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스 슈타커]
▲ 1970년 7월 야노스 슈타커 교수가 강의하고 있는 모습. / 미국 인디애나대
과장없는 완벽 연주··· 학생이 우선이었던 '호랑이 선생님'
헝가리 출신 첼리스트이자 교육자
지옥에 비유될 만큼 수업 무서웠지만
음악가 일화 들려주며 재밌게 가르쳐
오는 7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들이 모이는 성대한 첼로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한국의 양성원, 일본의 쓰쓰미 쓰요시 · 우에노 미치아키, 미국의 게리 호프만 등 신예부터 중견까지 20여 명의 첼리스트들이 모입니다. 이번 축제는 그들의 위대한 스승이자 선배였던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 (1924 ~ 2013)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헝가리 출신 야노스 슈타커는 20세기 대표 첼리스트이자 교육자로, 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큰 공헌을 세운 인물이었죠. 오는 15일은 스승의 날인데요. 오늘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슈타커의 음악과 가르침에 대해 살펴 보려고 합니다.
헝가리 출신 첼로 신동
야노스 슈타커는 1924년 7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어요. 여섯 살 때쯤부터 첼로를 시작한 슈타커는 처음부터 놀라운 실력을 보인 천재였어요. 일곱 살 때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 입학한 뒤 열한 살에 데뷔 리사이틀을 열 정도였죠.
1939년 슈타커는 자신의 경력에 가장 중요한 연주 곡을 만나게 돼요. 바로 헝가리 작곡가 졸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b단조' 였습니다. 열다섯 살 첼리스트 슈타커는 이 곡을 탁월하게 연주해냈고, 슈타커와 이 곡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작곡가 코다이는 뛰어난 소년 슈타커의 능력에 찬사를 표했죠.
학교를 졸업한 슈타커는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연주자로 일하게 되지만,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게 돼요. 유대인이었던 슈타커와 가족들은 큰 고통을 받았고, 그의 두 형이 나치에 의해 살해당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습니다. 1948년 미국으로 이주한 슈타커는 댈러스 심포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카고 심포니 등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일하며 활약했습니다.
그는 1958년부터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 교수로 일하며 제자들을 길러내는 선생님으로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슈타커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 인디애나대 음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이자 학교의 진정한 거인인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고 밝히기도 했어요.
슈타커는 작곡가가 악보에 담아낸 의도를 첼로 선율로 충실하게 구현하고, 완벽에 가까운 기교를 보여주는 연주자였어요. 또 감정이나 기분에 휘둘리지 않는, 과장 없는 단정한 첼로 연주로 유명했죠. 많은 첼리스트들이 몸과 머리를 선율에 맞춰 흔들면서 연주하는 걸 선호했지만, 과장하지 않는 걸 선호했던 슈타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는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 음악까지 모두 다룰 정도로 연주 폭이 넓었어요.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모음곡' 음반으로 1998년 그래미상을 받는 등 평생 150여 장의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은, 무서운 선생님
슈타커는 자신의 교사 경력이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시작됐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어요. 자신보다 두 살 아래 학생에게 연습을 열심히 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돈을 받은 것이 누군가를 가르친 최초의 경험이라고 했죠. 슈타커는 스스로 연주자보다 선생님의 자질을 더 타고났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는 모든 학생에게 엄격한 규칙을 강조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호랑이 선생님' 으로 유명했어요.
선생님 슈타커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첼리스트들 사이에 전해져요.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어요. 그리고 신 앞에서 각자가 스승으로 모신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첼리스트 거장들이자 부드러운 선생님이었던 '레너드 로즈' 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에게 배운 이들은 지옥으로 보내졌고, 슈타커에게 배운 사람만 천국행이 허락됐죠. 신이 말해준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았어요. "슈타커에게 배운 사람은 이미 지옥을 맛보았으니, 이제 천국에 가도 된다!"
물론 슈타커가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은 아니었습니다. 레슨 할 때는 진지했지만, 사적으로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과 온정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이었죠. 그는 학생들이 첼로를 연주할 때, 첼로의 기교를 온전히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레슨은 일대일로 진행했지만 아직 레슨 차례가 아닌 학생들도 다른 학생의 일대일 레슨을 지켜볼 수 있게 했어요. 학생들이 간접적으로도 배울 수 있게 한 것이지요. 레슨받는 학생들에겐 매번 새로운 곡을 가져오게 했는데요. 학생들이 성실하게 첼로를 연습하고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레슨 중간에는 자신과 교류했던 음악가와의 재미난 일화를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의욕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어요. 그에겐 언제나 학생들이 우선이었답니다.
슈타커가 일생을 바쳐 가르쳤던 학생들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연주자로, 교육자로 활동 중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다친 것 때문에 진통제에 의존하는 등 평생 고생했다고 해요. 하지만 첼로를 향한 꾸준한 열정과 노력을 통해 20세기 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주자이자 첼로 스승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야노스 슈타커와 첼로를 찍은 사진. / 미국 인디애대
▲ 1969년 12월 야노스 슈타커 (왼쪽) 교수가 다른 교수들과 함께 연습하고 있는 모습. / 미국 인디애나대
▲ 1980년 11월 야노스 슈타커 (왼쪽) 교수가 다른 교수들과 자선 콘서트를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 미국 인디애나대
김주영 피아니스트 ·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 · 구성 = 오주비 기자 (jubi@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4년 5월 1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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