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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작전 3

[6 · 25전쟁 : 세계자유수호전쟁] 03

[6 · 25전쟁 : 세계자유수호전쟁] 03 흥남철수작전 Hungnam Evacuation 1950. 12. 15 ~ 24 미 해군 90상륙지원단, 기뢰 제거 수로, 77기동항모단, 함포지원 Safe Mine Swept Channel by the US Navy Task Force 90 and Fire Support by the US Navy Task Force 77 Fast Carrier Group 흥남철수작전 중 흥남항 인근에는 공산군이 설치한 수많은 기뢰가 해역에 깔렸었다. 미 해군 90상륙지원단이 기뢰를 제거하여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수로를 만들어 선박들이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흥남항을 중심으로 남단과 북단에는 미 해군 77기동항모단의 함포지원 전단이 위치하여 흥남 교두보선 밖에 포진하고..

[장진호 (長津湖) 전투]

[장진호 (長津湖) 전투] 장진호 전투 중 이동하는 미 해병대. / 위키피디아 “후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 유엔군, 혹한 속 110㎞ 걸어 철수 성공 중공군 9병단, 전투 기능 잃고 후방에 결국 흥남서 20만명 무사히 철수했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현지 시각) 미 의회 연설에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長津湖) 전투에서 중공군 12만명의 인해 (人海) 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어요. ‘인해전술’이라는 것은 우수한 무기가 아니라 많은 병력을 투입해 적을 압도하려는 전술로, 6 · 25전쟁 (1950 ~ 1953) 당시 중공군 (중국 공산군)이 실제로 썼어요. 윤 대통령 발언에 중국 외교부는 “항미원조 (抗美援朝) 전쟁은 (중국의) 위대한 승리”라고 반발..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㉖ 38선 북방 방어 거점을 확보하라

[6 · 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㉖ 38선 북방 방어 거점을 확보하라 1951년 3월 말 이제 38선을 넘어야 할 때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의 정가에 형성된 기류는 분명히 우리와는 달랐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뭔가 멈칫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북진해서 적을 섬멸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총사령관은 그대로 북진을 밀어붙이고자 했지만 워싱턴과 다른 연합국은 38선으로 전선을 고착화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51년 3월, 38선 재돌파 앞두고 워싱턴은 멈칫했다 1951년 3월 27일 38선으로 전선이 일단 굳어지는 시점에 매슈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이 여주에서 소집한 회의에 참석했던 한·미 야전지휘관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앨런 미 8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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