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28

[한강의 기적 마중물 된 일본인 귀속 재산]

[한강의 기적 마중물 된 일본인 귀속 재산]    일러스트 = 한상엽    패전 후 일본인 71만명, 단돈 1,000엔씩 들고 조선을 떠났다   美, 日 사유재산까지 몰수韓 예산 8배 넘는 규모이승만 정부가 민간 불하 35년 수탈한 富로 이룬日기업 수천개 우리 품에토종 대기업들 쑥쑥 컸다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 정부, 공공기관, 단체, 회사, 개인 등이 소유한 일체의 재산은 1945년 9월 25일부로 미군정청이 접수하고 그 소유권을 행사한다.” (미군정 법령 제33호, 제2조. 1945. 12. 6.) 해방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 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본 축적 면에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2위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1930년대 이후 공업화 정책에 따라, ..

[이념에 휘둘린 예술인 최승희의 월북과 숙청]

[이념에 휘둘린 예술인 최승희의 월북과 숙청]    일러스트 = 한상엽    월드스타 무용가의 親日 이력, 김일성은 개의치 않았다   조선이 낳은 천재 무용가월드투어로 세계 홀려수익은 일본군에 헌납 南서 친일 비난에 탈출北선 특별예우 받았지만김일성 눈밖 나 제거돼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 최승희는 일본군 위문 공연차 들른 중국 상하이에서 해방을 맞았다. 최승희는 전쟁 막바지 ‘황군 위문’ 을 구실로 자택이 있던 도쿄를 떠나 조선, 몽골을 거쳐 1945년 봄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주가 끝난 후 남편 안막은 독립 동맹에 참여하기 위해 옌안으로 떠났다. 안막은 와세다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주의 문예 운동에 뛰어든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KAPF) 이론가였다. 본명은 안필승이었지..

[좌파 역사 분식에 이용된 한 많은 국민 가요]

[좌파 역사 분식에 이용된 한 많은 국민 가요]    일러스트 = 한상엽    '눈물 젖은 두만강' 이 공산주의자 박헌영에 바친 노래라니요?   두만강서 日경찰에 끌려간독립투사 남편 그리는 내용反共 드라마 '김삿갓' 삽입 역사 무시한 좌파 사학자"'내 님' 은 박헌영" 주장그들만의 진실로 굳어져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 떠나든 그 배는 어데로 갔소 /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 언제나 오려나.” 1938년 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박시춘 편곡, 김정구 노래로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한 ‘눈물 젖은 두만강’ (이하 ‘두만강’) 은 발매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고, 해방 후에도 꾸준히 사랑받았다. ‘두만강’ 이 ‘국민 가요’ 반열에 오른 것은 ..

[김 주석과 임시정부 실패한 國字 쿠데타]

[김 주석과 임시정부 실패한 國字 쿠데타]    일러스트 = 한상엽    김구의 정권 인수 시도는 왜 '1일 천하' 로 끝났나   27년 만에 귀향한임정 요인 30여명현실 정치 감 잃어 "국내는 다 친일파"美군정 찬탈 시도도스스로 입지 좁혀    1945년 11월 5일, 김구 주석과 임시정부 (임정) 요인 30여 명은 중국 장제스 정부가 보내준 군용기 편으로 충칭을 떠나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임정은 미 군정과 환국 조건을 합의하지 못해 한동안 발이 묶였다. 11월 19일, 결국 김구 주석은 중국 주둔 미군 사령관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편지를 썼다. “나와 충칭에 주재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들이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것과 관련해 공인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일러스트 = 한상엽    조선공산당 1인자 박헌영은 왜'수령' 이 되지 못했나   스탈린이 호통쳤다"인민은 땅을 파고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 朴, 가정 파탄나도공산당에 몸 바쳤지만소련군 출신 金에 밀려    1900년생 박헌영은 1912년생 김일성보다 열두 살 위였다. 해방 이전 공산당 관련 사건으로 세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복역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을 때는 법정과 구치소에서 광인처럼 날뛰었고,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대변을 보고는 손에 쥐어 벽에 바르고 간수가 밥을 갖다주면 밥은 그대로 두고 변을···” (박갑동, ‘박헌영’)이라는 일화는 당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서는 만삭 아내..

[어지러운 해방 정국 우익 지도자 송진우 암살사건]

[어지러운 해방 정국 우익 지도자 송진우 암살사건]    일러스트 = 한상엽    해방 후 첫 정치 테러, 배후 없는 '몽상가' 의 범행이었나?   29세 청년 한현우宋을 찬탁파로 오해담장 넘어 권총 난사 '단독범' 결론 났지만김구 측근과 모의 정황폭력은 폭력을 낳는 법    총독부 2인자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이 패전 후 ‘치안 유지’ 요청을 위해 처음 접촉한 인물은 여운형이 아니라 전 동아일보 사장이자, 우익 지도자 송진우였다. 그 또한 일본과 타협하는 행위라 생각한 송진우는 엔도의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했다. 이후 엔도의 제안을 수락한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 참여를 요청했을 때는 여운형을 ‘경멸’ 하며 그 제안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대신 호남 지주와 우익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임정) 봉..

[김수임과 이강국의 미스터리 러브스토리]

[김수임과 이강국의 미스터리 러브스토리] '조선의 마타하리' 는 진짜 간첩이었을까, 양다리 불륜녀였을까 영어 잘하는 신여성 金 美 헌병감과 동거하며 군기밀 빼내다 사형 독일 유학파 李 남로당 2인자 돼 미군 지프 타고 월북 ‘여간첩’ 김수임과 ‘공산당 2인자’ 이강국의 38선을 넘나든 ‘간첩 행위’ 와 러브 스토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자주 극화된 소재 가운데 하나다. 영화 ‘나는 속았다’ (1964, 문정숙 · 신영균),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윤소라 · 신일룡), TBC 드라마 ‘운명’ (1974, 지윤성 · 김세윤), MBC ‘제1공화국 : 여간첩 김수임’ (1981, 정애리 · 현석), SBS ‘서울 1945′ (2006, 한다감 · 류수영)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남과 북에..

[일제시대 유명 만담가 신불출의 탈선과 월북]

[일제시대 유명 만담가 신불출의 탈선과 월북] 일러스트 = 한상엽 '좌파 개념 연예인' 의 태극기 모독, 국민이 분노했다 입담으로 웃겨준 연예인 해방 후 좌익 · 찬탁 선동 "태극기 붉게 물들 것" 성난 군중이 끌어내려 월북 후 한 · 미 비방 공연 믿었던 北서도 숙청당해 만담가 신불출은 한국 최초의 ‘국민 예능인’ 이었다. 신영일, 신흥식 등 본명도 증언과 기록마다 다르고, 출생 연도도 남한은 1905년, 북한은 1907년으로 다르게 기록된다. 사망에 대해서도 북한 자료에는 그가 뇌출혈로 투병하다 1971년 사망했다고 하지만,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탈북한 전직 배우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1960년대 초 종파주의자로 숙청돼 1976년쯤 요덕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한다. 신불출이라는 예명 외..

[조선공산당 돈줄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조선공산당 돈줄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일러스트 = 한상엽 공산당에겐 그들만의 '정의의 법정' 이 따로 있었다 서울 도심 고층빌딩을 공산당 아지트 만들고 위폐 1200만원 찍어내 경제사범 수사하는데 "친일경찰의 정치탄압" "판 · 검사 죽여라" 선동 패전 이후 미군 진주 직전까지 총독부와 조선은행은 엄청난 양의 조선은행권을 찍어댔다. 조선은행권 인쇄를 전담하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일본인 지카자와 (近澤) 가문이 경영하던 ‘지카자와인쇄소’ 에도 일부 물량을 할당했다. 비슷한 시기 지카자와 가문은 귀국을 준비하며 지카자와 빌딩과 인쇄소를 헐값에 내놓았다. 조선공산당 (이하 조공)은 20만원의 자금을 ‘조달’ 해 이를 인수했다. 소공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의 ‘근택 (..

[좌익의 경찰 조직 와해에 맞선 남한 첫 치안총수 조병옥 박사]

[좌익의 경찰 조직 와해에 맞선 남한 첫 치안총수 조병옥 박사] 일러스트 = 한상엽 "친일파와 親직업인은 다르다" 조병옥이 일제 경찰을 등용한 이유 日政 경찰 40%가 조선인 97%는 생계형 하위직 해방 후 간부로 진출 趙, '친일 경찰' 공격에 "업에 충실했던 동포를 친일로 매도할 수 있나"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직후, 총독부를 비롯한 관공서 굴뚝에서 한여름에 난데없이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거리마다 잿가루와 타다 만 종잇조각이 흩날렸다. 화신백화점 앞 집회에서 한 연사가 거리에서 모은 타다 만 종이 뭉치를 흔들며 외쳤다. “여기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조선 애국자들을 체포하여 총살하라는 명령서, 고문 실시에 대한 중앙기관의 명령서, 밀정들의 명단과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서울..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