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의 습격]
▲ / 그래픽 = 진봉기
기온 1도 오르면 해충 늘어나 곡물 수확 5% 감소한대요
기온 오르면 벌레 부화 · 생존율 증가
빈대, 흡혈하지 않고도 150일 생존
마른나무흰개미, 목제품 먹어 치워
최근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빈대는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전역을 휩쓸며 도시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전력이 있습니다. 버스나 극장 의자에서도 빈대를 볼 수 있을 정도라니, 그 침투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문제는 빈대뿐 아니라 다른 벌레나 곤충이 대거 나타나는 일이 지구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벌레들의 습격, 왜 발생하는 걸까요?
해외여행객 따라 이동하며 서식지 확대
노린재목 빈댓과에 속하는 곤충 빈대는 따뜻하고 습한 곳을 좋아해요. 주로 집 안 침대나 소파, 가구 틈새에서 지냅니다. 낮 동안 숨어 있다가 어두워지면 활동을 시작하는데, 사람이 침대나 소파에 기대는 순간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죠. 빈대는 모기보다 7 ~ 10배나 더 많은 피를 빨 수 있어요. 빈대에게 물리면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에 빈대가 나타난 건 처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만 해도 빈대는 자주 볼 수 있는 해충이었죠. 그러다 강력한 살충제가 등장하면서 빈대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비교적 건조한 기후인 데다, 집이나 숙박 시설을 청결하게 유지해 빈대가 더는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습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가면 숙박 시설에서 종종 빈대를 볼 수 있어요. 심지어 최근 몇 년간 미국 뉴욕이나 홍콩, 프랑스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 빈대가 많아지는 추세였죠. 전문가들은 빈대가 살충제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내성이란, 어떤 약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약물 효과가 점점 떨어지는 걸 말해요. 살충제를 써도 빈대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번식하며 개체 수가 늘어난 겁니다. 사람 옷이나 짐에 붙어 함께 비행기를 타고 다른 대륙 등 먼 곳까지 이동한 빈대는 새로운 숙주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흡혈하지 않고도 최장 150일까지 생존할 수 있으니, 파리에서 우리나라까지 서식지를 옮기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겠죠.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은 빈대의 이동 능력을 빗대 '흡혈 히치 하이커' 라 표현하기도 했답니다.
반복되는 벌레 습격, 원인은 지구온난화
빈대만이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벌레가 도시에 떼 지어 나타나고 있어요. 최근 한강공원에서 송충이를 닮은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어요. 공원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나무와 나뭇잎에 덕지덕지 붙은 벌레를 보고 깜짝 놀랐죠. 알고 보니 이 벌레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이었어요.
지난 5월에는 나뭇가지를 닮은 대벌레가 경기도 인근 산에 대거 나타났어요. 마른나무흰개미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죠. 대벌레는 나무에 붙어 잎을 다 갉아먹어요. 크기가 1㎝ 남짓한 마른나무흰개미는 목재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서 나무로 된 문화재나 물건 등을 망가뜨려요. 개체 수가 늘어나면 건물을 붕괴 위험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이죠.
해충이 대거 발생하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가 지목돼요. 기온이 오르면서 해충이 발육하는 시간이 빨라졌거든요. 번식 횟수도 늘면서 개체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미국흰불나방은 본래 한 해 두 차례 번식합니다. 5 ~ 6월 성충이 나타나고, 이들이 번식해 나온 2세대 자손이 7 ~ 8월 성충이 되죠. 그런데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전국 평균 온도가 22.6도로, 평년보다 2.1도 높았어요. 그래서 미국흰불나방의 생애가 빨라지며 3세대 유충까지 태어나게 됐다고 해요.
실제로 온도가 높을수록 대벌레 알 부화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강원대 산림과학부 정종국 교수팀은 지난 3 ~ 5월 대벌레 알 4500개를 고도 100m마다 배치하고, 부화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어요. 그 결과 고도 100m에서 30%이던 알 부화율이 이보다 400m 더 높은 곳에서는 5%로 급격히 낮아졌어요. 고도가 100m 높아지면 기온이 0.65도 내려가거든요. 연구진은 "벌레는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라 온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며 "기온이 오르면 부화율과 생존율이 높아져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것" 이라고 설명했어요.
곡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며 식탁 위협
벌레가 대거 발생하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과학자들은 식량 부족과 질병 문제를 걱정하고 있어요. 벌레가 곡물을 다 먹어 치워 농사를 망치게 할 수 있고, 특정 바이러스나 질병을 곳곳에 퍼뜨리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거든요. 가령 최근 3년간 수도권에서 대벌레가 잎을 갉아먹어 생긴 산림 피해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2020년에는 19㏊ (헥타르)에 불과했지만, 2021년 158㏊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981㏊로 급증했어요.
벌레들이 우리 식탁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어요. 미국 워싱턴대 커티스 도이치 박사 연구팀은 기온이 상승하면 밀 · 쌀 · 옥수수 등 3대 곡물의 해충 피해가 얼마나 커지는지 알아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곡물 수확량이 전체의 5%씩 줄어든다고 해요. 특히 중위도에 있어 살기 좋고 농사에도 적합한 온대 기후 지역에서 타격이 가장 컸어요. 곡물 생산량이 최대 절반까지 줄 수 있다고 하죠. 우리나라도 온대 기후에 포함된답니다.
과학자들은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벌레 대발생' 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국립생물자원관이 운영하는 시민 과학 프로젝트 '네이처링' 이 있죠. 일반 시민이 전국 곳곳에서 벌레가 대거 발생하는지 감시하고, 곤충 분류와 생태학적 특성을 관찰하는 거예요. 시민이 자기 집 주변에서 발견되는 곤충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돼요. 내 자료가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되고, 그 결과를 사이트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답니다. 지구 생태계를 위한 작은 노력, 여러분도 시민 과학자에 도전해 보세요.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1월 7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