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들/2022년

2022-018 지리의 힘

드무2 2022. 12. 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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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8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 | 김미선 옮김

2020, 사이

 

 

월곶도서관

SI041259

 

 

340.98

마53ㅈ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팀 마샬 Tim Marshall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터키 특파원과 외교부 출입 기자를 지낸 저자는 영국 스카이 뉴스Sky News 외교 부문 에디터이자 BBC 기자로도 일하는 등 25년 이상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그는 중동 지역을 비롯해 전 세계 각 지역의 갈등과 분쟁, 정치, 종파, 민족, 역사, 문화 등을 꾸준히 취재해 왔다. 현재는 《더 타임스》, 《가디언》 등에 국제 이슈 관련 글을 쓰고 있으며 그의 블로그 Foreign Matters는 오웰 상(Orwell prize, 우수 정치 저술에 주는 상)의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는 지리를 알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대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전 세계를 10개의 지역으로 나눠 지리에서 비롯된 경제 전쟁, 세계의 분열, 영유권 분쟁, 빈부 격차 등에 대해 살펴본다.

 

■ 4천 년 만에 대륙의 나라에서 해양 강국을 꿈꾸는, 중국

■ 지리적 축복과 전략적 영토 구입으로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

■ 이념적 분열과 지리적 분열이 함께 감지되고 있는, 서유럽

■ 가장 넓은 나라지만 지리적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는, 러시아

■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강대국들의 경유지가 된, 한국

■ 최대 고민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는, 일본

■ 내륙이 텅 빈 거대한 지리의 감옥에 갇힌, 라틴 아메리카

■ 유럽만이 만들어 놓은 지정학의 피해자가 된, 아프리카

■ 인위적인 국경선이 분쟁의 씨앗이 되는, 중동

■ 지리적으로 출발부터 서로 달랐던, 인도와 파키스탄

■ 21세기 경제 및 외교의 각축장이 된, 북극

 

여기에 저자의 풍부한 취재 경험이 더해져 과거, 현재, 미래를 주시하면서 세계사를 결정한 주요 요소 중 하나인 지리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지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계 경제를 어떻게 좌우하는지도 보여준다. 바햐흐로 지경학geoeconomics, 지정학geopolitics에서 <지리geo>를 들여다봐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https://youtu.be/2zx2XDg-arE

 

 

 

서문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스로를 일컬어 러시아 정교회의 열렬한 후원자이면서 신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신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우크라이나에 산맥을 펼쳐두지 않으셨나이까?"

만약 신이 우크라이나에 산악지대를 펼쳐두었다면 건너편 세력들이 북유럽평원North European Plain이라는 드넓은 평지를 넘어 그처럼 꾸준히 러시아 땅을 침략하고픈 유혹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푸틴이라도 달리 선택할 게 없다. 서쪽으로 펼쳐진 평지를 관리하는 정도밖에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전쟁, 권력, 정치는 물론이고 오늘날 거의 모든 지역에 사는 인간이 거둔 사회적 발전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이뤄졌다. 물론 현대의 기술이 정신적,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는 줄여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게 있다. 지구라는 행성의 70억 인구에게 주어진 선택들은 늘 우리를 제약하는 강과 산, 사막과 호수, 그리고 바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고, 자녀를 길러내는 땅이 중요하다.

이 가운데 다른 것보다 유독 중요한 지리적 요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막이라고 산악지대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강도 정글만큼이나 중요하다. 지구상의 서로 다른 지역의 서로 다른 지리적 특성들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르는 지배적인 요소들에 포함된다.

넓게 말하면,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산맥 같은 천연의 장애물이나 하천망의 연결 같은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기후, 인구 통계, 문화지역,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정치, 군사 전략부터 시작해서 언어, 교역, 종교 등을 포괄하는 인류의 사회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명의 여러 국면에 중대한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

 

 

 

한 나라나 국제 정세에는 개개의 지도자들의 성향과 이념, 기술 말고도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 영향은 일시적이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어도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낸 물리적 장애물, 우기에서 비롯된 난관들, 천연자원이나 식량 자원에 대한 제한적인 접근 등은 피할 수가 없다. 결국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지리가 최대의 장애물이며 따라서 고립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면, 유럽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서 근대 문화를 생성하게 한 평야지대와 일정한 크기의 선박들이 항행할 수 있는 가항하천들의 가치가 특히 돋보이는 곳이다.

 

 

 

발전의 차이는 <배를 띄울 수 있는 강>들의 유무에서 시작되었다. 아프리카에는 큰 강들이 많지만 주로 고지대에서 낙하하면서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게다가 서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이런 조건은 실제로 무언가를 운반하는 교역로로 이용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반면 유럽의 경우는 라인 강, 다뉴브 강 등이 평지에서 서로 연결되면서 천연 국경 역할을 했고 쉽게 배를 띄울 수 있는 조건은 이 지역 교역 시스템의 발전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남유럽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서유럽이 누리는 지리적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유럽에 불어닥친 재정 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북쪽의 유럽과 남쪽의 유럽 사이에 이념적 분열과 함께 <지리적 분열>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은 그 위치와 지리적 천연 장벽이 없다는 이유로 강대국들의 <경유지 역할>을 해왔다. 만약 다른 나라가 북쪽에서 침략을 해온다 해도 일단 압록강을 건넌 뒤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천연 장벽이 거의 없다. 반대로 해상에서 육로로 진입한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본은 중국 때문에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고 있으며 최근에는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중국,

4천 년 만에 대륙의 나라에서

해양 강국을 꿈꾸다


 

 

 

 

 

 

 

 

 

 

현실적인 국경이 티베트-인도 국경이고 보면 중국이 늘 이 지역을 통제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중국이 티베트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 언제고 인도가 나설 것이다. 인도가 티베트고원의 통제권을 얻으면 중국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전초 기지를 확보하는 셈이 되는데 이는 곧 중국의 주요 강인 황허, 양쯔, 그리고 메콩 강의 수원이 있는 티베트의 통제권을 얻는 거나 다름없다. 티베트를 <중국의 급수탑>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에 버금가는 물을 사용하지만 인구는 다섯 배나 많은 중국으로서는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리처드 기어가 됐든 오바마 대통령이 됐든, 서구인들이 티베트 문제를 거론하면 중국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위험하다거나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것도 아닌데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중국인들은 티베트 문제를 인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기보다는 <지정학적 안보>의 틀에서 본다. 중국인들은 서구인들이 중국의 안보를 침해하려 한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중국의 안보가 저해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설사 티베트에서 한족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난다고 해도 인구학과 지정학이 티베트 독립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신장에 대한 베이징의 대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둘째 그 지역에 돈을 쏟아 붓기, 셋째 꾸준히 한족 노동자들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독립운동의 불길을 방관하기에는 중국에게 신장 지구는 전략적으로 몹시 중요한 곳이다. 이곳이 8개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그래서 중국 심장부의 완충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다량의 원유가 매장돼 있을 뿐 아니라 중국 핵무기 실험장도 이곳에 있다.

 

 

 

중국 선박들은 태평양을 향하든 인도양을 향하든, 남중국해를 나서는 순간부터 여전히 난관에 직면한다. 하지만 중국에게 가스와 원유를 수송하는 이 물길이 없다면 중국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중국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항로를 지켜야 한다. 자국의 상품들을 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그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자재, 즉 원유, 가스, 귀금속 등을 들여오기 위해서도 말이다. 따라서 봉쇄당하는 경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경우 외교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점점 몸집을 불려가는 자국의 해군력 또한 다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선의 보장책은 뭐니 뭐니 해도 파이프라인, 도로, 그리고 항구들이다.

 

 

 

전 세계와 상대하는 중국은 인권 문제로 인해 주눅이 들거나 외교적, 경제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 중국은 확고한 국경과 중국 본토와 1천 킬로미터 떨어진 제1열도선이라는 끈을 꼭 쥔 채 당당하게 세계를 누비고 있다. 만약 일본이나 미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만 있다면 중국에게 유일한 위험은 중국 자신밖에 없다.

중국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14억 가지는 된다. 또한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없는 이유도 14억 가지는 된다. 1930년대에 미국에 몰아친 대공황 같은 사태가 중국에서도 발생한다면 중국은 수십 년은 후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 경제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지리적 축복과 전략적 영토 구입으로

세계 최강국이 되다


 

 

 

 

 

 

미국인은 유럽인과는 달리 합중국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이 현상은 미국의 지리적 특성과 통합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는 골치 아픈 주인이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해결책은 전쟁이 아니었다.

1803년, 미합중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사들였다. 이 지역은 멕시코 만에서 시작해서 북서쪽으로 로키 산맥의 미시시피 강 지류들의 상류까지 뻗어 있다. 이 땅의 면적은 오늘날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그리고 통일 독일을 합친 넓이와 맞먹는다. 신생 미합중국은 이 땅을 흐르는 미시시피 강의 유역을 기반으로 번영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1천5백만 달러짜리 서명 하나로 1803년에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구입하여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이는 곧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내륙수로 수송권>을 확보한 셈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는 이렇게 썼다.

"미합중국이 투자 대비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은 일은 이제껏 없었다."

 

 

 

루이지애나 구입은 미국 입장에서는 심장부를 얻은 격이었다. 그런데 1819년에 맺은 대륙횡단조약도 거의 이에 버금가는 가치를 안겼다. 스페인은 미국이 현재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의 경계인 북위 42도 선 위인 극서부 지역에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했다. 반면 스페인은 그 아래인 미국 영토의 서쪽을 지배한다는 계약 내용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미합중국은 <태평양>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즈음 대다수 미국인들은 1819년에 플로리다를 얻은 것을 가장 큰 승리로 여겼지만 당시 국무장관인 존 퀸시 애덤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결정적으로 태평양 방향의 경계선을 획득한 것이 우리 역사에 위대한 시대를 열게 한다."

 

 

 

1835년부터 이듬해까지 벌어진 텍사스 혁명으로 백인 정착민들이 멕시코인들을 몰아냈지만 전세는 대접전이었다. 새 정착민들이 패했고 멕시코군이 뉴올리언스를 향해 진군해서 미시시피 강의 남단을 지배할 수 있는 형국이 돼버렸다.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됐다면 어땠을까? 이것이야말로 근대 역사상 가장 엄청난 가정의 하나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의 돈과 무기, 사상의 수혜를 받은 텍사스가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텍사스는 1845년 미합중국에 귀속되었고 1846년부터 2년간 벌어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는 미국과 힘을 합쳐 싸웠다. 두 연합군은 남쪽의 이웃을 제압했고 멕시코는 결국 리오그란데 강의 남쪽 제방 모래밭에서 끝나는 영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867년,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다. 이 일은 당시 이 거래를 성사시킨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의 이름을 붙여 <슈어드의 미친 짓>이라고까지 조롱을 받았다. 그는 총 720만 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샀는데 1에이커당 2센트를 쳐준 셈이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눈만 한 보따리 산 꼴이라고 비아냥댔지만 1896년 이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그 얘기는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더 흐른 뒤 이번에는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군대를 파견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은 물론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다.

 

 

 

미국은 신속히 움직였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미국은 쿠바와 플로리다 해협을 확보함으로써 카리브 해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다.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하와이의 퍼시픽 아일랜드를 합병해서 자국의 서부 해안으로의 안전한 접근을 도모했다. 또한 1903년에는 파나마 운하의 배타적인 권한을 보장받는 조약을 체결했다. 무역 붐이 일어났다.

 

 

 

2013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25퍼센트가 이민을 갈 경우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미국을 꼽았다.

 

 

 

 


서유럽,

이념적 분열과 지리적 분열이

함께 감지되다


 

 

 

 

 

 

그렇다면 왜 이 지역에 유독 많은 민족 국가들이 존재하는가? 유럽 전체를 놓고 볼 때 눈에 띄게 많은 산맥과 강, 계곡들을 보면 이내 납득이 간다. 미국은 하나의 지재 언어와 문화 덕분에 발전이 빠를 수밖에 없었으며 거기에 적극적으로 서쪽으로 진출한 덕분에 거대 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기본적으로 천 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성장해온데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리적, 언어적으로 분리돼 있다.

 

 

 

베오그라드에서 다뉴브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사바 강을 제외하면 유럽의 주요 강들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왜 유럽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국가들이 많은지 이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대다수 강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탓에 어떤 면에선 이 하천들이 천연 국경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저마다 권리에 따라 경제적 영향권을 형성했다. 이런 양상은 각 하천 유역마다 적어도 하나의 주요 도시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여기서 성장한 일부 도시가 수도들이 되었다.

 

 

 

다뉴브 연안은 유럽 땅에 지리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평지에서 서로 연결된 다뉴브 강의 지류들은 천연 국경 역할을 했고, 쉽게 항해할 수 있는 연결망은 교역 시스템의 발전을 부추겼다.

 

 

 

그리스의 처지는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훨씬 악화되고 있다. 아테나 여신이 유럽과 교역이 이루어지는 땅과 단절된 반도의 끄트머리에 이 나라를 놓아둔 탓에 해상 교역로로 진출하려면 에게 해에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건너편에 잠재적인 거대 적수인 터키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터키와 몇 차례 전쟁을 치렀고 이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유로화를 현재까지도 어마어마하게 방위비에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유럽을 강타한 재정 위기에 이어 유로존 내에서 <이념적 균열>이 진행되는 지금, 유럽 역사에 깊이 뿌리 내린 분열은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2년 그리스를 디폴트 위기에서 구하고 유로화 사용국에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유럽에서는 구제금융이 실시되었다. 그리스의 긴축정책이 결정되고 그 시행이 요구되었을 때 이내 <지리적 분열>이 가시화됐다. 기증자와 요구자는 북쪽 국가들이었고, 수령인과 탄원자는 남쪽 국가들이었다.

 

 

 

비스마르크가 남긴 유명한 말 중에 "큰 전쟁은 발칸 반도에서 벌어지는 바보 같은 짓거리로 촉발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말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이 지역은 지금 유럽연합과 나토, 터키, 러시아가 너도나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경쟁을 벌이는 <경제적, 외교적 각축장>이 되었다. 슬로베니아를 비롯해 알바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는 나토와 유럽연합 체제 안에 편입되는 길을 선택했다. 다만 나토 회원국인 알바니아만이 아직 유럽연합 멤버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 논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모스크바는 스웨덴이든 핀란드든 어느 쪽이든 나토에 가입할 경우 응분이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로존 국가들은 그리스가 강조하듯 <아플 때나 건강할 때를> 막론하는 경제적 혼인을 맺었지만, 정작 2008년 위기가 터지자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구제금융을 지원해야 할 상황에 처하면서 부자 국가들 내부에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배우자들은 아직도 서로 으르렁대며 상대방에게 접시를 던지고 있다.

 

 

 

영국을 유럽연합의 바깥쪽으로 자꾸 내모는 두 가지 쟁점은 서로 연결돼 있다. 그것은 바로 <주권>과 <이민자 문제>다. 일부 유럽 통합 회의론자들의 지지를 받는 반反유럽연합 정서는 유럽연합이 정하는 엄청난 분량의 법률과 그 내용에 반발한다. 하지만 회원국들 간의 합의의 일부이므로 영국도 이를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언론은 언론대로 유럽인권보호조약 때문에 강제로 추방할 수 없는 외국인들이 영국에서 저지른 심각한 범죄들을 대서특필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몰려오는 경제적 이민과 난민의 물결 속에서 영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이민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반유럽연합 정서 또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이 더 많은 이민자들을 영국으로 보내려 한다고 믿고 있다.

 

 

 

지리는 인류가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그 법칙들이 우리를 이길 것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러시아,

가장 넓은 나라지만

지리에게 복수의 일격을 당하다


 

 

 

 

 

 

유럽 맹주의 자격이 무엇이든 간에 러시아가 아시아의 맹주가 아닌 이유는 꽤 있다. 먼저 이 나라 영토의 75퍼센트는 아시아 지역에 속하지만 그곳에는 인구의 22퍼센트만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상당량의 광물 자원과 원유, 가스가 매장된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보물상자임이 분명하지만 일년에 수개월은 얼어붙어 있고, 타이가(우랄 산맥에서 오호츠크 해에 이르는 침엽수 삼림지대)는 광활한 삼림, 부족한 경작지, 드넓은 습지대가 펼쳐져 있는 혹독한 땅이다. 또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철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바이칼 아무르 철도 단 두 개뿐이다. 게다가 북과 남을 잇는 운송로는 전무하다시피 하니 러시아로서는 현대의 몽골이나 남쪽인 중국 내륙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나 물자 보급선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면 콘스탄티노플과 인도로 가까이 접근하라. 누가 되든 그곳을 통치하는 자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꾸준히 싸움을 도발하라. 터키뿐 아니라 페르시아에서도! 할 수 있는 한 페르시아 만 멀리 침투할 것이며, 할 수 있는 한 인도의 안까지도 깊숙이 들어가라."

 

ㅡ 1725년 표트르 1세가 후손들에게 남긴 충고

 

 

 

<따뜻한 물이 흐르는 해상 교통로>를 여는 숙원은 2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러시아가 완전히 이루지 못한, 그래서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열망이다. 종종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힘겨웠던 경험을 두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겪은 경험에 빗대어 아프가니스탄을 <러시아의 베트남>이라고들 하는데 실은 그 이상이었다. 칸다하르 평원과 힌두쿠시 산맥은 아프가니스탄이야말로 제국의 무덤이라는 법칙을 증명했다.

대양으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부동항의 부재>는 늘 러시아에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북유럽평원만큼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러시아는 지리적 약점을 지녔지만 그나마 석유와 천연가스 덕분에 더 약한 나라로의 추락만은 모면했다.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 반도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에서 90퍼센트 이상이 찬성을 함에 따라 러시아에의 합병을 결정했다. 또한 러시아에게는 무엇보다 크림 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항을 손에 넣는 것이 절실했다.

러시아에게 세바스토폴은 단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부동항이다.

 

 

 

우크라이나가 벨기에나 미국의 메릴랜드에 버금가는 영토를 잃었는데도 아무도 동와주려 달려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그 이웃 국가들은 이른바 지리적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나토에 속해 있지 않다면 모스크바가 가까울 것이요, 워싱턴 D. C.는 한참 멀다는 것이다. 러시아에게 이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들은 크림 반도를 잃었을 때 대처할 방도가 없지만, 서방에는 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에 대해 제한적인 제재만을 가했다. 이 제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들이 겨울용 난방 연료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열거나 닫는 권한은 크렘린에 있다.

정치적 무기로써 에너지는 시간을 벌게 해주며, 러시아 민족이라는 개념은 향후 러시아가 저지르는 그 어떠한 행동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다.

 

 

 

"유럽 혹은 북미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나토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은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ㅡ 나토의 창립헌장 5조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여러 국가들은 이제 유럽에 손짓한다. 하지만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처럼 친러시아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몇몇 지역들은 잠재적으로 분쟁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 단계에서 핵무기는 제쳐 두고 러시아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라면 육군이나 공군이 아니라 바로 <가스와 석유>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공급 국가인 미국에 이어 제2의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는 당연히 이를 국익 증진을 위한 권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사이가 좋으면 좋을수록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일례로 핀란드는 발트해 국가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들여온다.

 

 

 

유럽 내의 가스와 원유 수요의 평균 25퍼센트를 러시아가 공급하는 데 대개는 러시아와 친한 나라들의 의존도가 더 높다. 이는 곧 그 나라의 대외정책 선택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핀란드, 에스토니아는 가스 수요의 100퍼센트를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체코공화국, 불가리아, 리투아니아는 80퍼센트, 그리스,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60퍼센트에 이른다.

 

 

 

독일의 경우도 대략 50퍼센트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의존도가 13퍼센트에 불과한 데다가 9개월치 비축량까지 포함하여 자체 생산시설을 확보한 영국과 비교해 보면 독일 정치인들이 크렘린의 공세에도 왜 비판의 수위를 점점 낮추어 가는지 부분적으로나마 이해가 간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거대 공룡들은 경쟁 관계이긴 하나 다양한 차원에서 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벗어나려는 유럽 국가들의 야심을 모를 바 없는 모스크바는 그 대안으로 중국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강대국의 경유지가 되다.

 

일본,

최대 고민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다.


 

 

 

 

 

 

남한의 큰 걱정은 서울과 수도권이 휴전선과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서울은 위치상으로 북한의 기습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의 평양은 휴전선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부분적으로 산악지대의 보호를 받는다.

 

 

 


라틴 아메리카,

내륙이 텅 빈,

거대한 지리의 감옥에 갇히다


 

 

 

 

 

 

이러한 다양한 인구 구성의 기원은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맺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조약이야말로 유럽 식민주의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ㅡ 물론 이 경우에는 아예 몰랐지만 ㅡ 머나먼 곳에 임의로 선을 그은 초기 사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대양을 탐험하려고 서쪽을 향해 출발했고 유럽의 두 거대 해양 세력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밖에서 땅을 발견하는 경우 서로 나누기로 약속했다. 여기에 교황도 동의했다. 나머지는 이 땅에 살았던 대다수 원주민들에게는 대단히 불행한 이야기다. 현재 남아메리카라 부르는 지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1장에서 봤듯이 중국은 초강대국이 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자국의 상품과 해군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되 지속적으로 열려 있는 해상로가 필요하다. 파나마 운하는 중립적인 통로일지는 모르나 따지고 보면 결국은 미국의 호의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니카라과에다 운하를 직접 건설해 보는게 어떨까? 한창 커가는 초강대국이 5백억 달러쯤 쓴다고 해서 무슨 대수겠는가.

니카라과 대운하 사업에 자금을 댄 인물은 왕 징이라는 홍콩 사업가인데 전기통신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건설 분야 경험은 없는 이 인물이 인류 역사상 가장 원대한 건설 사업의 지휘를 맡은 것이다. 왕 징은 중국 정부가 이 사업에 대놓고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업 문화나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정부가 개입하는 중국의 특성으로 볼 때 이는 흔치 않은 경우다.(2020년 완공예정)

 

 

 

중앙아메리카에서 중국 투자를 받은 지역에서는 많은 변화가 보인다. 니카라과의 대운하 개발이 그 한 예다.

 

 

 

건설 사업에 투자하는 것만큼이나 중국은 라틴 아메리카 정부들에도 막대한 양의 돈을 빌려주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가 주요 고객이다. 대신 중국은 대만을 포함한 영토 분쟁의 경우 유엔에서 이들 나라들이 자기편을 들어주길 기대할 것이다.

중국은 또한 사들이고도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과는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 무역 협상을 선호했으면서도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과는 개별적으로 무역 협정을 맺고 있다. 중국 역시 그렇게 하지만 적어도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 지역 국가들이 미국은 물론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 줄여 나가게 하고 있다. 그 한 예가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서 최대 교역 상대국의 지위를 차지한 브라질 시장이다. 그리고 이런 판세는 조만간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목격될 것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행위는 전 세계에 장기적으로 생태학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단기적으로도 브라질에게는 골칫거리다. 정부는 화전火田 농업 종사자들에게 정글의 나무들을 베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작물을 재배할 수 없을 정도로 토질이 나빠진다. 그러면 농부들은 더 많은 삼림을 벨 수 밖에 없는데 일단 파괴된 삼림은 다시 자라지 못한다. 한마디로 이는 기후와 토양이 한꺼번에 농업 발전을 가로막는 상황이다.

 

 

 

100년 전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도 앞섰다. 그러나 산업 다각화의 실패, 계층화되고 불공정한 사회, 하술한 교육제도, 연 이은 쿠데타, 게다가 지난 30여 년간의 민주 정부 시대에 주먹구구식으로 남발된 경제 정책 등으로 아르헨티나의 위상은 급속히 추락하고 말았다.

 

 

 


아프리카,

유럽인이 만들어 놓은

지정학의 피해자가 되다


 

 

 

 

 

 

아프리카의 해안선? 정말로, 정말로 아름다운 해안이긴 하지만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천연 항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들은? 강 또한 놀랍도록 멋지지만 실제로 대다수는 무언가를 운송하는 데는 하등의 쓸모가 없다. 이 점을 감안한다 해도 거의 10킬로미터마다 나타나는 폭포는 또 어떤가. 그런데 문제는 아프리카가 정치적, 기술적으로 서유럽이나 북미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긴 목록에서 이제 겨우 두 개만 꼽았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일찍 출발했지만 다른 것을 발전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 오늘날까지도 과거에 붙들려 있는 실정이다. 더운 기후가 초래한 말라리아와 황열병 같은 악성 질병들은 밀집된 생활환경과 열악한 보건시설로 인해 현재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런던, 파리, 브뤼셀, 리스본 같은 대제국의 수도로 돌아온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대략적인 등고선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놓고 그 위에 제멋대로 선(국경선)들을 그려 넣었다. 아니, 그곳에 대한 보다 공격적인 접근을 위해 선들을 그곳에 놓아두었다고 해야겠다. 그들은 이 선들 사이에 중앙콩고라든지 오트볼타 같은 지명을 적어 넣고 이곳을 나라들이라 불렀다. 이 선들에는 정작 그 선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가 느끼는 것, 또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고자 했던 것들보다는 강대국의 탐험가들, 군대, 사업가들이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갔는지가 담겼을 뿐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들이 만들어 놓은 지정학과 자연이 남겨준 발전을 가로막는 천연 장벽에 얼마간은 발목이 잡혀 있는 형편이다.

 

 

 

수단, 소말리아, 케냐,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말리 말고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민족 갈등은 유럽인의 지리에 대한 생각이 아프리카의 인구학적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늘 분쟁이 있어 왔다. 예컨대 줄루족과 호사족은 유럽인들을 처음 구경하기 훨씬 이전부터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주의는 이 차이를 인위적인 틀 안에서 해결하도록 강요했다. 다시 말해 민족 국가라는 유럽인의 개념으로 그들을 무조건 한 국가의 국민으로 몰아놓으려 한 것이다. 오늘날 목격되는 내전의 양상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민족들을 한 국가 안에서 억지로 단일 민족으로 묶으려던 식민주의자들과 그들이 쫓겨난 뒤에 새로 부상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한 신진 지배 세력, 그리고 그에 수반된 폭력의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이집트는 미국의 군사 원조 덕에 아랍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방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집트의 군사력은 사막과 바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 조약의 제약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시나이 반도에서 툭하면 터지는 이슬람 봉기를 상대하고, 매일 전 세계 교역량의 8퍼센트가 드나드는 수에즈 운하를 지키면서 8천4백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날마다 먹여 살리느라 고군분투하는 것만으로도 이집트는 여전히 뉴스거리임에 분명하다. 전 세계 석유의 2.5퍼센트가 매일 이 수에즈 운하 길을 통과한다. 혹시라도 이 운하가 폐쇄된다면 유럽은 15일, 미국은 10일의 수송 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는 청나일Blue Nile 강과 백나일White Nile 강은 누비아 사막을 거쳐 이집트 내부를 흐르다가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에서 만난다. 중요한 것은 물의 대부분이 청나일 강에서 흘러온다는 점이다.

고지대라는 위치와 더불어 고지대에서 내리는 비를 이용해서 20개가 넘는 댐을 보유하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때로 <아프리카의 급수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1년 에티오피아 정부는 수단 국경과 인접한 청나일 강에 중국과 합작으로 거대한 수력 발전용 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2020년에 이르면 완공될 예정인데, 일단 이 댐은 전기를 생산하는 용도로 쓰일 예정이어서 이집트로 흐르는 물이 끊길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만 보면 댐에 일년치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서 댐 건설이 완료되고 에티오피아가 자국민만 쓸 수 있는 물을 보유하려 한다면 이집트로 흘러가는 수량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 또한 도사리고 있다.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여타의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훨씬 빠른 발전을 이룬 데는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양 대양으로 진출하기 수월한 위치도 한몫했다. 또 금과 은, 석탄의 매장량이 풍부하여 대규모 식량 생산이 가능한 기후와 토양을 지닌 덕도 있다.

대륙의 맨 끝단에 위치한데다 연안 평지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바람에 모기가 번식하기 힘든 조건이 돼준 것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말라리아의 저주에서 고통받지 않는 몇 안 되는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된 이유였다. 이 조건 덕분에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말라리아가 맹위를 떨치는 열대 지역보다 훨씬 멀리 빠르게 내륙 깊숙한 곳에 정착해 소규모 산업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산업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의 주요 부문들을 성장시켰다.

 

 

 


중동,

인위적인 국경선이

분쟁의 씨앗이 되다


 

 

 

 

 

 

무엇의 중간Middle인가? 어디로부터의 동쪽East인가? 이 명칭은 유럽인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말하자면 유럽인들 자신이 결정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지역을 바라보는 그들 자신의 시각인 것이다. 그들은 잉크로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선들은 유례없이 인위적인 국경선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그으려는 시도가 피를 불러오고 있다.

 

 

 

사이크스ㅡ피코 협정

1916년 영국은 이라크와 요르단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세력 범위로 하고, 러시아에게는 터키 동부를 주고, 팔레스타인은 공동 관리하기로 맺은 비밀 협정을 말한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 민족 지도자 후세인에게 독립 약속을 한 뒤였으므로 이중 외교, 비밀 외교라 하여 1917년 벨푸어 선언과 함께 훗날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비록 정식으로 인정된 국가는 아니지만 쿠르드 지역으로 구분될 만한 곳이 있다. 그들이 국경을 넘어 독립 국가를 세우려 하는 이곳은 잠재적인 분쟁 발생 지역이다.

 

 

 

쿠르디스탄(Kurdistan, 쿠르드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터키 남동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접경지대를 총칭)은 주권을 인정받는 국가는 아니지만 그에 걸맞은 특성들을 제법 갖고 있다. 그리고 현재 중동에서 진행되는 양상은 국제법의 틀 안에서 쿠르디스탄에게 정식 명칭을 부여할 가능성을 더해주고 있다. 단,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쿠르디스탄은 과연 어떤 형태를 띨 것인가? 또한 쿠르드족 거주지가 신생 국가의 일부로 편입되고 지중해로 진출해서 쿠르디스탄을 탄생시키려고 한다면 인접국들인 시리아, 터키, 이란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IS 수중에 있던 티크리트 탈환 전투에서 미 공군은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제한된 공습만을 행하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정부군이 공격을 지휘하고 미국은 이를 보조하는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ㅡ 여기서 미국의 곤란한 입장이 드러난다. 이라크 시아파 정부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도움으로 수니파 무장 세력을 공격하는 구조가 되면 IS와의 전쟁이 종파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고 그로 인해 IS로 수니파가 결집될 것을 미국은 우려한다. IS가 급속도로 세를 불린 것도 수니파 주민들이 시아파 정부에 등을 돌린 탓도 크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국의 위임 통치가 시작되면서 당시는 소수에 불과했던 유대교도들에 가세하는 유대인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유럽의 포그롬(pogrom,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제정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벌어진 유대인 등에 대한 조직적 약탈과 학살)으로 촉발된 유대인의 이주가 점점 늘어나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겨 유대인들의 이주는 물론 아랍인들로부터 땅을 사들이는 것도 허락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고 난 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몰려왔다. 그러자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긴장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골치가 아파진 영국은 1948년 이 문제를 유엔에 넘겨버렸다. 결국 이 지역을 두 개의 나라로 분리하는 투표가 실시됐다. 하지만 유대인은 찬성했지만 아랍인은 반대했다. 그 결과는 곧장 전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처음으로 그 땅을 탈출했고 유대인 난민의 파도가 중동을 넘어 이 지역으로 밀려들었다.

 

 

 

1967년의 6일 전쟁 이후 골란 고원, 요르단 강 서안, 그리고 가자 지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란이 갖고 있는 비장의 카드인데, 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판매량에 따라 날마다 전 세계 석유 수요의 약 20퍼센트가 통과하는 길목을 봉쇄한다는 뜻이다. 전략적으로 지구상에서 손꼽는 요충지인 이 해협의 가장 짧은 폭은 겨우 34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몇 달간만 봉쇄된다 해도 연쇄적으로 불러올 석유 가격 상승에 산업국들은 패닉에 빠질 것이다.

 

 

 

미국의 주도하에 개최된 이란 핵협상은 2015년 여름에 타결됐지만 페르시아 만 국가들은 이란의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보지 않는다. 서구 언론들은 이 협상을 두고 이스라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관심을 두지만 정작 불만이 역력한 건 아랍전역의 매체들이었다.

 

ㅡ 이란의 완전한 핵 포기가 아니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을 벌어준다고 보는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핵협상이 타결됨으로써 이란을 옥죄고 있던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가뜩이나 현재 중동에서 부상하고 있는 이란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터키 국토의 5퍼센트 미만만이 유럽에 속해 있다. 대다수 지리학자들은 터키 국토의 아주 작은 면적, 즉 보스포루스 해협의 서쪽만을 유럽으로 보고 나머지, 즉 보스포루스의 남쪽과 남동쪽은 넓은 의미에서 중동으로 보고 있다.

이것도 터키가 이제껏 유럽연합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그 외 다른 이유들로는 인권 문제, 특히 쿠르드족과의 문제가 한편에 있고 다른 쪽에는 경제 문제가 있다. 유럽은 터키가 유럽연합 회원국이 되는 순간 경제적 불평등 상태에 놓여 있는 7천5백만 명의 터키 인구가 유럽 국가들로 우르르 밀려들어올 것을 두려워한다. 물론 이것 말고도 유럽연합 내에서 대놓고 얘기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터키가 인구 98퍼센트가 무슬림인 대형 무슬림 국가라는 것이다.

 

 

 


인도,

지리적으로 출발부터 유리했다

파키스탄,

말썽 많은 아프간과의 국경을 물려받다


 

 

 

 

 

 

 

인도 아대륙 Indian subcontinent

현재 남아시아에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나라가 위치한 지역을 말하며, 지리적으로 북동쪽은 히말라야 산맥, 서쪽은 아라비아 해, 동쪽은 벵골 만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말한다.

 

 

 

그렇다면 파키스탄은 무엇을 얻었을까? 분명한 건 인도보다 훨씬 적게 얻었다는 것이다. 우선 파키스탄은 인도의 국경 중 가장 말썽 많던 아프가니스탄과 마주하는 북서 국경을 물려받았다.

 

파키스탄은 지리적, 경제적, 인구학적,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인도보다 한참 뒤처진다. 게다가 국가 정체성 또한 인도만큼 강하지 않다. 반면 인도는 넓은 면적과 문화적 다양성, 각종 분리주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정체성>이라는 통합된 개념으로 탄탄한 세속적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독재로 점철된 역사를 지닌 이슬람 국가인데다 국민들도 국가보다는 자기가 문화적으로 속한 지역에 더 높은 충성도를 지닌다.

 

 

 

파키스탄을 형성하는 지역들은 제각기 다른 정체성과 언어를 지니고 있고 이는 종종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첫 격돌은 1947년, 분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카슈미르를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ㅡ 카슈미르는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지대다. 1846년부터 힌두교 정권이 이곳을 지배했지만 주민의 다수는 이슬람교도였다. 1947년 영국이 철수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리 독립될 때 카슈미르는 주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라서 파키스탄에 편입되기를 바랐으나 카슈미르의 지도자 하리 싱은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인도로 편입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카슈미르의 이슬람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하리 싱은 인도에 지원 요청을 했는데 이것이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다. 1949년 유엔은 휴전을 선언했고 카슈미르는 두 지역으로 분할되어 북부는 파키스탄령, 남부는 인도령이 되었다. 이후 인도는 카슈미르 전체를 인도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지금까지 양국 간의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같이 복잡한 상황에서 중국마저 끼어들어 카슈미르는 현재 인도령, 파키스탄령, 중국령 세 곳으로 갈라져 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지역 내의 주요 부족들의 자치 지역과 1893년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선으로 정한 듀랜드 라인의 경계가 꼭 들어맞는 건 아니다. 이 가운데 많은 집단들이 국가보다는 경계선 밖의 부족들과 자신을 더 동일시하고 있다.

 

 

 


북극,

21세기 경제 및 외교의

각축장이 되다


 

 

 

 

 

 

위성사진을 통해 보면 북극의 얼음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을 통과하는 바닷길이 열리는 기간 또한 더 길어졌다.

 

 

 

뉴 그레이트 게임 New Great Game

19ㅡ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내륙의 주도권을 두고 벌였던 패권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21세기에 영토 분쟁을 두고 벌이는 새로운 양상의 패권 경쟁을 뉴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별에 도착했을 때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온 도전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러시아나 미국, 중국인의 자격으로가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우주를 방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중력이라는 족쇄만을 겨우 풀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갇혀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자원을 탐하는 원초적 경쟁이 형성한 틀 속에 말이다.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리, 이제는 <지리 전쟁>의 시대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한니발도, 손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인정했던

<지리의 법칙>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리 밀착형의 시대, 이제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 책은 지리의 힘이 급변하는 21세기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친다. 중국은 왜 그렇게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바다에 집착하는지, 러시아는 왜 크림 반도에 목매는지, 미국은 어째서 초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유럽은 정말 20세기 초 분열의 시대로 회귀할 것인지, 한국에는 왜 사드가 배치되는지, 파키스탄보다 인도가 더 빨리 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중동과 아프리카에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 놓았길래 지금도 피의 전쟁이 계속되는지, IS는 왜 영토에 집착하는지, 왜 세계는 남극이 아닌 북극으로 향하는지 등에 대한 답은 바로 <지리>에 있다.

 

 

이 책은 지리가 역사뿐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빚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한층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운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로 연결된 지금의 세계에서 이 책은 지리와 지경학, 지정학에 대한 간결한 개론서이자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 뉴스위크

 

지리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보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지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 지리학과 역사,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빨려들지 않을 수 없다. | 뉴욕 타임스

 

대단히 유익하다.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의 지리와 지정학을 아주 다가가기 쉽게 다루고 있는 소개서다. 대중 경제서들과 대중 역사서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대중 지리서>를 발견하게 돼서 반갑다. | BMIResea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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