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홀과 국치랑 유흥업계도 해방 만끽] 1945년 10월 23일 자유신문에 실린 만화 '국치랑들의 이꼴저꼴' / 국사편찬위원회 민족 해방과 함께 찾아온 '풍기 해방' 광복과 동시에 범람한 기생 요릿집과 댄스홀 미군 상대하는 여성 출현 左右 투쟁 치열하던 때 밤마다 유흥하던 이들은 대체로 지식인이었다 “미쓰하시 경무국장 각하여, 우리들은 이제 서울에 딴스홀을 허 (許)하여 주십사 연명으로 각하에게 청하옵나이다. (…) 일본제국의 온갖 판도 내와 아세아의 문명 도시에는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딴스홀이 유독 우리 조선에만, 우리 서울에만 허락되지 않는다 함은 심히 통한할 일로, 이제 각하에게 이 글을 드리는 본의도 오직 여기 있나이다.” (‘삼천리’ 1937년 1월 호)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우가키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