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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중장 3

["민족의 영웅" 이승만의 환국]

["민족의 영웅" 이승만의 환국] 일러스트 = 한상엽 조선공산당은 왜 이승만을 인민공화국 주석으로 추대했나? 해방 두 달 만의 귀국 험난했지만 美 설득 좌우 다 지도자로 추대 李는 반공 · 반소주의자 공산당은 국민 지지받는 그를 이용하려 했으나 훤히 꿰뚫고 "화합" 강조 이승만은 1945년 8월 14일 밤 11시 워싱턴DC 자택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자신의 집에 모여든 동지들에게 그는 “소련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미국이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하면 한반도에서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고 우려를 표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후인 8월 8일, 이승만은 백악관에 귀국 청원 편지를 보냈다. 군 작전 지역이었던 한국으..

[미군 진주와 미군정 출범]

[미군 진주와 미군정 출범] 일러스트 = 한상엽 미군정사령관 하지는 왜 조선총독을 유임하려 했나? 하지는 용맹한 야전장군 그러나 행정경험 없었고 한국 상황에도 무지 아베 유임은 큰 오판 비판 커져 교체했지만 일부 관리는 잔류시켜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하지 중장의 제24군단이 남한 점령의 임무를 맡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소련군이 남하하는 한반도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연합군최고사령부 (GHQ)’ 사령관 맥아더는 명문 군인 가문의 후예로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후 육군참모총장까지 최연소 승진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던 최고의 엘리트 군인이었다. 또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사실상 정치인이었다. 그에 반해, 남한의 미군정사령관 하지는 일리노이주 농부의 아들로..

[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제헌의회 개원… 이승만 "투표율 90% 넘는 건, 세계에 민족의 애국심 보여준 것" - 1948년 5월 31일 제헌의회 개원식이 열리고 있다. 개원식에는 5 · 10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 198명 (정원 200)이 참석했다. 이승만은 개원식에 앞선 예비 회의에서 국회의장으로 당선됐다. 소련은 남로당을 앞세워 5 · 10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전국에서 폭동을 일으켰지만 선거는 95.5%의 투표율로 마무리됐고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이승만은 투표율이 90%를 넘은 것에 대해 "우리 민족의 애국심을 세계에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기파랑) '피의 세례' 에도 투표율 95.5%··· 제헌의회 선거의 기적 이끌다 소련, 남로당 앞세워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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