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숨어있는 세계사

[역사를 바꾼 청소년]

드무2 2024. 1. 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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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청소년]

 

 

 

 바버라 로즈 존스 (왼쪽)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모턴 고등학교. / 브리태니커

 

 

 

16세 소녀 <바버라 로즈 존스>, 인종차별 교육 폐지 앞장··· 15세 소년 <루이 브라유>은 점자 개발

 

 

 

흑인 학교 개선 요구하며 동맹 휴학

브라유는 점 6개로 알파벳 표현해 내

소련 지도자에게 편지 쓴 10세 소녀도

 

 

 

지난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이었습니다. 1929년 11월 3일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기념하고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고자 제정된 날이죠. 광주학생항일운동은 광주에서 시작돼 이듬해 3월까지 전국으로 퍼지며 학생 5만4000여 명이 참여했어요. 광주학생항일운동은 3 · 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이며, 이후 일어난 항일운동에도 큰 영향을 줬어요.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도 이처럼 청소년이 사회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아요. 오늘은 역사를 바꾼 청소년들의 활약을 알아볼게요.

 

 

인종 분리 교육 '위헌' 이끌어낸 16세

바버라 로즈 존스는 미국 인권 운동가로, 1950년대 버지니아주에서 흑백 인종을 분리하는 공립학교 체제에 대해 반대 운동을 폈어요. 그의 활동은 결국 학교에서의 인종차별 철폐로 이어져 흑인 인권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어요.

1951년 열여섯 살이던 존스는 프린스 에드워드 카운티에 있는 모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모턴 고등학교는 마을 건너편 백인 학생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비해 시설이 매우 열악했어요. 난방 시설이나 체육관, 교사 화장실도 없었죠. 일부 학생은 고장 난 스쿨버스 안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어요. 교과서도 백인 학교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것만 받았어요.

모턴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시설과 차별 교육에 불만을 제기했을 때 프린스 에드워드 교육청은 이를 무시했어요. 존스는 1951년 4월 자신과 생각이 같은 학생들을 모아 동맹 휴학 계획을 세웠어요. 그는 강당에 모인 학생과 교사들에게 "지자체가 새 학교 건물을 짓는 데 동의할 때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말자" 고 주장했어요. 학생 대부분은 존스에게 동의하고 동맹 휴학 조직에 참여했어요. 존스의 지도에 따라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였으며, 학생들의 시위는 결국 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큰 움직임으로 발전했어요.

존스는 미국 흑인 인권 단체 NAACP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소속 변호사 스포츠우드 로빈슨과 올리버 힐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NAACP가 개입하면서 이 문제는 인종 분리 교육 철폐로 이어졌어요. 1951년 5월 두 변호사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954년 대법원이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결국 목적한 바를 달성했죠. 이 판결은 흑인 인권 운동에 있어 중대한 승리이자 이정표로 여겨진답니다.

 

 

 

 서맨사 스미스 (위)와 스미스가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쓴 편지. / 서맨사스미스재단

 

 

 

소련 지도자 초청 받은 10세

미국 소녀 서맨사 스미스는 1980년대 냉전 시대에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냈고, 소련 최고 권력자에게 답장까지 받았습니다. 1982년 12월 겨우 열 살 나이였어요. 스미스는 방송을 통해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 군비 경쟁으로 세계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스미스는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유리 안드로포프 앞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안드로포프가 평화를 원하는지, 그리고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핵전쟁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 달라고 말이에요.

1983년 4월 한 소련 신문사가 이 편지를 발췌해 지면에 실었고, 순수하고 진심이 담긴 편지는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어요. 결국 안드로포프가 여기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스미스가 언급한 핵무기의 파괴적 성격을 인정하고 평화를 원한다고 했어요. 또 스미스를 용감하고 정직한 소녀라고 칭찬하며 소련으로 초대했죠.

1983년 여름 스미스와 그의 가족은 소련을 방문했어요. 스미스 가족의 방문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고, 스미스는 '평화의 소녀' 로 알려졌어요.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수많은 인터뷰를 했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책 '소련으로의 여행 (Journey to the Soviet Union · 1985)' 을 발간했어요. 소련을 방문하며 겪은 일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죠. 스미스의 이야기는 냉전의 긴장을 줄이고, 서로 다른 두 이념 간 이해와 친선을 도모하는 데 영향을 끼쳤어요.

그런데 스미스는 1985년 8월 불의의 사고로 13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를 기리고자 소련 정부는 그의 모습을 담은 우표를 발행했고, 한 소련 학자는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에 '서맨사' 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루이 브라유 (왼쪽)와 브라유가 만든 점자 체계. / 모턴박물관

 

 

 

전 세계 시각장애인 위한 문자 만든 15세

18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루이 브라유는 15세 때 점자 (點字)를 발명했습니다. 브라유 역시 어린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었어요. 당시 시각장애인은 텍스트를 읽으려면 돌출된 글자를 손으로 더듬어야 했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었습니다.

1821년 브라유는 프랑스 군대에서 밤중에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고안된 '야간 글쓰기' 를 알게 됩니다. 이 방법은 샤를 바르비에가 개발했어요. 손으로 만져 읽을 수 있는 점 12개로 구성된 코드를 사용했죠. 그런데 이 방법은 알파벳을 숫자 조합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복잡해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브라유는 이러한 접근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더 단순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려 노력했고, 점 6개를 사용해 알파벳을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그가 개발한 방법은 각 글자와 소리를 명확하게 대응시켜, 학습하기 쉽고 사용하기도 편리했답니다.

1824년 브라유는 이 새로운 점자 체계를 완성했어요. 이후 음악, 수학, 심지어는 과학 기호까지 점자를 확장해 나갔지요. 점자 발명으로 시각장애인은 좀 더 쉽게 책과 글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또 더 독립적으로 공부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죠. 루이 브라유가 만든 점자 체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브라유 점자' 라고 불리게 됐어요. 오늘날에도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고 있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 · 구성 = 김윤주 기자 (yunj@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1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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