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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서울 Seoul : There and then 1945 ~ 1965] 05

드무2 2024. 2. 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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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서울 Seoul : There and then 1945 ~ 1965] 05

 

 

 

 

 

 

골목안 아이들

1 | 청계천 수표교에서 썰매타는 어린이들 1952년

2 | 덕수궁 사생대회 1956년

3 | 가회동 골목길 풍경 1955년

4 | 파고다공원 (탑골공원) 어린이들 1954년

5 | 삼청공원 시냇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 1955년

6 | 가회동 집 등교준비 1953년

7 | 남산초등학교 정문에서 1953년

8 | 가회동 골목안 풍경 1952년

9 | 재동초등학교 졸업식 1957년

10 | 가회동 골목길 아이들 1957년

11 | 파고다공원 (탑골공원)에서 노는 아이들 1954년

12 | 국수먹는 아이들 (효창공원) 1953년

13 | 재동초등학교 49회 졸업식 기념사진 1957년

14 | 교동초등학교 어린이 예방접종 1958년

15 | 겨울철 석탄 연기나는 재동초등학교 등굣길 1953년

16 | 어린이날 행사 (효창공원) 1953년

17 | 폐허가 된 재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 1953년

18 | 가회동 골목 아이들 1953년

19 | 어린이날 기념 행사 (덕수궁) 1953년

20 | 덕수궁에서 그림 그리는 아이 1958년

 

 

 

 

 

 

청계천 수표교에서 썰매타는 어린이들 1952년

 

 

 

가회동 골목길 풍경 1955년

 

 

 

파고다공원 (탑골공원) 어린이들 1954년

 

 

 

 

 

 

재동초등학교 졸업식 1957년

 

 

 

국수먹는 아이들 (효창공원) 1953년

 

 

 

 

 

 

겨울철 석탄 연기나는 재동초등학교 등굣길 1953년

 

 

 

폐허가 된 재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 1953년

 

 

 

가회동 골목 아이들 1953년

 

 

 

 

 

 

교동초등학교 어린이 예방접종 1958년

 

 

스포츠 문화의 확산

전후 복구가 시작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여가와 스포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 최대 스포츠 제전은 전국체육대회였다. 전국적인 스포츠 경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전국체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았다. 1954년부터 단체경기가 팀별 참가에서 시도대항전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지역민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전국체전은 실내경기장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하계 · 추계 · 동계 · 동계스키대회 등으로 나누어 개최하였고 각 경기별 개최시기도 달랐다. 대부분의 육상경기는 서울운동장에서 열렸고, 복싱과 레슬링은 중구 초동에 있던 한국체육관, 빙상경기는 겨울 한강 특설링크에서 열렸다.

 

 

 

 

 

 

 

 

 

1 | 전국체전 입장식 1959년

2 | 전국체전 수영대회 1959년

3 | 전국체전 야구경기 1959년

4 | 배구경기 1956년

5 | 골프대회 1959년

6 | 사이클대회 1956년

7 | 럭비경기 1959년

8 | 태권도경기 1959년

9 | 펜싱경기 1959년

10 | 유도경기 1956년

11 | 높이뛰기경기 1959년

12 | 육상경기 1959년

 

 

 

 

 

 

 

 

 

 

 

 

 

 

 

나의 집이 있는 삼각지 로터리를 지날 무렵에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들렸다. 순간 적기의 공습인가 아니면 육군본부 작전상황실의 폭파음인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집앞을 지나면서 그쪽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가족들의 얼굴을 잊으려는 심산이었고, 군인으로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한강 다리가 모두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인식, 「종군 일기」 중에서, 1950년 6월 28일

 

 

 

 

 

 

 

 

 

연하장

임인식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제작한 연하장이다. 연말 연하장을 제작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보내거나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1960년대                                                                                                                                                            청암아카이브

 

 

 

 

 

 

 

 

 

 

 

 

 

 

 

 

 

 

거리회 멤버 친필 사인

김조현, 박필호, 성두경, 이해선, 현일영 등과 함께 결성한 '거리회' 라는 사진작가 모임의 참석자 사인이다. 임인식 작가는 간사를 맡았으며 매년 송년의 밤 행사 때마다 회원들의 자필서명을 받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1960년대                                                                                                                                                            청암아카이브

 

 

 

 

 

 

 

 

 

사진 보존용품

임인식 작가가 사용하던 보존용품으로 필름 보관용 용지와 보관상자이다. 필름별로 촬영날짜와 촬영내용이 적혀 있다.

 

1950년대                                                                                                                                                            청암아카이브

 

 

 

 

 

 

해방촌 가는 길

강신재

 

광복 이후 조국 재건과 분단 문제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여성이 처한 현실과 심리 풍경을 적극적으로 탐구했던 강신재의 작품이다.

6 · 25전쟁 이후 사회적 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참했던 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서울, 1964년 겨울

김승옥

 

김승옥의 소설은 1960년대 도시 소시민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인 문체와 새로운 주제 의식을 선보이며 소설의 신기원을 열었다.

구청 직원인 '나' 와 대학원생인 '안 (安)', 30대의 '사내'가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당시 시댜상을 엿볼 수 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개풍군에서 태어난 소녀가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이주하는 과정을 그려낸 자전소설이다.

일제강점기와 6 · 25전쟁 시기,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산동네로 이사한 소녀가 유년시절을 보내는 모습을 통해 현대사의 격변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편이다.

1951년부터 결혼하기 직전인 1953년까지 작가의 20대 시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50년대 서울 격동기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목마른 계절

박완서

 

6 · 25전쟁 당시 서울의 상황을 담은 박완서의 자전소설이다.

전쟁 발발부터 '적치 (赤治) 3개월' 과 9 · 28수복, 1 · 4후퇴 등 1950년 6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서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서울은 만원이다

이호철

 

1966년 동아일보의 연재소설로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산업화 · 근대화를 향해 가던 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영에서 무작정 상경한 '길녀' 와 월남인 '동표' 의 이야기로 당시 서울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유부인

정비석

 

<자유부인>은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폭발적인 관심과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봉건주의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가정적인 혼란상과 사회적인 부패를 소설로 그려낸 작품이다.

 

 

 

오발탄

이범선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오발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6 · 25전쟁 직후 시대의 오발탄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철호일가의 삶을 통해 전후 분단의 아픔과 함께 서민들의 생활고를 느낄 수 있다.

 

 

 

병든 서울

오장환

 

<병든 서울>은 1930년대 한국문단을 이끌었던 오장환이 광복 이후 쓴 19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복 직후 해방의 기쁨과 혼란 속에서 느끼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6 · 25전쟁 직후 실존주의와 허무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 집필된 작품으로, 박인환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이다.

이 중 「어린 딸에게」는 6 · 25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딸의 참혹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고뇌가 담겨 있다.

 

 

 

 

 

 

 

 

 

 

 

 

 

 

 

 

 

 

 

 

 

서울사진 아카이브

서울박물관은 개관 (2002년) 전인 1996년부터 지금까지 시민들의 소중한 유물을 지속적으로 기증받고 있다. 그 결과 올해까지 691명으로부터 20만여 점을 수집했다. 그 중 서울의 시대적 변화상이 담겨 있는 사진을 모아 서울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서울사진 아카이브에는 한영수, 김한용, 임인식, 홍순태, 정범태, 김기찬, 황헌만 등이 촬영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며 서울의 공간변화, 서울시민들의 삶과 문화가 담겨 있다.

 

 

 

홍순태

홍순태가 찍은 1960 ~ 80년대 서울의 창신동, 마포, 잠실 사진은 전면에 사람은 크게 부각시킨 인물 위주의 사진보다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적인 상황을 강조하는 사진이 대종을 이룬다. 도시 사진에서 홍순태의 접근법은 차별적인 것으로, 인간을 직접 대면하기 보다는 그 인간이 살아가는 장소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언제나 사진의 고유성을 믿는 순수사진 (Straight Photo)의 입장이었으며, 말년에 세계 곳곳을 누비며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까지 그 믿음을 이어갔다.

 

1934  서울 중구 중림동 출생

1960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1970  일본 《EXPO '70》 한국관 사진담당

1972  국전추천작가

1976  M. P. C (Modern Photo Club) 창립

1982  신구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부임

1983  KBS 이산가족 찾기 운동 기록사진 촬영

1986  '86 아시안게임 공식 기록사진가

1988  '88 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사진가

1994 ~ 96  한국 사진학회 회장

2016  별세

 

 

 

뚝섬의 돛단배, 1969년

 

 

 

남산 삿갓 쓴 노인, 1970년

 

 

 

겨울의 징검다리 등교, 1968년

 

 

 

한영수

한영수는 1950 ~ 60년대 전후 재건 시기 이웃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가이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의 상흔은 깊었지만 시민들은 저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 노력했고 고되지만 보람된 삶을 이어갔다. 한영수는 서울의 이웃들에게서 회복의 가능성을 보았고, 서울의 장소성을 바탕으로 '아이', '시장', '골목길', '한강' 을 촬영했다. 부서진 문짝을 놀잇감으로 삼은 아이들의 웃음, 억척스러운 손끝으로 장사를 마무리하는 상인들의 활기, 한영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모아 서울이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1933  개성 충생

1958  신선회 입회 (한국 최초 리얼리즘 사진연구 단체)

1959  한국사진작가협회 부회장 선임

1961  영국 『국제사진 연감』에 <골목소녀> 수록

1962  한국창작사진가협회 대표위원

1966  광고사진스튜디오 한영수사진연구소 설립

1973  스위스 『포토그라피스 연감』에 광고사진 수록 (삼성전자)

1985  사진라이브러리 포토뱅크 창업

1991  대한민국 사진전 심사위원장

1999  별세

 

 

 

양복점 안 풍경ㅡ서울 명동, 1956 ~ 1963년

 

 

 

얼음썰매ㅡ한강, 1958년

 

 

 

김한용

김한용은 1947년 국제보도연맹 사진기자를 시작으로 보도사진부터 광고사진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평생을 사진작업에 매진했다. 그는 한국 광고사진의 선구자인 동시에, 한평생 서울시내 곳곳을 기록한 사진작가다. 김한용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변화상과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꾸준히 담았다. 특히 그의 서울 파노라마 사진은 194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에 걸쳐 시대별로 고루 갖추어져 있다.

 

1924  평안남도 성천 출생

1946  월남

1947  국제보도연맹 사진기자로 입사

1950  한국전쟁 중 서북전선 취재

1952  부산일보 사진기자로 입사

1959  서울 중구 충무로 3가 김한용 사진연구소 개설

1964  <제13회 국전>에 <비둘기>로 입선

1966  제3회 조일광고 대상에 <OB 맥주> 광고로 대상 수상

1982  88올림픽 공식기록 사진촬영단 사진작가 위촉

1992  한국광고대회 유공광고인 대통령표창

2016  별세

 

 

 

동대문과 버스터미널, 1970년경

 

 

 

청계고가도로, 1970년대

 

 

 

임인식

평북 정주 출신인 임인식 작가는 청년기에는 정주에서 사진활동을 하다가 1944년부터 서울 용산에서 한미사진기점을 운영하며 서울의 풍물과 도시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사 8기였던 임인식 중위는 사진대 대장으로 임명되어 한강철교 폭파 장면부터 학도의용군 독려현장, 물자를 나르는 노무자의 모습까지 한국 전쟁기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특히 1954년부터 촬영한 서울 항공사진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44  용산 삼각지에서 한미사진기점 운영

1948  잡지 『사진문화』 창간

1949  육군사관학교 졸업

1950 ~ 52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장 종군

1951  Tㅡ34의 잔해와 미군 포로 시체 사진을 AP통신 통해 전세계 타전

1953  대외 육군화보 영문판 제작

1955  사진인 모임 거리회 창립

1962  한국사진가협회 창립회원

1992  북한 명승고적 촬영

1998  별세

 

 

 

가회동 초가집에서 아침식사, 1953년

 

 

 

임정의

사진작가 임정의는 관찰자이자 기록자의 시선으로 도시 건축물을 담아낸다. 건축사진 일을 하면서 사진의 기록적 가치에 주목하게 된 그는 1945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부친 임인식 작가가 촬영한 강북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 뒤를 이어 서울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후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 새마을운동의 다양한 활동을 기록했고 건축가들과 협업하여 각종 건축물을 촬영했다.

 

1944  평안북도 정주 출생

1966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69 ~ 1973  KBS보도부 기자

1973 ~ 1975  코리아 헤럴드 사진기자

1975 ~ 1978  공간사 사진부장

1997  청암사진연구소 설립

1998  《'97 광주비엔날레》 공간전 초대작가

1998  《한국인의 주거와 삶》, 예술의 전당

1998 ~ 2008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초빙교수

2004  《80일간의 세계일주와 서울의 기억》, 세종문화회관

2008  《서울 타임캡슐을 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서울사진축제》, 서울역사박물관

 

 

 

강남 반포아파트 단지 기초공사, 1972년

 

 

 

금호동 달동네, 1989년

 

 

 

김기찬

사진가 김기찬은 30여 년간 서울의 골목을 찍었다. 1960년대 말 우연히 들어선 중림동 골목에서 따스한 정을 느낀 그는 주로 사대문 외곽의 골목을 누볐다. 고도성장 시기를 맞은 서울은 급변하고 있었으나, 그의 시선은 빠르게 달라지는 도시 중심부보다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골목에 오래 머물렀다. 김기찬은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은 서울의 모습을 착실히 필름에 새겼고, 그렇게 쌓인 필름이 10만 점을 넘겼다.

 

1938  서울 출생

1963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1964 ~ 80  TBCㅡTV 영상제작부장

1980 ~ 94  KBSㅡTV 영상제작부장

1989  서울 정도 600년 사진분과 추진위원

1994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예술의 전당

1994 ~ 99  제일기획 Q채널 국장

2002  이명동사진상

2003. 9  《골목안 풍경 30년》, 대림미술관

2003. 12  제34회 백상출판문화상 『역전 풍경』

2004  동강사진상 국내작가상

2005  별세

 

 

 

중림동 1983년 8월 28일, 1983년

 

 

 

중림동 1982년 6월, 1982년

 

 

 

중림동 1988년 11월, 1988년

 

 

 

정범태

정범태는 조선일보, 한국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등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한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현장을 기록했다. 특히 그가 1960년 4월 18일 서울 천일백화점 앞 고려대생 피습장면을 찍은 사진은 4 · 19의 계기가 됐다. 1961년 5 · 16군사정변 직후 마약사범으로 군사법정에 서 있는 여인과 그의 어린 아들을 포착한 '결정적 순간' 은 '리얼리즘 사진의 백미' 로 꼽힌다. 또한 틈틈이 명인 · 명창들의 행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예술 전문 사진가' 로도 알려져 있다.

 

1928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50  육군 제11044부대 공병대 사진기록 문관

1956. 3  신선회 사진연구회 입회

1956. 4  조선일보사 사진부 기자

1961  한국일보사 사진부 차장

1962  필화사건으로 실형 2년

1965  조선일보사 사진부 부장

1968  한국일보사 주간한국 사진부 부장

1982  대한민국사진전 심사위원

1989  세계일보사 사진부 부장

1993  제25회 한국기자상

1999  한국민족사진가협회 이사

2002  대한언론회 이사

2016  우리춤협회 고문

2019  별세

 

 

 

나룻배 위의 선생님과 아이들ㅡ한강, 1960년대 후반

 

 

 

결정적 순간ㅡ서울경기고등군법재판소, 1961년

 

 

 

황헌만

황헌만 작가는 서라벌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출판사진부 사진기자와 서울문화사의 사진부장을 역임하며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는 중에는 틈틈이 서울의 일상을 찍기도 했다. 황헌만의 서울 사진은 6 · 10민주화운동부터 생활사의 정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2022년 작고하기 전까지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였으며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50년 넘게 촬영했다.

 

사진집 「임진강」, 「장승」, 「초가」, 「조선 땅 마을 지킴이」, 「한국의 세시 풍속」, 「도산서원」, 「옹기」, 「하회마을」

 

사진동화 「민들레의 꿈」, 「민들레 일기」, 「내 이름은 민들레」, 「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 「섬서구메뚜기의 모험」, 「날아라, 재두루미」, 「춤추는 저어새」

 

 

 

전시를 만든 사람들

전시주최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총괄  박현욱

전시기획  홍승주 김재경

전시진행  장은혜 나신균 안미경 송철호 최인호

기획보조  장소영 심희진

전시보조  홍유진 박지현 이혜지 김아람 유주연 박수정 허인선 김하영 최찬식 신성민

 

행정지원  김선희 최경아

전시영상  (주) BNT

설계 및 시공  (주) 영디자인

자료대여  청암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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