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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3

[<17> 1931년 만주사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1931년 만주사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 국가였다. 하지만 본질을 숨기기 위해 ‘오족협화(五族協和·다섯 민족의 협력과 화해)’를 내세웠다. 왼쪽 깃발은 1911년 신해혁명군 깃발, 중앙의 오색기는 장쉐량 군대 깃발, 오른쪽은 장제스군의 청천백일기다. 아래에는 ‘공화만세’라고 적혀 있다. / 위키피디아 '동양의 화약고' 된 만주··· 臨政이 상해로 간 건 '신의 한 수' 였다 신해혁명 후 만주, 중국 파벌들과 소련 · 日 뒤엉키며 무주공산 상태 위안스카이를 계승한 장쭤린 장제스에 밀려 만주 가다 日에 피살 관동군은 그의 아들 군대 공격하며 15년 전쟁의 지옥문을 열기도 韓中 좌익협력 아닌 우익협력 활발 이봉창 · 윤봉길 의거에 쓰인 폭탄 장제스 북벌에 참가한 인물이 제공 러시..

[ <14> 신해혁명과 대한독립운동]

[ 신해혁명과 대한독립운동] 1912년 2월 15일 명나라 태조 홍무제의 묘를 참배하는 중화민국 초대 임시대총통 쑨원 (가운데). 한족과 비한족을 아우르는 오족공화론을 주장하며 다른 민족들이 독립국가를 세워 분리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와 후계자 장제스 역시 고려와 대만을 회복해 중화를 공고히 하려는 등 한족 중심적 혁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위키피디아 독립운동에 희망 준 신해혁명··· 하지만 중화민국은 우리 臨政 승인 안했다 안창호가 주도한 美 한인기관지 1000년에 한 번 얻기 어려운 독립 기회라며 신해혁명 지원 호소 신규식은 재산 정리, 압록강 건너 하지만 신해혁명은 한족 중심 혁명 지도부 쑨원 · 장제스 등은 우리까지 '중화' 로 포섭하려 해 1895년 청일전쟁에서의 참패로 청 황실의 권위는..

[원세개 (위안스카이)와 조선]

[원세개 (위안스카이)와 조선] 갑신정변 실패 후 조선에 급파된 청나라 군대의 지휘관 오대징이 서울에 들어와 수포교를 지나고 있어요. / 조선일보 DB 고종에 삿대질, 서양과의 외교 방해··· 개화 발목 잡았죠 1882년 임오군란 때 조선 들어와 26세에 총독 같은 권세 누리며 10년 가까이 횡포 일삼았어요 싱하이밍 (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가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자리에서 "미국의 승리에 베팅 (결과가 불확실한 일에돈을 거는 일)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취지의 말을 해 '부적절하고 무례한 발언' 이라는 논란을 빚고 있어요. 일각에선 싱하이밍 대사가 옛날 원세개 (袁世凱 · 위안스카이 · 1859 ~ 1916)를 연상케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해요. 원세개는 누구일까요? 내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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