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1

드무2 2023. 3. 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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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1

 

 

 

 

 

 

 

 

 

 

 

 

 

역사관은 한국 현대사의 여정을 파노라마로 조명합니다.

전시는 민民이 주인임을 자각하고 근대적인 국가 만들기를 모색한 시기에서 출발하여 국민국가의 새로운 경계를 질문하게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시간대로 나누어 구성하였습니다.

1부 '자유, 평등, 독립을 꿈꾸며'는 1894년부터 1945년까지,

2부 '평화, 민주, 번영을 향하여'는 1945년부터 1987년까지,

그리고 3부 '나 ㅡ 대한민국 ㅡ 세계'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계사의 격랑 속에서 한국인들은 어떤 나라와 어떤 삶을 꿈꾸며 살아왔을까요?

여러분은 역사의 길을 걸으며 이 거대한 변동의 시간을 일궈온 평범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관 안내

 

1부 1894 ㅡ 1945

자유, 평등, 독립을 꿈꾸며

 

2부 1945 ㅡ 1987

평화, 민주, 번영을 향하여

 

3부 1987 ㅡ 현재

나 ㅡ 대한민국 ㅡ 세계

 

 

 

 

 

 

인류를 균등하게 헤아릴 것이니,

이는 우리가 나라를 세우는 기치이다.

대한독립선언서, 1919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1919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근본 강령이다.

형평사, 형평운동 취지문, 1923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세요.

방정환, 어린이날 선언문, 1923

 

 

 

한글이 목숨

최현배, 금서집, 193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헌헌법 제2조, 1948

 

 

 

전국 학령 아동의 전체가

고급 교육의 무료 수학이 완성되고

보통선거제도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 건국강령, 1941

 

 

 

 

 

 

민주화여!

영원한 우리 민족의 소망이여!

피와 땀이 아니곤 거둘 수 없는 거룩한 열매여!

광주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1980

 

 

 

잘못된 일을 단두대에 올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진실을 왕좌에 올린,

여성들의 이름을 기린다.

2000년 토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문, 2001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 1970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주 4 · 3기념식, 2003

 

 

 

오늘의 부족한 도, 실수하는 도, 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들려주세요.

방탄소년단 (BTS), 유엔연설문, 2017

 

 

 

1894 ㅡ 1945

자유, 평등, 독립을 꿈꾸며

 

 

 

근대국가를 향한

노력과 좌절

 

한국은 문호개방 이후 자주독립의 근대국가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민民은 개혁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1890년대 각계 각층의 세력들이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열강의 침탈에 맞서고자 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한국은 전쟁터가 되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을 점령해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과 차별을 겪어야 하였다.

 

1840 ㅡ 1871

유럽에서 근대 국가 수립

경쟁과 아시아 지역으로 팽창

 

1839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 발발

 

1861

중국 근대화를 위한

양무운동 시작

 

1868

일본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 개혁 시작

 

1895

일본 청일전쟁에서 승리, 대만

식민화, 중국에서 영향력 확대

 

1899

필리핀 독립을 위해

미국과 전쟁

 

1905

일본 러일전쟁에서 승리

 

러시아의 만주지역 이권 계승

 

 

 

 

 

 

 

 

 

 

 

 

근대국가를 향하여

한국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기술과 제도를 도입해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통치의 대상이었던 민은 근대개혁의 주체로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전봉준의 사진이 실린 일본잡지

1895년 5월 10일 발간된 <사진화보>이다. 서울 일본공사관에서 심문을 받던 전봉준이 1895년 2월 27일 법무아문으로 이송되기 직전에 무라카미 텐신이 촬영한 사진이다. 전봉준이 들 것에 태워진 것은 발에 중상을 입어서이다.

박맹수 기증

 

 

 

 

 

 

너의 성명이 무엇이냐?

    전봉준이오.

 

나이는 몇 살이냐?

    마흔 한 살이오.

 

···

작년 3월 동안 고부 등지에서 민중을 모두 모았다 하니

어떤 사연으로 그리하였노?

    그때 고부 수령이 정해진 금액 외에 가혹하게 거두어 들인 것이 몇 만 냥인 고로 민심이 원통하고 한스러워 이 거사가 있었소.

 

···

다시 동학 조직을 동원해 봉기한 것은 무슨 까닭인고?

    그 뒤에 들은 즉 일본이 개화라 칭하고 처음부터 일언반구도 민간에 전해 알림이 없고, 또 알리는 글도 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 도성에 들어와 밤중에 왕궁을 격파하여 주상을 놀라서 움직이게 하였기로 초야의 백성이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 사람과 싸워 이 사실을 한 차례 묻고자 함이오.

 

 

 

법무아문으로 이송되는 전봉준

 

 

 

 

 

 

<전봉준 공초>

1894년 12월 2일 전봉준이 체포된 후 1895년 2월 9일부터 3월 10일까지 5차에 걸쳐 진행된 신문 기록으로, 274개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농민군 최고 지도자 급에서 남긴 유일한 진술자료이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갑오개혁의 핵심기구인 군국기무처의 회의 모습

조석진, <군국기무소회의도> (1894)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하나. 이제부터는 국내외의 공문서와 사문서에 개국기년開國紀年을 쓴다.

하나. 문벌과 양반, 상인들의 등급을 없애고 귀천에 관계없이 인재를 뽑아 쓴다.

하나. 남녀 간의 조혼을 속히 엄금하며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세 이상이라야 비로소 혼인을 허락한다.

하나. 과부의 재혼은 귀천을 막론하고 자신의 의사대로 하게 한다.

하나. 공노비와 사노비에 관한 법을 일체 혁파하고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금지한다.

하나. 비록 평민이라도 나라에 이롭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의견이 있으면 군국기무처에 글을 올려 회의에 부친다.

대 조선 개극 503년 (1894년) 6월 28일

군국기무처 의안議案 중에서

 

 

 

인민들이 모이는 처소가 있어 여럿이 규칙 있게 모여

정제하게 만사를 토론하여 좌우편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적정한 의논이 공론이라 이런 공론하는 인민들이 있을 것 같으면

정부에서 일 하기도 쉽고 또 하는 일을 그르칠 이가 없는지라

독립신문 1898년 2월 24일

 

 

 

 

 

 

독립신문

1896년 창간된 최초의 민간신문이다. 정부가 창간비용을 냈고, 서재필이 주필이었다. 논조는 국민 계몽과 독립협회 활동의 지지였다. 쉽게 읽히기 위해 한글 전용에 띄어 쓰기를 하였다. 한국 사정을 알리기 위해 영문판을 발행하였다.

 

 

 

 

 

 

 

 

 

 

 

 

 

 

 

독립협회 안내문과 기부금 영수증

안내문은 독립협회를 소개하고 독립문 검립을 위한 기부를 당부하고 있다. 보조금, 곧 기부금 영수증은 1897년 1월 6일 독립협회 안경수 회계장이 금구군 조병식 군수에게 발급해준 것이다. 대조선국독립협회지장이 날인되어 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 연세대학교 박물관

 

 

 

 

 

 

미국와싱톤대한데국공사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사진 엽서

한국은 1882년 미국과 최초로 외교형정을 맺고, 1888년 워싱턴에 공사관을 두었다. 사진 속 건물은 1889년부터 공사관으로 사용되었다. 엽서는 1910년대 미국에서 사용된 것이고, 큰 태극기는 사진 위에 합성한 것이다.

 

 

 

 

 

 

 

 

 

<해상국가들의 깃발>

미국 해군성이 각국 군함과 상선에 달린 국기를 식별하기 위해 발행한 책이다. 1882년판으로 한국과 미국의 수호 조규 체결을 반영해 태극기가 실려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태극기 모습이다.

 

 

 

 

대한국 국제 大韓國 國制

제1조 대한국 大韓國은 세계만국 世界萬國의 공인 公認되온 바

자주독립 自主獨立하온 제국帝國이니라

1899년 8월 17일 공포

 

 

 

 

 

 

대한제국 해외여행장

대한제국 여권이다. 영어, 불어, 중국어가 함께 적혀 있다. 여권을 받은 안재창은 이튿날인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하여 다음해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EXPOSITION DE 1900

Pavillon de la Corée

 

 

 

대한제국관을 소개하는 프랑스 잡지

대한제국은 국제사회에서 근대국가로 인정받고 문화를 알리기 위해 1900년 4월에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에 참가하였다. 대한제국관을 궁궐 형태로 지어졌고, 도자기, 놋그릇, 신발, 의복, 비단, 서적 등이 전시되었다.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1902년 대한제국은 근대국가로서 위상을 높이고 국민의 애국심을 기르기 위해 애국가를 제정하고, 가사와 악보를 실은 소책자를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제국의 군악대 지휘자였던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하였다.

 

 

 

 

 

 

 

 

 

 

 

 

 

 

 

 

 

 

 

 

 

 

 

 

에릭손 전화기

스웨덴 에릭손 회사의 자석식 전화기이다. 오른쪽 손잡이를 돌리면 발전기가 회전해 신호를 전화교환기로 송출해준다. 1890년대에 궁내부에 처음 설치되어 사용된 것과 동일 모델로 알려져 있다.

 

 

 

 

 

 

 

 

 

 

 

 

서울 우체국 소인이 찍힌 엽서

대한제국은 1900년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해 다른 나라와 우편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표 중에 액수가 검은색으로 추가 인쇄된 것은 재고가 남는 우표에 수요가 많은 우표의 금액을 인쇄해 사용한 것이다.

주재욱 기증

 

 

 

 

 

 

 

 

 

 

 

 

안상덕에게 보낸 전보

1890년 11월 25일 전주에서 안치홍이 서울 곤당골 안상덕에게 보낸 전보지와 전보 봉투이다. 조선전보총국이 1888년 서울부터 부산까지의 전신노선을 가설하고 운영을 시작하자 일반인도 쉽게 전보를 보낼 수 있었다.

 

 

 

서대문을 통과하는 전차

 

 

 

 

 

 

 

 

 

 

 

 

한성전기회사의 전차 광고

한성전기회사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자본금을 출자해 1898년 설립되었다. 다음 해 5월부터 전차 운행을 시작하였다. 첫 노선은 서대문 경교에서 동대문까지이고, 같은 해 8월 청량리까지 연장되었다. 12월에는 용산선이 개통되었다.

 

 

 

 

 

 

 

 

 

관립영어학교 진급증서

1905년 이제로의 1학년 과정 수료와 진급 증명서이다. 교사 러쎌 프램톤의 서명이 보인다. 관립영어학교는 육영공원이 1894년 재편된 것이다. 이외에도 중어, 일어, 불어, 러시아어, 독어를 가르치는 관립 학교가 운영되었다.

 

 

 

대한제국 시위대의 훈련

 

 

 

 

 

 

 

 

 

 

 

 

 

 

 

대한제국 군인 혁대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버클에 새겨져 있다.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규정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는 1907년 곳곳에서 보낸 국채보상금을 총괄해 관리하는 단체이다. 사무소는 대한매일신보사에 두었다. 국채보상운동은 계몽운동이 지식인들의 테두리를 벗어나 일반 민중에게 큰 방향을 일으키는 계기였다.

 

 

 

 

 

 

 

 

 

국채보상금 모금 장부

1907년 국채보상금 모금 내역을 기록한 회계장부들이다. 단연상채회는 담배를 끊어 빚을 갚는 모임이다. 모금한 돈을 의금, 곧 의로운 돈으로 부르고 있다.

 

 

 

 

 

 

 

 

 

황성기독교청년회 학관 진급 증서

1909년 김종찬의 중학과 1학년 과정 수료와 진급 증명서이다. 황성기독교청년회 학관은 1903년 창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의 교육사업이고, 이상재가 제2대 교육부장을 맡으면서 본격화되었다. 현재 성동고등학교의 전신이다.

 

 

 

 

 

 

제국신문

1898년 창간된 한글전용 일간지이다. 초대 사장은 이종일, 주필은 이승만이었다. 민족적인 자주정신의 배양과 대중의 지식개발이라는 취지 아래 일반인과 여성을 대상으로 계몽을 내세우고 한글 전용을 고수하였다.

 

 

 

문 ▶ 민권당이 무엇인가

답 ▶ 민권당이라는 명색이 우리나라에는 본래 없는 것이니, 어떠한 모양을 정확히 말할 수 없고 늘상 외국에는 민권당이라는 사회가 있어 백성이 단체가 되어 정부의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잇으면 말도 하고 고치게도 하는 것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금한 법도 없고 설행함도 없느니라.

 

 

 

 

 

 

황성신문

1898년 창간된 국한문 혼용의 일간지이다. 대중의 지식계발과 외세침입에 대한 항쟁이라는 창간 취지 아래 발행되었고, 한자를 읽을 수 있는 식자층의 환영을 받았다. 사징은 남궁억, 주필은 류근, 박은식, 장지연 등이었다.

 

 

 

 

 

 

대한매일신보

1904년 영국인 베델 Bethell이 발행인으로 창간된 일간지이다. 양기탁이 총무, 신채호와 장도빈이 주필을 맡았다. 한글과 영문, 뒤에 국한문판도 발행하였다. 일제를 극렬히 비판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정신을 강조하였다.

 

 

 

 

 

 

<보감>

보감은 원래 경향신문의 부록인데, 이것을 별도로 묶어 책을 만든 것이다. 새로운 사상과 법률을 알기 쉽게 소개해 호응이 컸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1906년 한국천주교회가 창간한 순한글 주간지이고, 1910년 강제 폐간되었다.

 

 

 

 

 

 

<대한자강회월보> 창간호

1906년 설립된 대한자강회는 교육과 산업 진흥으로 국력을 키워 국권을 회복하려는 계몽운동 단체였다. 국채보상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고종의 강제 퇴위에 반대하자 통감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대한협회회보> 창간호

1907년 설립된 대한협회는 을사조약 체결 이후 가장 대규모 계몽운동 단체였다. 국권상실의 원인을 전제 군주제에서 찾고 국권회복을 위해 정치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정치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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