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나무]
고욤나무에 열매가 열려있는 모습. 감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매우 작아요. / 위키피디아
열매는 감이랑 비슷한데 크기가 훨씬 작고 씨는 많대요
가을에 수확한 감이 겨울철 곡감으로 말라갈 무렵, 숲속 가지 끝에 남아잇던 고욤나무 열매도 검붉은색으로 마르기 시작합니다. 고욤나무는 감나무와 같은 속 (屬)으로, 우리나라와 유라시아 대륙의 따뜻한 온대 지방에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고욤나무의 잎과 줄기, 나무 껍질은 감나무와 매우 비슷한데요. 여기까지만 봐서는 감나무와 구분이 어렵습니다. 열매와 꽃이 감나무보다 매우 작아서, 열매가 열리면 쉽게 구분할 수 있죠.
고욤나무의 열매는 어른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우리가 먹는 감을 작은 크기로 줄인 모양이에요. 과육에 비해 씨가 크고 많으며, 떫은 맛이 강하답니다. 예전에는 산촌에서 이 고욤나무 열매를 모아 감처럼 옹기 안에 넣어 숙성시켰다고 해요. 약용 (藥用)으로 많이들 먹었죠. 오늘날 고욤 열매는 중국과 터키,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과일처럼 재배되고 있습니다. 씨가 없는 품종을 개발해 식용 (食用)으로 먹고 있어요.
고욤은 가을철 숲속 동물들에게 아주 중요한 먹이가 됩니다. 새와 포유류들이 열매를 통째로 먹고 배설하면, 씨앗도 이들의 발자취대로 퍼지게 되죠. 이들이 멀리 이동할수록, 씨앗도 널리 퍼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비와 오소리가 고욤을 많이 먹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나무를 잘 타는 담비는 겨울철 나눗가지에 달랑달랑 달린 마른 고욤도 쏙 따서 먹는다고 해요.
고욤나무 목재는 감나무와 비슷합니다. 단단하고 썩지 않으며, 어두운 색상을 띠고 있어 고급 가구나 도구를 만들 때 사용합니다. 이런 특징은 감나무와 고욤나무가 포함된 감나무속의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예요.
전 세계에 약 200여 종이 분포하는 이 속의 나무 중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종은 '흑단' 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겉껍질은 흰색이지만 내부의 심재 (心材 · 줄기 중심부의 단단한 부분)는 검은색이죠. 검은 부분을 채취해 가공하면 연마했을 때 부드러운 광택이 흘러 장식용 목재로 인기가 높아요. 요즘은 야생에서 과도하게 벌채되다 보니 멸종 위기에 몰린 경우도 많다고 하죠.
고욤나무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에도 등장합니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볼까요.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사는 섬을 방문하기 전, 잠깐 작은 섬에 들릅니다. 이곳에서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은 로터스 열매를 먹고 모든 근심 · 걱정을 잊은 채 고향과 모험까지 망각하게 되죠. 이 로터스 열매의 실제 모델로 불리는 식물 중 하나가 바로 고욤 열매라고 해요. 우리나라에는 "고욤이 감보다 달다"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 "까마귀가 고욤을 마다하랴" 등의 속담이 있어요. 감보다 진한 맛, 작은 크기를 특징 삼고 있습니다.
김한규 위스콘신대 박사후연구원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