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7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김진명 에세이
2022, 이타북스
소래빛도서관
SC160265
818
김78ㄸ
김진명
소설가.
충청북도 제천에서 『고구려』를 집필 중이다.
모든 인간은
비극적 존재이다.
품었던 이상은 흐릿해지고
꿈은 깨지며
일이란 실패하기 마련이니까.
성공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운명인지라
우리 대다수의 인생은
언제나 슬픔과 비극에 물들어 있다.
이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는,
일상 속에서 삶의 깊이를 음미하며
드물게 맛보는 기쁨과 즐거움을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일 테다.
슬픔과 비극을 담은 대화야말로
우리가 타인과 교감하는 진정한 신호이며
우정과 사랑을 찾으려 가슴 깊은 곳에서
속삭이며 흘러나노는 샘물과도 같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슬픔과 비극을 오면하고 있다.
상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사려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나 오늘
차 바꿨어~
그래?
그나저나 곧 우리 아들이
유학을 가는데···
질투와 미움으로 간신히 가린
경계선의 대화를 잔뜩 교환하고,
집에 돌아와
나는 그 전쟁에서 이겼던가
아니면 졌던가를 평가하며
만족과 불만족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음의 전쟁을 준비한다.
유학은 무슨,
집안 사정 뻔히
다 아는데.
차? 할부일 거야···.
다 갚으려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하는데.
쯧, 철없이.
어떤 진지한 공감도
애정도 없는 일상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쉴 새 없이 겉모습만 과시하는 일상,
마치 기쁜 일만 있고
오직 성공만이 있는 듯
가식적인 말의 홍수 속에
진실은 질식하고
동행의 길은 메말라 버린다.
누군가와 사랑과 우정이 담긴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자랑만 하는 즐거운 내용이 아니라
우울한 내용의 대화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요즘 혹시 힘든 일 있어요?"
대한민국 대표 작가 김진명,
그의 첫 에세이!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내면의 힘을 키워라
■ 작가의 말
"말하라. 그대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까. 나는 세계의 정복자 알렉산더다!"하고 외친 알렉산더에게 "대왕이시여, 해를 사리지 말고 비키시오."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디오게네스. 나는 이런 내면의 힘을 권유하고 싶다.
어머니의 믹서
세월이 흘러 인생의 영고성쇠를 겪을 만큼 겪고 난 어느 날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선선히 웃으며 나를 먼저 내보내고는 화구점에 남았던 아버지. 그날 아침 굳이 양복을 꺼내 입었던 아버지의 주머니에는 미술 도구 값은 커녕 일 원짜리 동전 한 닢도 없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 믹서 또한 당신이 집을 비울 긴 세월, 가난할 수밖에 없는 아내가 괄시받지 않도록 남기고 간 배려였던 것이었다.
성공의 꿈
나는 다양한 독서와 이에 따른 사색을 하면서 그전에 그토록 집착했던 물질적, 세속적 가치를 떠나 이 세상의 가장 우수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매달렸던 문제들에 빠져 들었다. 나는 누구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무엇이 옳으냐, 무엇을 할 것이냐 등을 늘 생각하며 어린 나이였음에도 정신의 지평이 크게 넓어졌다.
가난한 날의 기억
아버지는 그 소중한 만 원을 꺼내 노점에서 담배를 두 개비 샀다. 그러고는 십 분이 넘는 실랑이 끝에 남은 돈 9,800원 모두를 내게 안기는 것이었다. 한사코 안 받으려 했고 반씩 나누지고도 하였으나 아버지는 기어코 백 원도 에누리 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담배를 단 두 개비만 사던 그 낯설고 낯선 모습이 나의 저항을 완전 무력화시켰다.
"다음에 가서 백만 원 갚아라."
내가 돈을 받자마자 만면에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돈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합창단의 기억
"알아, 내 니 마음 다 알아. 다 이해한다니까. 사실 나도 그러고 나서 마음이 펜하지는 않았어. 또 머라켔나, 거짓의 1등보다는 진실의 꼴등이 낫다 그랬나, 그 말도 멋있다."
항복 선언과도 같은 선생님의 말에 나의 승리감이 최고조에 달한 바로 그 순간 마지막 한마디가 천둥처럼 나의 귀청을 때렸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내 생각에는 벤함이 없다. 니는 너무나 중증이란 말이야! 중증!"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장모의 냉장고
그 후 나는 장모를 만날 때마다 장인의 떳떳한 삶을 설파하였고 장모는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비슷한 일화들을 쏟아내시긴 하셨으나 이런저런 싸구려 식품으로 냉장고를 꽉꽉 채우는 행위는 결코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작정하고 제법 근사한 식품으로 장모의 냉장고를 채워드리며 돌아가시면 냉장고를 천국으로 배달시켜 드리겠다 하였다.
그 말에 너무나 좋아하시면서 어린애처럼 해맑게 웃으시던 장모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군대 가던 날
단 한 번도 미래에 어떻게 하자느니 하는 얘기 없이 의연했음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논산에 도착하고 나는 훈련소 부근의 여관에 방을 잡고 머리를 깎은 다음 음식점에 가서 불고기 백반과 함께 소주 한 병을 시켜 마셨다.
다음 날 훈련소 정문 앞 여기저기서 장정들이 흐느끼는 애인과 절대 변치 않겠다느니 기다리겠다느니 다짐하며 미친 듯이 끌어안고 있는 광경을 담담한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그들의 미래를 빌어 주었다.
몇 년 후 나는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온 듯 돌아와 그녀와 결혼했다.
고백의 조건
"아, 그러셨군요. 더 높은 뜻이 있었군요."
작은애의 유쾌한 칭찬이 귀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애는 어리니까 곧 잊어버리겠지 생각했던 나의 속단은 너무도 섣부른 것이었다. '더 높은 뜻'이란 단어에 작은애는 긴 세월을 오해와 언짢은 기억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지금 전화로 하고 있는 얘기를 그 당시 해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무언가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이 맞다. 다른 어떤 계산도 해서는 안 된다.
홍대 앞 파출소
집에 돌아온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놈들이 혹시 보복하러 올지 모르니 엄마를 잘 보호하라고 잔뜩 근심스레 당부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온 아들의 답변에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 염려 마세요. 저는 그런 놈들 찾아오는 게 제일 좋아요."
정말 무모한 놈이었다.
독서로의 권유
독서에는 무엇보다도 시기가 중요하다.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뇌 속에서 다른 기억 및 정보와 결합해 의식을 개발하고 창의력ㅇ의 기반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일 때의 풍부한 독서만이 문리를 트이게 하는 데 이 문리가 트여야만 비로소 형이상학적 복합 사고가 가능하고 진리 규명이라는 인간의 최고 목표를 실현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삶에는 여러 길이 있고 어떤 길에도 다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독서와 사색을 놓치고 난 인생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아쉽기만 하다.
인문학의 힘
인문대 학생들에게는 전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삶 전체가 바로 전공이다. 문제는 어떠한 삶도 살아낼 수 있는 이 거대한 힘을 대학 4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인문학 공부를 해 어떤 기술이나 능력보다 큰 힘을 기르려는 학생은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 모든 불안과 의심을 누른 채 끝까지 읽고 또 읽어 평생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큰 길이다.
삐삐의 힘
세상에는 공부 잘하는 길 외에도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다 생각했던 내가 삐삐에게 권해 본 게 타인과의 소통이었다. 긴긴 세월 남과 소통하며 살아온 삐삐의 내면에는 실제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자신만의 어떤 세계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지금에 이르도록 삐삐를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이것은 삐삐의 큰 힘이라 생각한다. 긴 세월 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다 보니 이제 청년이 된 삐삐는 누구와 경쟁해 이기겠다는 욕심이 별로 없다. 이것 또한 멋지다. 시기나 질투로 고통받을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렸을 적 순수할 때부터 남이 잘되는 걸 빌어주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남의 성공을 바로 본인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 작가의 말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본능에 의해 산다. 따라서 건강하고 풍족한 삶을 살면 행복하다. 하지만 인간은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그게 더 의미가 있을 때에.
안중근의 어머니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어라!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의 옷을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돼 이 세상에 나오거라!
인간은 존재하는 자체로
인류 역사에 기여한다
나는 특히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허무와 무기력감에 빠진 모든 어르신들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시라 말하고 싶다. 세대를 이어가는 일은 성인이나 위인으로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우등생뿐만 아니라 열등생도 소중하고 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인류를 위해 공헌하는 것이므로.
두 가지 다른 가르침
학교 교육을 거부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학교 교육만으로 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인류의 스승은 도처에 있으므로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든 만날 수 있다.
오늘도 애틋한 마음으로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이 문제를 곰곰 생각해 보기 바란다.
첫 문장이 유명한 소설
이상의 『날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거죠?"
"조국을 위해 싸우는 거지."
"프랑스놈들은요?"
"모국을 위해 싸우지."
"그럼 누가 옳은 거죠?"
"그야 이긴 놈이 옳은 거지."
"서부 전선 이상 없음.(Im Westen nichts Neues.)"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송광사 가는 길
남에게 쏠렸던 시선을 나에게로 가져와야 한다. 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신경 쓰기보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그저 제 할 일을 다하며 삶을 스스로 충실하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송광사 가는 길의 그 허름한 식당처럼.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희생
리처드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이어지고 쌓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인류의 힘이다.
인류의 진화와 도전의 순간
스포츠에는 이길 팀이란 없다. 오직 도전하는 팀이 있을 뿐이다.
비극이 사라진 사회
모든 인간은 비극적 존재이다.
품었던 이상은 흐릿해지기 마련이고 꿈은 깨지며 일이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 세상의 본질이나 삶은 고통과 비탄과 슬픔에 언제나 맞닿아 있다.
부처
철학 또한 마찬가지의 결론을 제시한다. 철학의 건조한 논리 구조를 좇아가면 '진리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허무주의에 도달하지만 사실 참된 허무주의는 모든 것의 부정이 아니다. 거기서 한 번 더 힘을 내 긍정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존재가 진정한 허무주의자임을 많은 위대한 스승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 길 역시 남을 위한 봉사였으니 종교든 철학이든 결론은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깨달았다 해서 쉽게 죽어버리거나 멋대로 나풀대지 않고 지루하고 무거운 길을 긴긴 세월 살아갔던 석가는 진리란 남을 위해 노력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걸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인류의 큰 스승인 것이다.
세상을 잘 살아가는 세 가지 비결
일단 삶을 잘 사는 방법은 세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무조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생물학적 시각에서 봐도 인간은 46억 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뭉쳤을 때 생존했고 흩어졌을 때 절멸되었다는 사실을 유전자 속에 깊이 담아두고 있다.
따라서 남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가장 큰 기쁨과 의미가 오게끔 유전자 자체가 배열된 것이다.
또 하나는 내면의 세계를 가지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꿈도 있지만 정반대로 돈을 많이 안 벌고 대신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겠다. 그리고 남는 열정과 시간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쓰겠다는 사고법도 있다. 외면보다는 내면을 키우겠다는 것인데 현실을 보면 후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행복을 느끼는 걸로 보인다.
마지막 방법은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게 취미이든 행위이든 믿음이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찾아내 그것을 평생 간직하고 실행하며 이 거친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웠다
■ 작가의 말
세상이 아무리 거칠고 야욕이 넘치는 위험한 곳이라 해도 세상에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하여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난 도사
사람들은 오랫동안 도사라는 존재에 관심을 가져왔다. 도사의 이미지란 깊은 산속에서 하늘만 쳐다보며 앞일을 예측하는 은둔형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어리석음이 하나 없고 어떠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 일상형까지 다양하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특허는 없다
"특허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습니까!"
에드워드 머로 :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권자는 누구입니까?(Who owns the patent on this vaccine?)"
소크 박사 : "음, 사람들이겠죠. 특허는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Well, the people, I would say. There is no patent. Could you patent the sun?)"
1950년대 초, 온 나라에 소아마비 전염병의 위기가 닥쳤다.(in the early 1950's the polio epidemic hurled a nation into crisis.)
소아마비는 어린아이들이 대상이었다. 국가가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고심하자, 한 과학자가 이에 대한 답변인 백신을 전달했다.(polio targets children. desperate for a solution a nation rallied together a scientist answered the call and delivered the vaccine.)
소크 백신은, 소아마비 박멸을 위해 전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the salk vaccine is used worldwide to eradicate polio.)
미국의 의사이자 바이러스의학자로,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1] 또한 소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연구 결과에 대한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보급되는 소아마비 백신의 공급 단가는 단돈 100원에 불과하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소아마비 환자는 백신 출시 이전의 1% 이하 수준으로 감소했다. 소크 덕분에 인류는 소아마비의 공포에서 사실상 벗어났다.
또한, 얼마 뒤인 1961년에 생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앨버트 세이빈(1906~1993)과의 마찰로도 유명하다. 세이빈은 말년까지도 소크를 좋게 보지 않았다.
영월의 젊은 애들
병원에서는 요즘 사람들의 나이에서 20년 정도를 거슬러 70대는 50대 신체로, 60대는 40대 신체로 본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었다는 건 의식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젊은 신체를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이날 이후 나는 내 나이를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아직 60대라 젊은 애들 축에도 못 낀다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그날의 33런병대원들
나는 이들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민주화를 위해 아무도 몰래 크나큰 희생을 치른 수없이 많은 무명의 민주 열사가 있음을 알고 있다. 비록 어딘가에 기록되지도 유공자로 선정되지도 않았으나 아무도 몰래 자신을 던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웃음띤 얼굴로 이 자유로운 나라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가노 센세이
교수님의 눈물 섞인 설명이 끝나고 난 후 우리는 잔을 들어 그분께 건배했다. 그날 이후 나가노 센세이는 내 가슴속에서도 은사님으로 자리 잡았다.
맹사장
이후 나는 맹사장 집에서 있었던 이 일화를 많은 사람에게 전했는데 남녀 불문하고 맹 사장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때난 후 맹 사장이 부인에게 매을 맞았을 거라는 희망 섞인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나는 그 인사가 내가 남의 집을 방문해서 받았던 일생의 모든 인사 중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그들 가족의 행복을 빌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얼굴
호스피스란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이 편안하고도 인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돌보는 활동을 하는 분들로 이런 분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로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고 힘들어도 이런 분들이 있는 한 희망의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쌍용식당
멀어져 가던 세 사람의 작업모가 나의 망막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아지랑이 같은 것이 눈가에 잡히는 듯도 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태양과 어머니만이 영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해인사의 고승
"저는 이 절 사람이 아닙니다. 당분간 이 절에 와서 밥을 얻어먹고 있는데 눈치가 보여서 귀찮은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외관을 다 차려입고 밥 먹으러 갑니다. 이 절 사람들이 밥이나 얻어먹는 주제에 자기네처럼 간편한 복장으로 다니면 무척 싫어하거든요."
말하는 도중에 종이 울리기 시작했는데 그가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빨리 가야만 하겠습니다. 저 종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인데 시간을 놓치면 굶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점심 한 끼 굶으면 저녁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근 말을 다 마치지도 않은 채 합장을 하는 둥 마는 둥 종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쫓기듯이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나는 잠시 그의 황망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알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걸 느끼고는 나도 몰래 두 손을 올려 합장했다.
처절하도록 진실했다. 자신을 완전히 버릴 수 있어야 얻는 솔직함이었다.
이 진실이 팔만대장경의 어느 법어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서 노승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떤 두 사람
자기가 가진 돈으로 허름한 사나이를 유린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느라 그 프록코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한 뭐든 해줄 준비가 되어있을 프록코트 앞에서 비굴함을 내비치지 않으려 허름한 남자 또한 애썼을 것이었다.
나는 그 후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프록코트가 허름한 남자를 금전적으로 많이 도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그 대등하던 모습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수학 선생님
인간이 여타의 생물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학습의 유전에 있다. 인간은 자신이 익히거나 알게 된 걸 남에게 전달하고 다음 대에 이어줌으로써 긴긴 세월 지능을 키워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가르치는 것이고 모든 선생님들은 위대하기만 하다.
요즈음 교실에서 학생들의 온갖 조롱과 반항과 심지어는 폭력까지 겪으면서도 이 가장 엄숙한 인류의 과업을 수행하는 선생님들에게 힘내시라 전하고 싶다.
대청봉 가는 길
"우린 속초에 살아. 설악산 단풍제 기간이라 동네 사람들끼리 올라왔지. 학생은 어디 서울서 왔는가?"
순간 위대한 할머니들 앞에서 나의 영웅적 과업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통도사 백운암
인간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구나.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구나.
그해 여름 나는 영취산 백운암에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밤 열 시에 잠들 때까지 참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읽었지만 매일 그 험한 길을 올라와 손바닥만 한 밭을 가꾸던 노부부의 모습에서 깨달았던 가르침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생각하며 산을 내려왔다.
굿바이 바이칼
불빛 하나 없는 드넓은 초원, 하늘 가장자리를 흐르는 은하수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밤,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별똥별 하나가 온몸을 태워 포물선을 그었다. 밤새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가 쉴 새 없이 귓속으로 밀려드는 바이칼, 그 아득한 시간의 저편에서 생겨나 갈라져 살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그 옛날의 전설을 되새김질하는 사이 시간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새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일본아, 같이 가자
"일본아, 같이 가자!"
놀랍게도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눈물이 핑 돌고 숨이 꽉 막히는 게······, 가슴이 먹먹해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축구는 보지도 않았어요. 축구는 문제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2 대 0으로 이겼는데 내 눈에는 한국 선수들이 걸어 다니는 걸로 보이더군요. 당시 한국은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일본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연파해야 본선에 진출하는 거였어요. 그때 나는 확연히 느꼈어요. 한국이, 한국인들이 저기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우리 일본을 훨씬 사랑한다는 걸료."
나는 양국 간 반일, 혐한 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그를 떠올리곤 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
"My friend's enemy is my enemy.(내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지요.)"
역사 속 이야기를 찾아서
■ 작가의 말
역사는 이미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가는 삶의 여정이다.
돌아오라, 몽유도원도
우리는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누구인들 일본의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국모를 살해한 후 능욕하고 그 시체까지 불태운 행위에서 시작해 식민지배, 정신대, 강제 징용에 이르는 역사를 마주하고 싶을까. 그래서 우리는 조상을 원망하는 습관이 배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역사의 책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문화재 회수는 이제 먹고 살 만한 형편이 된 현세대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조상님들은 온몸을 다 바쳐 오천 년의 가난을 극복해 주지 않았는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내 조상의 탓이라고 그저 외면하고 마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함흥차사
자식 간의 골육상쟁을 보기 싫어 세상을 등진 왕이 찾아오는 옛 친구를 모조리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 혹은 아버지를 경계하여 유폐한 자식이 패륜을 가리고자 지어낸 이야기. 후대에까지 몇 번이나 고쳐졌다는 이 이야기의 진실이 어느 쪽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한국인의 정체성
우리는 전 세계에 목청 높여 인류사에 대한 한국 문명의 기여, 무엇보다도 그 문물의 기지에 깔린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정신을 세계에 알려야만 한다. 스스로 절실한 노력 없이 남들이 알아서 대접해 주기를, 우리를 대신해 외국의 학자들이 오롯이 밝혀내어 공정히 알려주기를 기대하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무엇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에조 보고서
일본 의회 도서관 헌정 자료실 이토오 백작 문고에 가면 에조 보고서라는 게 있다. 1895년 경복궁 내의 건청궁 옥호루에 일본 낭인 수십 명이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의 전모를 기록한 이 보고서는 사건의 예비에서부터 실행까지 소상하게 기록한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에조(英臟) 보고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중략…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 같은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로 시작되는 에조(英臟) 보고서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발생 71년 만인 1966년 한 일본인 역사학자에 의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그 동안 역사학계 일부에만 알려져 있었다. 이 보고서에 의거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하여 '능욕(凌辱)'과 '시간(屍姦)'의 근거가 됐으나, 그 존재만 알려져 있었을 뿐 전문(全文)이 국내에 입수되거나 공개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2002년 작가 김진명씨가 끈질긴 추적 끝에 찾아냈다. 이 문서의 전문을 살펴보면 근대 일본의 기초를 형성한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이 명성황후를 강간한 후 살해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못해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한다.
◆ 에조는 누구인가
이시즈카 에조(石塚英藏 사진)는 일제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할 당시 현장에 있던 20대의 젊은 조선정부의 내부(요즘 내무부)고문관이었다고 한다. 조선정부 내부고문 직책이란, 그가 조선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거나 관복을 입고 입궐한 정식직책이 아니라 당시 일제가 조선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던 때라 일본인들이 명목상 가지는 직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1988년 <민비암살(閔妃暗殺)>을 발간한 일본의 전기작가 쓰노다 후사코 (角田房子)여사도 에조를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다.
명성황후 시해에 성공한 일제는 1895년 10월 8일 오전 9시 20분. 주한 일본공사관 수비대 소속 니이로(新納) 해군 소좌는 본국 육군참모부에 '국왕무사 왕비살해(國王無事 王妃殺害)'라는 문구에 '극비(極秘)'라는 붉은 낙인이 찍힌 전문 한 장을 보냈다. 그것은 일본 정부에 명성황후 시해 성공을 알린 공식적인 라인을 통한 보고서였다.
그러나 이시즈카 에조(石塚英藏)는 1895년 10월 9일. 을미사변이 터진 바로 다음날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고 조선에 들어오기 전 "법제국 참사관"을 지낸 관계로 전직 상사인 법제국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末松謙澄)에게 별도로 장문의 비밀보고서를 보냈다. 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현장 총지휘자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조선주재 일본공사의 재가를 받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현재 "일본국립국회도서관(國立國會圖書館) 헌정자료실(憲政資料室) <헌정사편찬회문서 (憲政史編纂會文書)>"에 보관 중으로 (1)발단 (2)명의 (3)모의자 (4)실행자 (5)외국사신 (6)영향 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는 6개의 장에 목차와 서문을 포함해 모두 12쪽 분량이다.
에조보고서는 역사조작. 역사모르쇠 지향주의 일본의 정식보고서와 달리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원인과 발단에서부터 실행자와 사후 대책까지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가 김진명씨는 따라서 에조 보고서는 철저하게 일본의 입장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조사하고 재판한 '우치다 보고서'나 '히로시마 법정기록' 등과는 성격이 다른 미우라 공사의 책임과 처벌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다시 말해 사후에 은폐되고 조작됐다는 의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유일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마베 겐타로의 『일한합병소사』
공자의 고뇌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끊임없이 문명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 또한 다양하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고 도전과 응전이라는 나름 멋들어진 비유도 있다. 어떤 대답이든 말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역사는 사건을 표본 그대로 남겨두지 않는다. 크고 작음도, 형태도, 색깔도, 때로는 앞뒤마저도 시각과 주체에 따라 제각기 다른 기록으로 남는다.
화하만맥 망불솔비
華夏灣貊 罔不率婢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니) 한족 동이족 할 것 없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양녕대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방원이 자신의 아버지 이성계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나는 양녕이 아버지 이방원에게 뭘 잘했느냐고 대들고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만 나가겠다 선언한 데서 대략 그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가치로 배웠던 효를 정면으로 기억한 아버지에 대한 반감, 그것이 조신했던 그를 파락호로 만들었고 결국은 폐위로 이어졌지만 다행히도 그 결과는 세종이라는 명군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역사의 이면을 생각해 보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1)
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新羅
왜이신묘년래 도해파백잔☐☐신라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뜨렸다.)
참모본부는 동경대학교 교수들을 비롯한 역사학자들을 불러 모아 이☐☐이 임나라는 내용의 이론을 세울 것을 강요했고 교수들은 여기에 충실히 협조하여 임나는 한반도에 있었다는 내용의 임나일본부론이 태어난 것이었다.
일본의 모든 역사 교과서에 실리게 된 이 임나일본부론은 매우 위험한 역사 왜곡이었다. 참모본부가 이 이론을 통해 일본 사회에 심고자 했던 사상은 정한론(征韓論)이었다. '한반도는 과거 우리 일본이 다스리던 곳이었다. 그러니 이제 가서 되찾자'하는.
이 정한론은 일본인들의 죄의식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한국을 침략하는 것이 정당화될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을 병합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의식을 모든 일본인의 머리에 심어주었고 이런 의식은 머잖아 실행으로 이어졌다.
일본인들이 아무 죄의식 없이, 혹은 애국심에 가득 차 한반도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처럼 역사 왜곡은 그릇된 의식을 심어 침략을 야기하고 미화하기 때문에 사실은 전쟁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이다. 전문가들이 지금 자행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리도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2)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백잔신라 구시속민 유래조공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우리 고구려의 속민이라 조공을 바쳐왔다.)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新羅 以爲臣民
이왜이신묘년래 도해파백잔☐☐신라 이위신민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
이육년병신 왕궁솔수군 토벌잔국
(그래서 영락 6년 병신년에 광개토대왕이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토벌했다.)
이것이 참모본부로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측 해석이다.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을 삼았다는 것이고 안 보이는 두 글자는 임나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3)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新羅 以爲臣民
이왜이신묘년래 도해파백잔☐☐신라 이위신민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渡海破 百殘☐☐新羅 以爲臣民
도해파 백잔☐☐신라 이위신민
(백제가 ☐☐ 신라를 침공하여 신민을 삼았으므로)
이렇게 띄어 읽어야 그 뒤의 왕이 몸소 수군을 거느리고 가 백제를 토벌했다는 문장과 전후 관계가 일치한다.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4)
百殘東☐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
(백제가 동쪽으로 신라를 ☐ 하여 신민을 삼았기에 왕은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가 백제를 토벌했다.)
본래 ☐☐이 원정이나 정벌, 또는 공격이나 침공 등의 단어일 것으로 예상하였던 것인데 '東'은 이런 단어들과 계보를 같이한다. 즉 동(東)이 들어감으로 인해 나머지 한 자는 침략할 침(侵)이나 칠 정(征)이나 칠 벌(伐), 엄습할 습(襲)과 같은 단어일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百殘東(侵)新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利殘國
(백제가 동쪽으로 신라를 침공하여 신민을 삼았기에 왕은 영락 6년 병신년에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가 백제를 토벌했다)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5)
역사의 공과란 꼬리를 맞물고 돌아가는가 보다.
김재규는 왜 남산을 버리고 육본으로 갔나 (1)
오세희는 본래 치안국 정보분실에서 근무하던 경찰 간부였는데 자신이 괴롭히던 정일권이 국무총리가 되는 날 바로 공항으로 나가 캐나다로 도주한 후 오랜 세월을 에드먼턴이란 도시에서 살아왔다. 그가 갖고 있는 녹음테이프란 자신과 쟌 천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진 전진한과의 통화 내용을 틈틈이 녹음할 것이었다."쟌 천 중령. 10 · 26 당시 주한미군 정보공작 책임자로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10월 28일 전역원을 냈고 일주일 후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군 정보공작 책임자가 10 · 26 이틀 후 전역원을 냈다는 사실은 나의 흥미를 극도로 자극했다. 전진한과 오세희는 한국에서 형 동생 하는 사이였는데 세월이 흘러 오세희는 캐나다에, 전진한은 캘리포니아에 살게 되었던 것이다. 오세희는 전진한이 취했을 때를 노려 종종 전화를 걸었고 대화 사이사이 집요하게 10 · 26의 전말에 대해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전진한의 입에서 박정희는 미국이 죽였다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전진한을 만나기로 마음먹은 다음 오세희와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김재규는 왜 남산을 버리고 육본으로 갔나 (2)
거사 직전 김재규의 귀에 이렇게 속삭인 스티브는 막상 사건이 터진 날 밤 오산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미군 군용기에 몸을 실었으며 김재규는 전두환에 의해 체포되었다.
"우리는 육사 11기를 스타디 했어."
전진한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CIA는 결코 김재규를 박정희 이후 나라를 끌고 갈 재목으로 보지 않았으며 김재규의 역할은 거기까지라는 뜻이리라.
이후 잇달아 대통령이 된 전두환과 노태우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육사 11기이다.
최근 비밀 해제된 미국 외교 문서를 보면 그들이 계엄 치하에서 정승화 계엄 사령관을 체포했을 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을 때, 전두환 방미를 성사시켰을 때 일관되게 블루스터 주한 CIA 지국장을 비롯해 글라이스틴 대사, 위컴 사령관 등의 비호와 지지를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김재규는 왜 남산을 버리고 육본으로 갔나 (3)
ㅡ 미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암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특별명령 11905)
소련 및 중공과의 체제 대결에서 도덕성을 전가의 보도로 삼던 미국으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1976년 단호히 이런 선언을 한다. 그런데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행정 명령은 오 년 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글자 한 자 고쳐지지 않은 채 다시 선포된다.
왜 그럴까. 왜 이런 부끄러운 명령이 반복되어야만 했을까. 형식 논리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논리는 1976년과 1981년 사이에 외국의 원수가 암살된 일이 있고 그 암살에 미국의 공무원이 관여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기간에 암살된 외국 정부의 지도자는 단 한 사람,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 작가의 말
현재만 좇는 것은 자아를 상실하는 길일지 모른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이 과거를 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장의 이익이 아닌 옛 공간과 언약에 진지해지기를.
덕수궁 돌담길
나는 지금도 계절이 바뀌는 무렵이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려 한다. 성공회 건물들, 정동교회, 이화여고··· 작은 것이든 희미한 것이든 여기에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보다 과거가 재미있다.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숙제를 무사히 마치면 상으로 받는 이야기 한 토막이 바로 과거니까. 가끔 꺼내어 읽는 과거야말로 그 어느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남은 삶을 충실히 다 살아가거든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가 남을지, 가끔 그런 기대를 할 때엔 한 페이지의 삽화에 덕수궁 돌담길을 넣어본다.
『싸드』
제천을 아시나요
수려한 경관과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물, 고원에 부는 바람, 일상 한가운데 늘 푸르게 떠 있는 의림지, 복잡한 서울 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부초마냥 떠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
"제천을 아시나요?"
나는 왜 『고구려』를 쓰는가
나는 우리 한국인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먼저 고구려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일념에서 『고구려』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중국이 우리 고구려를 빼앗아 가니 억지로라도 읽어달라는 말은 정말로 하기 싫었고 깊은 고뇌 끝에 『삼국지』보다 재미있게 쓰겠다는 다짐을 독자들에게 했다.
이 다짐에 어째서 그토록 깊은 고뇌가 필요했는가 하면 『삼국지』가 워낙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필된 걸 고려하면 혼자 짧은 시간 동안 과연 해낼 수 있는 일인가 하는 당연한 의심에서 헤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 작가의 인터뷰
"지식은 지식 그 자체로는 우리 삶에 잘 녹아들기 어려워요. 특히 우리나라는 많은 지식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외국에서 왔거든요.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이 불행하죠.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지식 기반이 유교 등 비과학적인 가치에 집중돼 있었으니까요.
외국에서 가져온 지식은,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익숙지도 않고, 우리나라에 딱 맞지도 않아요. 가령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외국에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도 똑같이 하자’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지식을 가져왔는데요.
이러한 지식 사이에는 우리만의 사색이 있어야 했어요. 우리가 살아온, 생각해온 방식과 외국에서 들여온 지식을 녹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했죠. 우리 한국 사회가 지식은 있지만 이러 한 사색이 부족해요. 제 소설이 새로워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에 저의 사색이, ‘한국인의 시각’이 결합했기 때문이겠지요."
- 2021. 01. 20 <독서신문>에서
김 작가는 지구인으로 사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짐승이나 벌레는 풍족하게 오래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지만 인간은 본능을 충족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능을 갖고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등 근원적인 의문을 풀어왔다"며 인간은 출세욕 · 식욕 · 승부욕 · 성욕 등 본능적 욕구를 채워 행복을 최종 목적으로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인간이 현재의 인류사를 이룬 것은 약육 강식이라는 본능 이상의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김 작가는 인생의 성공은 내적인 곳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지위 · 지식 · 재산 · 명성 · 권력 · 외모 · 인간관계 · 배경 등 외면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박 · 검소 · 정직 · 자아실현 등 내면의 것"이라며 "외면의 것은 열심히 노력해 남보다 많이 가지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적게 가지면 패자인 것처럼 느끼지만 많이 가졌다고 인생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외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면의 힘은 얻으면 얻을수록 자기 자신, 즉 자아가 점점 더 작아지고 결국 없어지게 된다" 며 "반면 내면의 힘은 알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가 점점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외면의 힘을 가진 최고 권력자나 부자 등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고 이들을 최고의 인간이라고 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라며 인류 역사상 가장 현명한 사람은 본능을 넘어선 인간의 의식을 분석하는 것에 매달리며 이타주의를 실천해왔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세상의 시각에서 벗어나고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산을 얼마나 얻는지 여부보다 더 위대한 것은 나의 희생으로 우리 이웃 또는 사회 · 집단 등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행복하리라는 이타적인 가치와 이상"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돈이 없고 못 배우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 2016. 06. 09 <매일경제>에서
"내가 쓰는 소설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란 여러 살람들, 서로 다른 조직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나는 그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뽑아내서 글로 쓴다.
사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각각의 분야에서 다루어져야 할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각 분야의 문화가 서 있지 않다 보니 내가 쓰는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구려』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빼앗아가니까 자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고, 『천년의 금서』는 우리나라의 한이 어디서 왔는가를 다룬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우리가 과거 핵개발에 어떻게 대처를 해왔고, 한반도의 핵을 두고 주변국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다.
모두 너무 중요한 문제다. 다른 사회 같으면 당연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루고 분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각 분야의 질서정연한 문화가 없다 보니 그 일을 내가 맡게 된 것이다."
- 2013. 07. 02 <채널예스>에서
『천년의 금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소설은 굉장히 자유로운 글이다. 모든 걸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작가 집단과 평단이 보는 소설은 협소하다. 주된 관심사는 문체와 문학적 향기다. 여기서 문학적 향기란 권력 · 횡포 같은 외부 자극에 방황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의 의식을 주로 다룬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소설 시장을 휩쓸고 있는 외국 작품들은 그것만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게 아니다. 그 안에 유머와 가치관 · 철학 때론 무가치관과 무철학 같은 여러 가지가 담겨 있다. 또 온갖 종류의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독자가 오히려 작가보다 더 수준 높은 상황이 됐다. 독자들이 모르는 게 없다. 그들에게 천편일률적인 옛날 얘기를 하는 건 책 읽기를 따분하게 만드는 거다. 지금까지 정도의 실력과 수준으로는 독자를 움켜쥐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 2015. 09. 23 <중앙일보>에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슬픔과 비극을 외면하고 있다. 상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사려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배려와 진지함이 사라진 공간을 매끄럽고 과시적인 대화들이 메우고 있다. 과시와 자랑은 넘치되 당신을 돕지는 않는다는 신호가 분명히 담긴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떤 진지함도 상실한 채 질투와 미움을 간신히 가린 경계선의 대화를 잔뜩 교환한다.
어떤 진지한 공감도 애정도 없는 일상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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