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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 2

[1946년 訪蘇 사절단과 소설가 이태준의 비극]

[1946년 訪蘇 사절단과 소설가 이태준의 비극]    일러스트 = 한상엽    소련이 선전하는 것만 보고 예찬 쏟아낸 '소련 사절단'   순수문학 좇던 이태준인민민주주의 공감하며38선 넘어 사절단 참여 돌아와 낸 '소련 기행' 은무비판적이고 낯뜨거워6 · 25 전쟁 후 北서 숙청    “참으로 황홀한 수개월이었다. 인간의 낡고 악한 모든 것은 사라졌고 새 사람들의 새 생활, 새 관습, 새 문화의 새 세계였다. 그리고 소련은 날로 새로운 것에로, 마치 바다로 향해 흐르는 대하 (大河)처럼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이태준, ‘소련기행’) 해방 1주년을 닷새 앞둔 1946년 8월 10일, 소련군이 제공한 비행기 2대에 나눠 탄 ‘방소 (訪蘇)사절단’ (이하 사절단) 25명은 수백 인파의 환송을 받으며..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김일성과 박헌영 서열 바꾼 스탈린의 모스크바 면접]     일러스트 = 한상엽    조선공산당 1인자 박헌영은 왜'수령' 이 되지 못했나   스탈린이 호통쳤다"인민은 땅을 파고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 朴, 가정 파탄나도공산당에 몸 바쳤지만소련군 출신 金에 밀려    1900년생 박헌영은 1912년생 김일성보다 열두 살 위였다. 해방 이전 공산당 관련 사건으로 세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복역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을 때는 법정과 구치소에서 광인처럼 날뛰었고,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대변을 보고는 손에 쥐어 벽에 바르고 간수가 밥을 갖다주면 밥은 그대로 두고 변을···” (박갑동, ‘박헌영’)이라는 일화는 당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병보석으로 석방되어서는 만삭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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