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닮아가는 로봇]
그래픽 = 진봉기
로봇이 미소 지은 비결은? '인대' 역할하는 콜라겐 젤 덕분
인공 피부, 로봇에 가해질 충격 흡수
진짜 피부처럼 부드럽고 스스로 재생
'불쾌한 골짜기' 현상 극복 위해서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표정 필요해
분홍색 슬라임을 넓게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동그란 물질에 두 개의 눈이 달려 있어요. 그 아래로 어렴풋이 미소 짓는 입과 그로 인해 볼이 볼록하게 솟은 모습이 보입니다. 웃을 때 볼살이 튀어나오는 인간의 얼굴을 재현했지요.
이것은 인공 피부가 부착된 2차원 얼굴 로봇입니다. 이 인공 피부는 과학자들이 사람 피부 세포를 이용해 만든 거예요. 점점 더 인간을 닮아가고 있는 로봇 이야기, 지금부터 알아볼게요.
움직여도 찢어지지 않는 인공 피부
일본 도쿄대 다케우치 쇼지 교수팀이 지난달 인공 피부를 입힌 얼굴 로봇을 공개했어요. 다케우치 쇼지 교수는 생물학과 기계공학이 결합된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을 연구해요.
평소 다케우치 쇼지 교수의 고민은 인공 피부를 어떻게 로봇에 붙이느냐였습니다. 사람 몸 전체가 피부로 덮여있는 것처럼 로봇의 몸도 인공 피부로 빈틈없이 감싸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또 이전 연구에서 사람의 피부 세포를 이용해 만든 인공 피부를 가진 로봇 손가락을 개발했는데, 손가락을 움직이면 인공 피부가 찢어지는 문제가 발견됐어요.
다케우치 쇼지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의 피부 구조를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피부와 인대의 구조에 주목했습니다. 근육 위로 근막과 피부가 쌓여있는데, 인대는 근육과 근막, 피부 사이에서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연구진은 인공 피부와 로봇 골격을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이를 위해 로봇 골격에 'V자 모양' 구멍들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위에 인대 역할을 할 젤을 바르고, 그 위에 사람 피부 세포를 이용해 만든 인공 피부층을 쌓아 올렸습니다. 인대 역할을 하는 젤은 콜라겐 등으로 만들었죠.
젤은 구멍 사이로 스며들었고 시간이 지나 굳으면서 로봇 골격에 고정됐습니다. 동시에 위에 있던 피부층에도 잘 붙었죠. 젤 덕분에 로봇의 얼굴 골격이 움직여도 인공 피부가 찢어지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된 거예요.
로봇의 인공 피부는 잡아당겨도 잘 붙어 있었고, 미소 짓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움직여도 찢어지지 않았어요. 또 실제 사람 피부 세포를 이용해 만든 만큼 진짜 피부처럼 부드러울 뿐 아니라, 상처를 입어도 스스로 재생할 수 있다고 해요. 실제로 상용화되려면 추가 실험이 필요하지만, 연구진은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연구 결과라고 평가했어요.
로봇에 피부가 필요한 이유
최근 로봇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활용되고 있어요. 서빙을 하고, 커피를 만들고, 청소를 하지요. 이런 단순한 일들은 피부가 없는 로봇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갈수록 인간이 로봇에 원하는 일들이 복잡해지고 많아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피부를 가진 로봇이 필요해지고 있죠.
사람이 일할 수 없는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로봇을 생각해볼게요. 이 현장에서 로봇은 무언가에 부딪히거나 충돌할 수 있는 위험이 많아요. 이때 피부는 로봇 본체에 가해질 충격을 흡수해줘요. 로봇이 부서지는 걸 막을 수 있는 거예요. 나아가 정말 사람 피부처럼 온도 변화, 외부 자극 등을 감지할 수 있다면 사고를 미리 피할 수도 있을 거예요.
또 어떤 물체가 닿았을 때 느껴지는 감각 정보를 파악하고, 쓰다듬거나 포옹처럼 사람과 감정적 교류를 하려면 부드러운 피부가 필요해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실제 사람 피부처럼 촉감을 느끼고, 상처가 나도 회복 가능한 인공 피부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비슷해지는 로봇, 불편한 이유는?
이번에 공개된 인공 피부 로봇이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신기함보다 기괴함과 무서움을 느꼈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이런 심리를 설명하는 현상이 '불쾌한 골짜기' 입니다.
불쾌한 골짜기란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이론이에요. 로봇의 모습이 인간과 비슷할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데, 닮은 정도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호감도가 떨어지고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고 해요. 그런데 기술 발전으로 닮은 정도가 일정 수준을 뛰어넘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다시 호감도가 증가한다고 해요. 여기서 '일정 수준' 을 '불쾌한 골짜기' 라고 부릅니다.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넘는 로봇이 만들어지려면 어떤 기능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다양한 표정일 겁니다. 전문가들은 로봇이 인간과 매우 닮았지만, 인간처럼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 수 없다 보니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발생한다고 봤거든요.
정서와 얼굴 표정 등에 대해서 연구하는 미국의 폴 에크만 교수는 인간은 얼굴에 있는 40여 개의 근육을 이용해 1만 가지가 넘는 표정을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이 가운데 감정과 관련된 것은 3000여 개라고 합니다.
해외 연구진이 31국 사람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역과 문화 등 차이를 넘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보편적 표정은 35개였다고 해요. 어쩌면 로봇이 이 정도 표정만 표현할 줄 알아도 인간이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로봇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 · 구성 = 오주비 기자 (jubi@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4년 7월 16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