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4 박정희 한국의 탄생
조우석 지음
2009, 살림
시흥시중앙도서관
SA151981
911.07
조66ㅂ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 이 책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미 '뉴욕타임스'와 '타임'이 찬사를 보냈던 20세기의 아시아 지도자 박정희, 케네디 대통령보다 활기 찼고, 18세기 러시아 표토르대제에 못지 않았던 한반도 모더니즘의 명장(名將) 박정희를 해독해낸 용기있는 저술!
저자_ 조우석
저널리스트 겸 문화평론가. 문화 전반과 함께 근 · 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그런 내용의 '조우석 칼럼'을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다. 『박정희, 한국의 탄생』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박정희를 건너뛰고서는 한반도 20세기를 제대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박정희가 치유와 화해의 이름이 되길 소망하는 조우석은 1956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서강대를 졸업한 뒤 신문기자 생활을 해왔다. 문화일보 문화부장,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로 활동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통 기자로 꼽혀왔다. 펴낸 책으로 『굿바이 클래식』 『책의 제국 책의 언어』 『배추가 돌아왔다』 『한국사진가론』이 있고,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등을 옮겼다.
▶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
| 차 례 |
저자의 인사말
프롤로그 | 신화와 오해의 벽을 넘어서
01_ 한반도 모더니즘 혁명
6070시대 우리는 로켓처럼 날았다
빵빵한 경제의 펀더멘털
세계 최강 탱크 '흑표'를 아시나요?
민주화 트로피, 올림픽 트로피
민주화 세대와 산업화 세대
고대인, 산업시대 엔지니어로 진화하다
| 테마 6070 | 박정희의 민족문화, 한창기의 토박이문화
그런데 장발 · 미니스커트 단속은 왜 했지?
02_ 햄릿형 시인, 마키아벨리 정치인
"모든 술은 다 좋다" 천하무적 주당
울보 대통령의 맨얼굴
스무 편 서정시 남긴 '문학청년'
이병철 스타일과 정주영 스타일의 사이
숨겨진 폭력정치 기질
대쪽선비 정구영의 또 다른 길
| 테마 6070 | 토종 와인 마주앙 탄생비화를 아세요?
'금오산' 등 박정희 작사 대중가요 두 편
그 시절의 조연들, 김재규 · 차지철 · 전두환
03_ 그 남자 출생의 비밀
상모리는 왜 고향이되 고향이 아닌가
대구사범 때 그는 행복한 청년이었나
제3의 탈출구 만주 발견
함석헌 · 장준하의 길, 박정희의 선택
지옥의 문턱 '남로당' 체험
그의 베아트리체 육영수의 등장
| 테마 6070 | 소년 박정희의 '근대로 열린 창', 교회
박정희는 과연 식민화된 군인 맞나?
04_ 박정희 18년의 A to Z
쿠데타, 총 아닌 마음으로 했다
18년 정치, 탄탄대로인가 살얼음판인가
마지막 비상구 중공업과 유신체제
중남미 회전문 쿠데타와는 너무나 달랐다
부국강병 꿈의 완성
라이벌 김일성을 제친 역전 대승부
| 테마 6070 | 너무도 달랐던 5 · 16과 김옥균의 갑신정변
필리핀과 한국의 뒤바뀐 나라 운명
05_ 논란 속의 6070시대 '지뢰밭'
민주주의, 본질인가 하이패션인가
지역차별의 멍에
지식인과 언론은 왜 등을 돌렸나
한일회담, 월남 파병 대차대조표
아킬레스건으로 남은 공작정치
10 · 26과 핵개발, 그리고 '미국 변수'
| 테마 6070 | 한국의 보배 함병춘, 상처받은 지식인 김형효
극과 극의 스타일, 카터와 레이건
06_ 그와의 싸움, 그와의 화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민중문화운동
학계 검투사들, 반 박정희 칼 뽑다
제3의 목소리, 경제학자 장하준
| 테마 6070 | 이시형, 김동길, 손학규, 김문수의 박정희 재발견
에필로그 | 박정희는 이제 치유와 화해의 이름이다
부록 | 나는 왜 이 책을 썼나? ㅡ 저자의 셀프 인터뷰
▶ 1961년 11월 박정희가 미국 방문 중 케네디를 만났다. 둘은 동갑이자, 같은 해 집권했다.
『한국전쟁의 기원』 ㅡ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ㅡ 브루스 커밍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포드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 소련의 스탈린, 일본 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 등 20세기 산업군주들을 도열시킨다면, 한국의 산업지휘관 역시 그 반열에 마땅히 속할 것이다."
ㅡ 브루스 커밍스
▶ 박정희와 인연이 많았던 고 김수환 추기경
"박 대통령은 우리 강산 구석구석 나무 한 그루에까지 애정을 쏟는 분이었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이 가꾸고 돌봐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집착이 강했다. 종이에 4대 강을 그려 가면서 몇 십 년은 족히 걸릴 개발계획을 설명해주는 그분 모습에서 이 나라가 1인 장기독재로 갈 것임을 예견했다"
ㅡ 김수환 추기경,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한국 방문 중 알게 된 것은 수많은 대학교에 김일성연구소가 있고, 그에 따른 지료도 풍부한데 반면에 박정희 대총령에 관한 자료, 특히 1970년대 자료는 거의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도 기이해서 왜 그러느냐고 국회도서관 직원에게 물어야 했다."
- 김형아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ㅡ 김형아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환경에 맞게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ㅡ 앨빈 토플러
"박정희에 의해 한국이 당대에 근대 산업국가로 초석을 다지리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또 박정희의 반대 세력에 의해 근대 민주국가의 초석을 다지게 되리라는 것도 확실히 믿는다."
ㅡ 어느 외국 외교관이 최정호(전 한국신문학회장)에게
▶ 제주도의 저수지 개발사업장을 시찰하는 박정희. 1970년 9월.
"내가 어떻게 부정 따위에 손대지 않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구식 한국인이고 징고이스트(맹목적 애국주의자)여서 '부정 탄다'는 말을 믿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그것이 중화학공업 프로그램이건 율곡 사업이건 간에 내 자신이 부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우선 준비했다. 뇌물을 받는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심지어 아내와 동침하는 것조차도 피했다. 조국을 위해, 실패하지 않는 것이 내 사명이었다."
ㅡ 오원철(청와대 경제2수석)
01 한반도 모더니즘 혁명
여성우주인 이소연, 그녀는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라고 말했다. 우주에서 한반도를 바라봤던 첫 한국인인 그녀는 무엇을 보았기에 그 말을 했을까? 우리가 미처 발견 못했던 게 있단 말일까? 그렇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를 들여다보자. 그래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6070시대의 성취가 보이고, 그 '밑천'을 만든 박정희를 따라잡을 수 있다. 조선 · 철강 · IT · 자동차 등 빵빵한 제조업, 세계 수준의 사회간접자본이 우선 그렇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반 달성한 것도 박정희 이후 우리의 자랑이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변화 속에서 바뀐 것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아닐까?
▶ 1955년경 여의도 비행장(위)과 현재의 여의도(아래) 모습. 일제시대 공항 역할을 했던 여의도는 신도시의 원조이다.
▶ 1970년대 서울의 랜드마크였던 삼일빌딩과 청계고가도로
『자유로서의 발전』 ㅡ 아마티아 센
▶ 모던한 디자인의 「뿌리깊은 나무」 표지.
▶ 창간 한돌을 맞아 동아일보에 실린 「뿌리깊은 나무」 광고. 1977년 3월.
▶ 한창기.
"얼마전 가수 김장훈의 콘서트에서였다. '사노라면'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대한민국 사람인 게 한 밑천인데~'로 바꿔 불렀다. 본래는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인데, 가사 몇 마디만 바꾼 것이다. 2008년도 우주비행 이후 나에게 '대한민국' '태극기' 등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ㅡ 여성 우주인 이소연
▶ 포항제철 제2고로 화입식. 박정희가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사진 뒤쪽)과 함께 고로에 불을 넣고 있다. 1976년 5월 31일.
▶ 화력시범을 보이고 있는 XK2 일명 흑표 전차. 흑표는 개발 초기부터 세계 최고를 노리고 설계됐다.
▶ 우리나라의 신형 고속정 윤영하함.
▶ 박정희 권유로 한국형 탱크를 개발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 국산병기 시험발사장에서 병기를 살펴보고 있는 박정희. 1972년 4월 3일.
▶ 1987년 6 · 26 평화대행진 당시 시위대 앞의 대형 태극기와 질주하는 시민.
▶ 남자 육상 결승전.
▶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굴렁쇠 소년.
▶ 1970년 길거리에서의 장발 단속.
▶ 최초 국산 라디오 금성사 Aㅡ501.
▶ 1970년대 초반 부산 금성사의 금성라디오 조립 광경.
▶ 6070시대 엔지니어 김해수(위)와 그의 사위인 시인 박노해(아래).
▶ 전태일(좌)과 그의 동료.
▶ 영화배우 신성일(위)과 대중가수 비(아래).
▶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제17차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단 개선식. 1968년 7월 23일.
▶ 한국 건설기술의 상징인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02 햄릿형 시인, 마키아벨리 정치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시인 신동엽은 그렇게 물었지만 우리는 "누가 박정희의 맨얼굴을 보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대추방망이 체구에 깐깐한 독재자로만 알아온 그는 뜻밖에 말술을 즐기던 애주가였다. 여자치마를 두른 채 덩실덩실 막춤으로 곧잘 '망가지기도' 했다. 수십 편 서정시로 아내 사랑을 노래했던 '글쟁이 대통령' 인가 하면 걸핏 하면 『삼국지』의 유비 못지않게 눈물을 쏟던 '울보 정치인'이다. 반면 정치9단의 놀라운 권모술수도 보여줬다. 어떤 게 박정희의 진짜 모습인가?
▶ 논일을 마치고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박정희.
▶ 술꾼 대통령 박정희의 실력을 보여줬던 태국 푸미폰 국왕 주최 환영 만찬. 1966년 2월 14일.
"박 대통령은 농촌 출신인데, 부끄럼을 타면서도 머리 회전이 빠르다. 그는 키가 작은 것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 처음 만나면 공식적이고 딱딱하다. 그러나 기분이 편해지면 상대방의 솔직한 태도에 잘 반응한다. 그의 한 가지 취미는 승마다."
ㅡ 196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존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백악관이 올렸던 인간 박정희에 관한 자체 정보.
▶ 소설가 이병주.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나에게 던지는 첫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 주필, 나라가 이래 가지고 되겠소?' 그런데 이것은 묻는 말이 아니고 자기의 자세를 다지는 일종의 제스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용주에 대한 척 말은 '어때, 부인 잘 계시나?'였다. 이렇게 한마디 해놓고는 별반 말이 없다. 묵묵하게 잔을 비우고 있는 사이 간투사를 닮은 말이 끼일 뿐이다.
'부정선거를 하느니 차라리 선거를 하지 말지.'
박정희 소장은 대개 묵묵했지만 입을 열었다 하면 나라 걱정이고 민족 걱정이었다. 그는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애국애족을 호흡하고 있었다."
ㅡ 이병주, 『대통령의 초상』에서
"국수주의가 망쳐버린 옛 일본을 자유주의자들이 일으켜 세운 게 오늘의 현대 일본이야." (황용주)
"자유주의? 그것 갖고 뭐가 돼? 국수주의자들의 기백이 오늘의 일본을 만든 것이야. 우리는 그걸 배워야 해." (박정희)
▶ 박정희의 평생 친구였던 시인 구상.
▶ 1966년 푸랑크푸르트 공항의 파독 간호사 환영 인파.
"생활상의 청렴함과 소박한 인간미 그리고 반듯한 언행일치는 이 때문에 스케일이 작고 답답했을 정도였다. 그분의 이런 인간적 단면을 말해주는 것이 가령 막걸리에 풋고추와 된장을 즐긴다든가, 홍수가 쏟아질 때는 (걱정으로) 잠을 못이룬다든가, 또 옛 친구를 만나면 오붓한 사담을 나누고 싶어 한다든가, 여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꼬박꼬박 경어를 쓰는 습관도 그분의 인간적 단면을 말해준다. 그분은 과장된 제스처나 껄껄대며 수선 떠는 것과는 담 쌓은 성격이다."
ㅡ 박상길(집권 초기의 참모)
▶ 1964년 독일 순방에 나선 박정희.
▶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는 박정희 의장 내외와 최고위원 일행. 1963년 1월 1일.
▶ 포항제철 착공식장에서의 박정희와 김학렬 부총리(사진의 오른쪽).
▶ 경부고속도로 개통식 후 샴페인을 뿌리는 박정희. 건설 과정에서 희생됐던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 신민당 총재 시절의 김영삼 전 대통령.
"박대통령을 평하기를 '청탁淸濁을 같이 들이마시는 사람' '작게 치면 작게, 크게 치면 크게 울리는 큰북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박대통령은 담대해야 할 때는 무섭게 담대했고, 자상해야 할 때는 자상했으며, 슬플 때는 누구보다 눈물이 많았던 분이었다."
ㅡ 김두영(청와대 비서관)
"가장 인상적인 유품이 종이 두루마리 뭉치였다. 스케치 그림이 들어 있는 길이 1미터 50센티미터의 종이 수백 장을 둘둘 쌓아 놓으면 높이만 60센티미터다. 경부고속도로 설계도였다. 서울 ~ 부산 사이의 휴게소, 인터체인지 그리고 항공사진을 테이프로 정성껏 붙여놓았다. 모년 모일 어디서 어떻게 한 거라는 메모가 있었다. 정말 섬세하게 그림을 그렸다."
- 나한일(탤런트, 해동검도 사범)
▶ 1930년대 소년 박정희가 수학여행 갔던 금강산 만물상.
금강산 일만 이천 봉, 너는 세계에 명산!
아! 네 몸은 아름답고 삼엄함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데
다 같은 삼천리강산에 사는 우리들은
이같이 헐벗었으니 과연 너에 대하여 머리를 들 수 없다
금강산아, 우리도 분투하야 너와 함께 천하에 찬란하게!
ㅡ 박정희, '금강산'
▶ 소년 박정희의 시 「금강산」 육필 원고.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보다도
황야의 한 구석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이
보다 기품 있고 아름답다
아름답게 장식한 귀부인보다도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
태양을 등에 지고 대지를 일구는 농부가
ㅗ다 귀하고 아름답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저 태양처럼
하룻밤을 살더라도 저 파도처럼
느긋하게, 한가하게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이상.
ㅡ 박정희 '대자연'
▶ 1951년 신혼 초의 박정희와 육영수.
밤은 깊어만 갈수록 고요해지는군.
대리석과도 같이 하이얀 피부
복욱한 백합과도 같이 향훈을 뿜는 듯한 그 얼굴
숨소리 가늘게, 멀리 행복의 꿈나라를 거니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
잠든 얼굴 더욱 예쁘고 평화의 상징! 사랑의 권화!
아! 그대의 그 눈, 그 귀, 그 코, 그 입
그대는 인仁과 자慈와 선善의
세 가닥 실로써 엮은 한 폭의 위대한 예술일진저
옥과도 같이 금과도 같이
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지언정
길이 빛나고 길이 아름다워라
나의 모든 부족하고 미흡한 것은
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
흡수되어 동화되고 정착되어
한 개 사나이의 개성으로 세련되고 완성하리
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 이 찰나가
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써 인생 코스가 되어 주오
그대 편히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이 밤이 다가도록 새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ㅡ 박정희,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
1. 벚꽃은 지고 갈매기 너울너울
거울 같은 호수에 나룻배 하나
경포대 난간에 기대인 나와 영英
2. 노송은 청청 정자는 우뚝
복숭아꽃 수를 놓아 그림이고야
여기가 경포대냐 고인도 찾더라니
3. 거기가 동해야 여기가 경포대냐
백사장 푸른 솔밭 갈매기 날으도다
춘삼월 긴긴 날에 때가는 줄 모르나니
4. 바람은 솔솔 호수는 잔잔
저 건너 봄 사장에 갈매기떼 희롱하네
우리도 노를 저며 누벼 볼거나
ㅡ 박정희, '춘삼월 소묘'
▶ 아내 사랑이 남달랐던 박정희와 육영수.
몇 번이나 다짐했거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이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 한 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 년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 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 수가 있으리.
ㅡ 박정희
님과 함께 놀던 곳에
나 홀로 찾아 오니
우거진 숲 속에서
매미만이 반겨하네
앉은 자리 밟던 자국
체온마저 따스하여라
저도猪島 섬 백사장에
모래마다 밟던 자국
파도 소리 예와 같네
짝을 잃은 저 기러기
나와 함께 놀다 가렴.
ㅡ 박정희, '일수一首'
황파에 시달리는 삼천만 우리 동포
언제나 구름 개고 태양이 빛나리
천추에 한이 되는 조국질서 못 잡으면
선혈 받혀 넋이 되어 통곡하리라(1절)
영남에 솟은 영봉 금오산아 잘 있거라
세 번째 못 이룬 성공 이룰 날 있으리라
대장부 일편단심 흥국일념 소원성취
못 하오면 돌아오지 아니하리라.(2절)
ㅡ 박정희, '금오산아 잘 있거라'
https://www.youtube.com/watch?v=6LQf9wjWudo
▶ 박정희가 작사한 <금오산아 잘 있거라>에서 묘사된 구미 금오산 풍경.
▶ 70년대 새마을 운동 장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새마을 노래 LP판.
▶ 1964년 9월 단양 시멘트공장 준공식에서 정주영 부부와 박정희.
▶ 박정희와 대국을 보는 사이로 의기투합했던 이병철,
"기업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생계를 보장해주는 한편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이른바 부정축재자를 처벌한다면 그 결과는 경제위축으로 나타난다." (이병철)
"부정축재자를 풀어준다면 국민들이 납득할까?" (박정희)
"국가의 대본大本에 필요하다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는가?" (이병철)
"(미소를 띠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수 없겠는냐?" (박정희)
▶ 박정희 시절 폭력정치를 상징하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 일본에서 납치되었다가 닷새 만에 풀려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대중.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으로 체포된 문세광.
▶ 부대 시찰 중인 차지철. 1972년
▶ 박정희 권력을 이루는 '뼈'에 해당하는 주요 인물인 김재규와 전두환.
『박정희 시대와 한국현대사』 ㅡ 구범모
03 그 남자 출생의 비밀
박정희가 태어난 경북 선산의 상모리의 생가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흙벽돌의 초가집에 대한 증언은 1948년 그곳을 찾았던 동거녀 이현란으로부터 나왔다. 그곳은 기어 들어가고 기어 나와야 하는 곳일 만큼 초라했다. 상모리는 옛 시절 조선의 남루한 삶을 상징한다. 박정희는 그 가난이 싫었다. 때문에 대구사범 시절 내내 울적했고, 이때 탈출구로 만주를 떠올렸다. 현대사의 고비와 얽혀 돌아가는 이후 삶은 일제시대 만주군 군인으로, 해방 3년 공간에서는 남로당 가입으로 나타난다. 박정희 식의 무한모색이자, 시대와의 불화였다. 그러던 중 여순사건 뒤 군사재판에서 사형 구형을 받는데······
▶ 교사 시절 박정희가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1938년으로 추정된다.
▶ 박정희의 어릴 때 모습.
▶ 박정희가 어린 시절 지낸 초가집. 생가 복원 전의 모습이다.
▶ 감회어린 시선으로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박정희. 1969년 10월 8일.
▶ 박정희가 유년 시절을 보낸 구미시 상모리의 생가. 복원 이후의 모습이다.
▶ 생가에 보존된 부엌의 허름하고 누추한 모습.
▶ 소년 박정희가 사용하던 앉은뱅이 책상과 책꽂이.
▶ 박정희의 부(父) 박성빈과 모(母) 백남의. 박정희의 두상과 얼굴 윤곽이 모친을 많이 닮았다.
▶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의 박정희.
▶ 담쟁이덩굴로 덮혀 있는 붉은색 벽돌의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청년 박정희가 공부했던 곳이다.
▶ 2 · 26 사건. 1936년 2월 26일, 일본 황도파 청년 장교들이 국가의 전면적 개조와 군사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 만주로 떠나기전 박정희(뒷줄 동그라미 안). 1940년 2월 7일
▶ 만주 군관학교 시절 박정희.
▶ 일본 관동군이 세운 다롄대광장. 광장의 중앙은 초대 관동도독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장군의 동상이고, 정면의 건물은 요코하마 정금(正金) 은행.
▶ 위로부터 박정희, 함석헌, 장준하. 20세기 한국의 펜과 칼의 대립을 상징한다.
요동만주 넓은 들을 쳐서 파하고
청천강수 수병 백만을 몰살하옵신
동명왕과 을지공의 용진법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이 원수 쳐보세
삼천만 번 죽더라도 나아갑시다.
- 독립군 노래
▶ 해방 직후 서대문형무소 앞의 축하시위. 당시 박정희와 장준하는 중국에서 귀환을 서두르고 있었다.
▶ 여순사건 당시 여수서초등학교에 모인 청장년들. 진압군이 부역혐의자들을 골라내고 있다.
▶ 불타고 있는 여수의 한 마을 주변으로 진압군이 경계를 서고 있다.
▶ 박정희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백선엽.
▶ 1951년 7월 16일 휴전회담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UN 대표단(왼쪽부터 크레이기 소장, 백선엽 소장, 조이 제독, 호디스 소장, 버크 제독).
▶ 전쟁 중 대구에서 올린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식. 전날 밤 위경련으로 신부 얼굴이 부어 있지만, 운명적 만남이 분명했다.
검푸른 숲 속에서 맺은 꿈은
어여쁜 꽃밭에서 맺은 꿈은
이 가슴 설레어라
첫사랑의 노래랍니다
그대가 있었기에 그대가 있었기에
나는 그대의 것이 되었답니다
그대는 나의 것이 되었답니다
검푸른 숲속에서 맺은 꿈은
어여쁜 꽃밭 속에 맺은 꿈은
이 가슴을 설레어 논 첫사랑의 단꿈입니다
그 때가 없었던들 그 때가 없었던들
나는 그대 것이 아니었지요
그대도 나의 것이 아니었지요
얼굴을 볼 때마다 이 가슴이
손목을 쥘 때마다 이 가슴이
웬일인지 떨리어서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대가 있었기에 그대가 있었기에
그대는 나의 것이 되었답니다
나는 그대의 것이 되었답니다
적은 내 흘러가는 물소리는
나무에 지저귀는 새소리는
즐거움을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랍니다
그대가 있었기에 그대가 있었기에
그대는 나의 것이 되었답니다
나는 그대의 것이 되었답니다
ㅡ 미스 리갈, 강홍식, 첫사랑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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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대 사병휴게소를 방문한 육영수. 1969년 1월 28일.
▶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의 자녀들(왼쪽부터 지만, 근영, 근혜). 청와대 뒤뜰에서 즐거운 한깨를 보내고 있다. 1969년 1월 31일.
04 박정희 18년의 A to Z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 5 · 16 군사혁명 포고문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날 새벽 동원된 병력은 3,500명이 전부였다. 군사학의 측면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았는데 어떻게 권력을 끝내 틀어쥐었을까? 5 · 16은 골방의 음모가 아니다. 사회가 새로운 기운을 요청하고 있었는데, 쿠데타는 그 목마름을 채워준 계기였다. 손바닥이 마주쳐 소리가 난 것이다. 그렇게 열린 박정희 18년 성취의 실체는 무엇일까? 부국강병의 꿈은 이뤄졌는가? 권력 나누기 식의 중남미 쿠데타와는 뭐가 다른가?
▶ 쿠데타 뒤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서울 시청 앞의 '선글라스 장군' 박정희(가운데)와 박종규 소령(좌), 차지철 대위(우). 1961년 5월 17일.
▶ 혁명내각 구성 후 국가재건최고위원회. 앞줄 가운데 장도영 왼편에 박정희가 보인다. 1961년 5월 21일.
▶ 임오군란 이후 맺어진 1882년 조일수호조규속약 기념 연회도. 그림 건너편 중앙이 김옥균. 왼쪽 모퉁이가 홍영식.
▶ 갑신정변 주역인 33세의 김옥균.
▶ 혁명 직후 시청 앞의 박정희와 차지철.
▶ 정치깡패 이정재의 서울 시내 행렬. 사회정화 차원에서 내려진 깡패검거령으로그해 6월 말까지 1만여 명이 검거되어 감옥이나 국토건설 현장으로 보내졌다. 1961년 5월 21일.
▶ 전국적인 규모로 벌어진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 브루스 커밍스.
▶ 부평 새나라 공장에서 자동차 생산 현장을 둘러보는 박정희.
▶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정책의 예비 작업으로 1964년에 세워진 울산 정유 공장.
▶ 1972년 12월 27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유신헌법 공포식.
▶ 2000년까지 26년을 집권했던 피노체트.
▶ 1950년 11월 1일, 폐허로 변한 서울 중앙청 앞 거리. 부녀자들이 건물 진해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 1960년대 아시아의 선진국인 필리핀이 지어준 장충체육관.
▶ 마르코스와 그의 부인 이멜다.
▶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글씨는 간결하면서 힘찬 것이 특징이다. 달필의 '익은 글씨'를 구사한 이승만과 다른 점이다.
▶ 표트르 대제 기마상. 상트 페테르부르크 중앙광장에 있다.
어떤 정신이 이마에 새겨져 있고
어떤 힘이 그 안에 간직돼 있을까
그의 애마에는 어떤 불이 붙어 있을까
자랑스러운 애마여
네가 뛰어오를 때 그 어느 곳에 너의 네 발을 디딜 것인가.
- 푸슈킨(러시아 국민 시인, 1799 ~ 1837년)
▶ 2005년 위성에서 촬영된 한반도의 밤 사진. 밝게 빛나는 곳은 인구밀도가 높고 산업이 발전한 대도시. 한반도의 북쪽은 거의 암흑이다. 서울 위쪽으로 평양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작은 빛이 보인다.
▶ 영원한 라이벌 박정희와 김일성.
▶ 2005년 북한의 선군혁명총진군대회 주석단 모습.
05 논란 속의 6070시대 '지뢰밭'
고대 이스라엘의 젊은 예수는 기존질서를 전면 거부했다. 완벽한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자기 생애에 구현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철두철미 종말론자인데, 박정희도 그러했다. 근대화를 신앙이자 유토피아로 알았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 '환자 대한민국'을 수술해야겠다는 소명의식에 사로잡혔다. 퉁치는 그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논란도 피할 수 없다. 왜 민주주의를 차압했나. 지역차별은 무엇 때문인가. 월남파병과 한일회담의 평지풍파는 왜? 그리고 핵 개발은 무슨 영문일까? 무한논쟁의 지뢰밭을 들어가 보면······.
▶ 조지 워싱턴(위)과 샤를르 드골(아래).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3선 개헌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고 시골로 돌아갔고, 프랑스의 드골은 잔여임기 3년을 남기고 권좌를 떠났다.
▶ 싱가포르의 지도자 리콴유.
▶ 2007년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자의 지역별 득표율.
"어둡고 괴로웠던 3년 전 안개 낀 어느 봄날 새벽[4 · 19를 말함]. 네가 3천만 온 겨레에게 외치던 귀에도 쟁쟁한 그 역사적인 절규를 너는 벌써 잊었는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던 공약 밑에, 너는 그러나 맨 먼저 민족적 양심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시작하였다. 그때 이미 우리는 알았다. 우리는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맛보았다. 극한의 절망과 뼈를 깎는 기아의 서러움을······."
- 김지하(시인)
▶ 6 · 3 한일 회담 반대시위. 한일협정 비준 무효화를 외치는 경기고등학교 학생들.
▶ 1970년 12월 교육 · 문화담당 특보로 임명됐던 철학자 박종홍.
▶ 박정희 정권 당시 정치담당 특보를 지낸 함병춘.
▶ 새마을운동 지지했던 철학자 김형효.
▶ 월남 파병 전 국내에서 행해진 맹호부대 사열식.
▶ 박정희에게 월남 파병은 실리와 함께 대미관계 정상화 속에서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였다.
▶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 1기 고로에서 첫 쇳물이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며 박태준과 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의 발사 모습.
▶ 1979년 6월 29일 내한한 카터 대통령이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시민환영식에서 군중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구상을 가졌던 카터(위)와 레이건(아래) 미국 대통령.
▶ 1981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방문한 전두환.
06 그와의 싸움, 그와의 화해
박정희 재평가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학계의 진보 진영은 박정희로 상징되는 근대화, 산업화의 가치, 그에 따른 사회변화 모두를 미워하고 부정한다. 이게 맞는 지적일까? 맞서는 쪽도 치열하게 응전 중이다. "당신들은 '민주주의의 적' 박정희라는 가공의 유령을 만들어 놓고 있고 소모전을 한다"는 지적이다. 학계 검투사들이 총동원된 이 싸움의 한쪽에서 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 등은 오래 전부터 '박정희와의 화해'를 고백하고 있다. 박정희, 참 문제적 인간이 맞기는 맞다.
▶ 윤홍길의 『아홉 켤레』는 1971년 8월 광주대단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예술이라면 제 애비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이 예술지상주의였다
염병할! 그놈의 사후의 명성이란 것도
부르조아 새끼들의 위선이 거만이 구역질나서 보들레르는
자본의 시궁창 파리 한복판에 악의 꽃을 키웠다
대한민국의 순수파들 절망도 없이
광기도 자학도 없이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자르르 교양미 넘치는 입술로
자본가의 접시에 군침을 흘리면서 예술지상주의를 한다
에끼 숭악한 사기꾼들
죽으면 개도 안 물어가겠다
그렇게 순수해가지고서야 어디 씹을 맛이 나겠느냐
- 김남주, '예술지상주의' 일부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 김남주, 시 '낫' 일부
▶ 분노와 민중 미술을 대표했던 판화 작가 오윤(위)과 그의 작품(아래).
▶ 박정희 논쟁에 뛰어든 다얀한 지식인들. 위로부터 이시형, 김동길, 손학규, 김문수.
▶ 박정희를 보는 시야를 열어준 경제학자 장하준.
▶ 제8대 총선 지원 유세 현장의 박정희. 1971년 5월 18일.
▶ 한국 사회 특유의 흑백논리에 희생된 춘원 이광수.
https://www.youtube.com/shorts/UEUEscHf7g8
朴
正
熙
"6070시대는 우리 현대사의 청년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의 뼈대와 얼굴 그리고 체질이 이때 형성됐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그때만큼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연출햇던 시기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박정희란 이름 석 자에 극도의 반발에서 뜨거운 찬양까지 다양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보수ㅡ진보의 이념 갈등도 알고 보면 박정희를 둘러싼 판단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그 '문제적 인물'을 우회하지 말고 들여다보고 싶었다."
ㅡ '저자의 셀프 인터뷰' 中에서
사후 30년,
외면과 찬양의 양극단을 넘어
박정희를 다시 읽는다
역대 대통령 선호도 조사, 부동의 1위 박정희.
그러나 왜 우리 시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꺼내면 안 되는 이름' '금기의 인물'이 되어버렸나. 저자는 수년간 지식인 사회에서 이뤄져온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담론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인 6070시대를 공백 상태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구국의 영웅 아니 장기 집권의 독재자, 대한민국 근대화의 초석 아니 지역차별의 원조······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이유 없는 편견과 찬사 일변도에서 벗어나, 한국 현대사의 가장 논쟁적인 한 인물의 '실물크기'를 제대로 가늠해보자는 담대한 제안이다.
또한 저자는 낡은 근대라는 통념으로 덧씌워진 6070시대를, 경제와 문화 등 대한민국 각 분야가 용솟음치던 '모더니즘의 혁명기' '진보시대'로 바꿔 부른다. 이것은 아버지 세대를 부정적 평가로 일관했던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이며, 경제우울증에 시달리는 이 시대와 열정이 식어버린 젊은 세대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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