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그때 그 서울 Seoul : There and then 1945 ~ 1965] 04

드무2 2024. 2. 2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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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서울 Seoul : There and then 1945 ~ 1965] 04

 

 

 

 

 

 

삶의 현장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일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6 · 25전쟁 직후 혼란한 시절 피난민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이곳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과 외국에서 수입된 사치품이 넘쳐나는 서울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였다. 남대문시장은 6 · 25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위기를 극복하고 196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 현대사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장소였다.

임인식은 AP, UPI 같은 통신사를 꿈꾸며 1952년 남대문로 3가에 대한사진통신사를 설립했다. 남대문시장을 자주 오가던 임인식은 자연스럽게 1950 ~ 60년대 남대문과 그 주변 사진을 많이 남겼다.

 

 

 

 

 

 

1 | 남대문로의 출근길 1953년

2 | 남대문로의 아침풍경 1954년

3 | 남대문 지하보도와 전찻길 1950년

4 |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을 환영하는 시민들 1960년

5 | 남대문 부근 상가 화재진압 1956년

6 | 남대문 1953년

 

 

 

남대문로의 출근길 1953년

 

 

 

 

 

 

남대문로의 아침풍경 1954년

 

 

 

남대문 지하보도와 전찻길 1950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을 환영하는 시민들 1960년

 

 

 

 

 

 

남대문 부근 상가 화재진압 1956년

 

 

 

 

 

 

남대문 1953년

 

 

 

 

 

 

 

 

 

1 | 남대문시장 안 풍경 1953년

2 | 생선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3 | 생선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4 | 남대문시장 난전 상인들 1953년

 

 

 

남대문시장 안 풍경 1953년

 

 

 

 

 

 

생선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생선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남대문시장 난전 상인들 1953년

 

 

 

 

 

 

5 | 젓갈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6 | 사탕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7 | 잡화가게 (남대문시장) 1954년

8 | 양곡판매소 (남대문시장) 1953년

9 | 양은그릇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젓갈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사탕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잡화가게 (남대문시장) 1954년

 

 

 

 

 

 

양곡판매소 (남대문시장) 1953년

 

 

 

 

 

 

양은그릇가게 (남대문시장) 1953년

 

 

 

 

 

 

 

 

 

1 | 청계천 판잣집 1954년

2 | 눈 내리는 청계천 수표교 1953년

3 | 청계천 판자촌 1954년

4 | 홍수로 불어난 청계천 광교 1954년

5 | 홍수로 불어난 청계천과 판자촌 1953년

6 | 홍수로 불어난 청계천과 판자촌 1953년

7 | 청계천2가 수표교 1953년

 

 

 

청계천 판잣집 1954년

 

 

 

 

 

 

눈 내리는 청계천 수표교 1953년

 

 

 

 

 

 

청계천 판자촌 1954년

 

 

 

 

 

 

홍수로 불어난 청계천 광교 1954년

 

 

 

 

 

 

홍수로 불어난 청계천과 판자촌 1953년

 

 

 

홍수로 불어난 청계천과 판자촌 1953년

 

 

 

 

 

 

청계천2가 수표교 1953년

 

 

 

 

 

 

 

 

 

생업과 놀이의 공간 한강

한강은 서울 사람들의 생업과 놀이의 공간이었다. 여름철 백사장이 길게 형성된 뚝섬유원지와 우리나라 최초의 수영장이 생겨난 서빙고 일대는 유명한 피서지였다. 지금은 한강 개발로 뚝섬유원지의 백사장이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피서 인파가 몰려 들어 마치 해수욕장을 방불케 했다. 여름철 동대문에서 뚝섬까지 오갔던 전차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겨울철 꽁꽁 언 한강에서 도시민들은 얼음 낚시와 스케이트를 즐겼고 채빙업자들은 얼음을 채취해 판매했다. 한강의 얼음 채취는 '동빙고' 나 '서빙고' 와 같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이어져 왔으나 1959년 이후 위생상의 문제로 금지되어 이후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1 | 한강 뚝섬유원지 1955년

2 | 뚝섬에서 전동차 타려는 인파들 1955년

3 | 뚝섬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 1955년

4 | 뚝섬에서 타이어 튜브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 1955년

5 | 뚝섬유원지에서 뱃놀이하는 시민들 1955년

 

 

 

한강 뚝섬유원지 1955년

 

 

 

뚝섬에서 전동차 타려는 인파들 1955년

 

 

 

 

 

 

뚝섬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 1955년

 

 

 

뚝섬에서 타이어 튜브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들 1955년

 

 

 

 

 

 

뚝섬유원지에서 뱃놀이하는 시민들 1955년

 

 

 

 

 

 

 

 

 

1 | 뚝섬유원지 냉차파는 매점 1958년

2 | 한강 백사장에서 냉차파는 여인 1957년

3 | 뚝섬유원지 야외주막 1955년

 

 

 

뚝섬유원지 냉차파는 매점 1958년

 

 

 

 

 

 

한강 백사장에서 냉차파는 여인 1957년

 

 

 

 

 

 

뚝섬유원지 야외주막 1955년

 

 

 

 

 

 

1 | 뚝섬 채소밭 1955년

2 | 뚝섬유원지 보트 선착장 1952년

3 | 뚝섬유원지 풍경 1955년

4 | 뚝섬에서 일하는 농부들 1958년

5 | 뚝섬 포플러 나무 1955년

 

 

 

뚝섬 채소밭 1955년

 

 

 

 

 

 

뚝섬유원지 보트 선착장 1952년

 

 

 

 

 

 

뚝섬유원지 풍경 1955년

 

 

 

 

 

 

뚝섬에서 일하는 농부들 1958년

 

 

 

뚝섬 포플러 나무 1955년

 

 

 

 

 

 

1 |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 1955년

2 | 미 원조로 복구된 한강인도교 1955년

3 | 한강인도교 아래 뱃놀이 1952년

4 | 한강에서 빨래 말리기 1958년

5 | 한강 (흑석동) 1955년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 1955년

 

 

 

미 원조로 복구된 한강인도교 1955년

 

 

 

한강인도교 아래 뱃놀이 1952년

 

 

 

 

 

 

한강에서 빨래 말리기 1958년

 

 

 

한강 (흑석동) 1955년

 

 

 

 

 

 

1 | 국군의 날 한강 에어쇼 1958년

2 | 한강 수상스키 쇼 1960년

3 | 한강 모래 채취 1953년

4 | 마포 한강 모래 채취 1959년

 

 

 

국군의 날 한강 에어쇼 1958년

 

 

 

한강 수상스키 쇼 1960년

 

 

 

한강 모래 채취 1953년

 

 

 

마포 한강 모래 채취 1959년

 

 

 

 

 

 

1 | 얼음낚시 (한강) 1955년

2 | 복구된 한강인도교 1952년

3 | 한강 얼음채취 후 휴식하는 인부 1954년

4 | 얼음채취 (한강) 1954년

 

 

 

얼음낚시 (한강) 1955년

 

 

 

 

 

 

복구된 한강인도교 1952년

 

 

 

한강 얼음채취 후 휴식하는 인부 1954년

 

 

 

 

 

 

얼음채취 (한강) 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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