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클래식 따라잡기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드무2 2025. 1. 19.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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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지난 1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장면이에요. 올해는 이탈리아 출신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무티는 이날 음악회 말미에 이탈리아어로 ‘평화’ ‘형제애’ ‘사랑’ 을 기원했지요. / 빈 필하모닉

 

 

 

86년 전 송년 음악회로 시작··· 120만명 보는 클래식 '히트 상품' 됐죠

 

 

 

빌리 보스콥스키, 지휘와 연주 겸하며

빈 필의 신년 음악회 세계에 알렸죠

 

슈트라우스 일가 곡 중심으로 구성

앙코르 중 지휘자 새해 덕담하기도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이하 빈 필)의 신년 음악회는 이름처럼 매년 정초에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흥겨운 폴카와 왈츠, 행진곡을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계의 '히트 상품' 입니다. 세계 92국에서 120만명이 안방과 극장에서 이 음악회를 시청한다는 통계도 있지요. 한국에서도 복합 상영관에서 실시간 상영합니다.

물론 신년 음악회는 빈 필의 고유한 '발명품' 은 아닙니다. 빈에서 신년 음악회를 여는 전통은 이미 19세기 초부터 존재했지요. 1928 ~ 1933년에는 빈의 유서 깊은 음악당인 무지크페라인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3세 (1866 ~ 1939)의 지휘로 신년 음악회가 열렸고 라디오를 통해서도 중계됐습니다. 오늘날 신년 음악회의 전신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그러다가 1939년 빈 필의 첫 신년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빈 필하모닉 악장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빌리 보스콥스키는 25년간 신년 음악회에서 지휘와 연주를 겸하면서 이 음악회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 유니버설뮤직

 

 

 

25년간 지휘 · 연주 겸한 보스콥스키

 

하지만 빈 필 신년 음악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 가지 슬픈 역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의 암울한 시기인 1939년 12월 31일에 신년 음악회가 탄생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신년' 이 아니라 '송년' 음악회였던 셈입니다. 심지어 당시 음악회의 수익금은 나치의 구호 기금으로 쓰이기도 했지요. 빈 필하모닉은 홈페이지에서 "첫 신년 음악회는 오스트리아와 오케스트라의 역사에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에 열렸다" 고 반성적으로 회고합니다.

첫 신년 음악회의 지휘봉을 잡았던 클레멘스 크라우스 (1893 ~ 1954)는 전후에도 이 음악회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세계에 빈 필의 신년 음악회를 전파한 '일등공신' 을 꼽는다면 단연 이 악단의 악장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빌리 보스콥스키 (1909 ~ 1991)입니다. 보스콥스키는 1939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32년간 악장을 지냈지요. 빈 필의 신년 음악회 역시 1955 ~ 1979년의 사반세기 동안 이끌었습니다. 단상에서 바이올린을 직접 켜면서 왈츠나 폴카를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이 음악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요.

1979년 신년 음악회 직후 그가 건강 악화로 은퇴하면서 이 음악회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당시 빈 필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감독 내정자였던 지휘자 로린 마젤 (1930 ~ 2014)에게 이듬해 신년 음악회의 지휘를 부탁했지요. 그 뒤 마젤은 2005년까지 무려 11차례나 신년 음악회에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1939년 빈 필의 신년 음악회를 처음 지휘했던 클레멘스 크라우스. 첫 음악회는 지금처럼 신년이 아니라 12월 31일 송년 음악회로 열렸습니다. / 유니버설뮤직 · 위키피디아

 

 

 

'누가 지휘 맡는지' 도 관심사죠

 

신년 음악회의 초대 지휘자인 크라우스 (13회)와 보스콥스키 (25회), 마젤 (11회) 이후에는 리카르도 무티 (7회), 주빈 메타 (5회), 마리스 얀손스와 다니엘 바렌보임, 프란츠 벨저 뫼스트 (각 3회) 등이 이 음악회를 지휘했지요. 빈 필의 악장이 신년 음악회의 지휘와 연주를 겸하는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세계적 거장들을 번갈아 초대한 것입니다. 빈 필 신년 음악회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를로스 클라이버 (1930 ~ 2004)는 1989년과 1992년 딱 두 차례 지휘했습니다. 베를린 필을 이끌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08 ~ 1989)은 1987년 딱 한 번 지휘한 것이 전부였지요. 이듬해 빈 필 신년 음악회를 누가 지휘할지도 클래식 음악계의 관심사입니다. 2026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캐나다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겡 (49)이 신년 음악회를 지휘할 예정이지요.

매년 빈 필의 신년 음악회는 작곡가 슈트라우스 일가의 곡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1804 ~ 1849)와 그의 세 아들인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1825 ~ 1899), 요제프 슈트라우스 (1827 ~ 1870),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1835 ~ 1916) 형제가 이 음악회의 주인공들인 셈입니다. 하지만 해마다 연주곡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도 숨은 묘미입니다.

 

 

 

 ‘왈츠의 왕’ 으로 불리는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 빈 필의 신년 음악회도 슈트라우스 가족들이 작곡한 춤곡과 행진곡들을 연주합니다. / 위키피디아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 조르주 프레트르 (1924 ~ 2017)가 지휘했던 2008년 신년 음악회 때는 프랑스와 연관된 곡들이 대거 포함되었지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프랑스 나폴레옹 3세에게 헌정한 '나폴레옹 행진곡', 프랑스 국가가 춤곡 버전으로 말미에 살짝 녹아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파리 왈츠' 등이 대표적입니다. 2023년 신년 음악회에서 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는 1939년 이후 연주된 적이 없었던 14곡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지요. 벨저 뫼스트는 당시 본지 인터뷰에서 "수년 전 요한 슈트라우스 가족이 남긴 악보 전집을 구입했는데, 팬데믹 기간에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보물들' 을 발견했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여성 작곡가 작품 연주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무티가 지휘한 올해는 이 음악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했습니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여성 작곡가 콘스탄체 가이거 (1835 ~ 1890)의 '페르디난트 왈츠' 였지요. 가이거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던 '음악 영재'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왈츠 역시 12세에 썼지요.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도 그녀의 곡을 지휘할 만큼 주목받았지만, 가이거는 1862년 귀족과 결혼한 뒤 사실상 음악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최근 가이거의 삶과 음악을 조명한 독일어 전기가 뒤늦게 출간되면서 재평가받았고, 결국 신년 음악회에서도 연주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년 음악회 연주곡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자유곡' 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지정곡' 도 두 곡 있습니다. 마지막에 앙코르로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입니다.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가 시작되면 관객들이 박수로 연주를 중단시키고, 지휘자가 돌아서서 신년 덕담을 건네는 것도 관습입니다. 올해 무티는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평화' '형제애' '사랑' 을 기원했지요.

이어서 '라데츠키 행진곡' 이 울려 퍼지면 지휘자는 객석을 향해 등 돌리며 손짓을 보내고, 모든 관객이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 새해의 시작을 알립니다. 어쩌면 이런 전통 덕분에 신년 음악회는 지금도 지구촌에서 사랑받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 · 구성 = 윤상진 기자 (grey@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5년 1월 6일 자]

 

 

 

https://youtu.be/8ZfQjsp99Gk

 

 

 

https://youtu.be/M-S0NFCDu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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