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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 2

[한국 첫 서영화가로 평가받는 역관 집안 엘리트 춘곡 고희동]

[한국 첫 서영화가로 평가받는 역관 집안 엘리트 춘곡 고희동]    대표작 ‘정자관을 쓴 자화상’ (1915)은 고희동이 대학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화 자화상이다. / 도쿄예술대학교 박물관    조선인이 그린 최초의 서양화는 조선인의 自畵像이었다   조기교육으로 佛語 유창을사늑약이 앗아간 꿈역관서 화가로 진로 바꿔 근대미술 선구자였지만"닭똥 칠한다" 손가락질결국 韓國畵로 장르 변경    춘곡 (春谷) 고희동 (1886 ~ 1965)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다.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첫 조선인이었고, 1915년 졸업 후 귀국해 평생 화가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논할 때 늘 첫머리에 등장한다. 마치 우리 근대미술의 역사가 고희동의 일본 유학에서 시..

[어두운 시대, 굳건한 정신력으로 자연의 생명력 그린 화가 오지호]

[어두운 시대, 굳건한 정신력으로 자연의 생명력 그린 화가 오지호] 오지호, 개성 송악산에서 3일간 사생해 그린 ‘사과밭’, 1937, 개인소장. 너무나도 눈부시게 환한 나머지 사과나무의 그림자도 보랏빛으로 보인다. 오지호는 이렇게 맑고 밝은 조선의 자연이 습윤하고 음침한 일본의 자연과 구별되는, 조선 고유의 특징이라고 봤다. 오지호는 ‘조선’의 인상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늘에도 빛이 있다"··· 고난 속 삶의 환희를 예술로 표현한 이 화가 스스로 인샹 경로 개척 초기 개화파였던 부친이 경술국치 이후 자결하자 고향 떠나 홀로 日 유학 투병 중 피어난 예술혼 위출혈로 고생하면서도 꽃 피는 자연에 감격해 눈부신 색채로 담아내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겨 6 · 25 때 즉결 처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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