군이 마구 밀려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미 8군 사령부에 전화를 했던 것이다. 마이켈리스는 “적이 내려온다. 한국군은 밀리고 있다. 그대로 놔두면 천평동 계곡 안의 미군은 고립된다. 그냥 방치할 수 없다. 우리는 철수하겠다”고 급히 통보했다는 것이다.



전화가 또 걸려 왔다. 이번에는 마이켈리스 대령이었다. 그는 우선 간단하게 현재의 상황을 알려왔다. “상황이 정말 위급하다”는 것이었다. 천평동 계곡 입구의 좌측방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단장, 우리는 철수할 수밖에 없다. 계곡이 포위되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내 마음이 급해졌다. 수많은 전우의 피와 땀으로 지켜온 다부동의 방어선 아닌가. 미 8군이 6·25전쟁 기간 동안 전무후무하게 마이켈리스의 27연대와 폴 프리먼 대령의 23연대를 남북으로 중첩 배치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길목 중의 길목이 아니었던가.



이곳이 무너지면 마이켈리스 대령의 말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다. 미 27연대는 옆으로 우회한 적군에게 포위되면서 강력한 화력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길 가능성도 있다. 그 남쪽에 중첩해서 배치한 23연대의 방어선은 그럴 경우 대구와 부산을 지키는 마지막 저지선이다. 미군의 화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미 방어하기 좋은 계곡을 적에게 빼앗기고 난 뒤여서 성공적인 방어를 장담할 수 없다. 미 23연대의 방어선은 ‘찢어지기 쉬운 종이 한 장’과 같은 방어선으로 남는다. 50년 8월의 무더웠던 여름 한 달 동안 줄곧 잘 지켜졌던 다부동 전선이 커다란 위기에 닥친 것이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었다.



나는 우선 마이켈리스 대령에게 “일단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든 수습할 테니까 잠시 기다려 달라”고만 말했다. 마이켈리스는 다행히 “그렇다면 잠시 기다려 보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무조건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운전병을 불러내 지프에 올라탔다. 전선 시찰 때 따라나가는 게 보통인 참모와 부관들이 동행할 틈도 없었다. 운전병이 차를 급히 몰았다.



백선엽 장군


[출처: 중앙일보] [6 · 25 전쟁 60년] 낙동강 혈전 (61) 다부동의 마지막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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