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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2

[댄스홀과 국치랑 유흥업계도 해방 만끽]

[댄스홀과 국치랑 유흥업계도 해방 만끽] 1945년 10월 23일 자유신문에 실린 만화 '국치랑들의 이꼴저꼴' / 국사편찬위원회 민족 해방과 함께 찾아온 '풍기 해방' 광복과 동시에 범람한 기생 요릿집과 댄스홀 미군 상대하는 여성 출현 左右 투쟁 치열하던 때 밤마다 유흥하던 이들은 대체로 지식인이었다 “미쓰하시 경무국장 각하여, 우리들은 이제 서울에 딴스홀을 허 (許)하여 주십사 연명으로 각하에게 청하옵나이다. (…) 일본제국의 온갖 판도 내와 아세아의 문명 도시에는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딴스홀이 유독 우리 조선에만, 우리 서울에만 허락되지 않는다 함은 심히 통한할 일로, 이제 각하에게 이 글을 드리는 본의도 오직 여기 있나이다.” (‘삼천리’ 1937년 1월 호)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우가키 조선..

[미군 진주와 미군정 출범]

[미군 진주와 미군정 출범] 일러스트 = 한상엽 미군정사령관 하지는 왜 조선총독을 유임하려 했나? 하지는 용맹한 야전장군 그러나 행정경험 없었고 한국 상황에도 무지 아베 유임은 큰 오판 비판 커져 교체했지만 일부 관리는 잔류시켜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하지 중장의 제24군단이 남한 점령의 임무를 맡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소련군이 남하하는 한반도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연합군최고사령부 (GHQ)’ 사령관 맥아더는 명문 군인 가문의 후예로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후 육군참모총장까지 최연소 승진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던 최고의 엘리트 군인이었다. 또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사실상 정치인이었다. 그에 반해, 남한의 미군정사령관 하지는 일리노이주 농부의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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