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3

드무2 2023. 3. 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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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3

 

 

 

 

 

 

 

주막에서 엿들은 이야기

1910년대 한국인 헌병보조원이나 순사가 주막에서 엿들은 사람들의 대화를 모아 일본어로 번역한 염탐보고서이다.

 

 

 

 

 

 

예전에는 양반이면 돈이 없어도 곤란하지 않았으나 이제 와서는 양반이나 상민이나 똑같다.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자제의 교육도 할 수 없다. 양반 신분도 지금에야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조선도 점차 개명하여 만사가 편리하게 된 것은 좋지만 모든 것을 규칙으로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개를 잡거나 소를 잡는 것도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내야하고, 또 도량형기도 반드시 관제품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관헌의 말로는 조선인을 지도계발한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식을 계발하는 원천인 학교를 폐쇄하고 교과 같은 것에도 제한을 두어 무수히 많은 내용을 삭제하였다.

 

 

 

 

 

 

조선인과 일본인은 같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지금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어떤 사건의 재판이 있더라도 조선인이 이겼다는 이야기는 여지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걸.

통역사가 다르게 통역하니까 어쩔 수 없지.

아무 생각 말고 술이나 마시는 게 제일이라네.

 

 

 

 

 

 

 

 

 

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땔감을 채취할 땅고 없고 살 돈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몹시 답답하다,

관청이 산림 단속도 적당히 하지 않으면 사람을 죽여서 나무를 살린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도로 보수와 청소 등의 부역은 모두 조선인이 한다.

이 때문에 장사도 못하고 세금도 낼 수 없다.

부역에 나가지 않으면 면 · 이장이 독촉하고, 나가지 못하게 되면 대역을 보내라고 채근한다.

사람을 고용할 돈이 있으면 내가 직접 나갔지.

 

 

 

 

 

 

이 주변의 토지조사도 끝난 듯하다.

이제부터 지세는 점점 오를테고 담배와 술에도 높은 세금을 붙일 것 같다.

인민들이 살기가 점점 어려워질 따름이다.

 

 

 

민의성장과 민국 선포

1919년 3 · 1운동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출발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은 자유와 독립을 외치며 만세시위를 벌였고, 곧이어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황제의 나라가 아닌 민의 나라가 되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며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지켜 내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1911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 수립

 

1917

레닌의 러시아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 등장

 

1918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종결

 

1918

독일혁명으로 바이마르공화국 수립

 

1919

아일랜드 독립전쟁 시작

 

1924

중국 국민당과 공산단 사이에 제1차 국공합작 수립

 

1930

인도 간디의 소금 행진

 

 

 

 

 

 

 

 

 

3 · 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끝나고 새로운 사회와 세계 질서가 모색되던 1919년 한국인은 독립을 선언하였다. 많은 이들이 만세 시위에 당당하게 참여하였으며, 때로는 고통과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주체적 참여 경험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갔다. 그러는 가운데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되었다.

 

 

 

고종 국장 전날 대한문 앞에 모인 사람들 <고종황제국장화첩>

 

 

 

 

 

 

 

 

 

 

 

 

태극기 목판

3 · 1운동 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목판이다.

독립기념판 복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여성이 작성한 독립선언이다. 여자도 다 같은 국민이고 양심을 가졌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작성 시점이 1919년 2월인데, 음력 2월, 곧 양력으로는 3월로 보는 견해가 있다.

독립기념관 복제

 

 

 

 

 

 

조선독립신문 42호

3 · 1운동 당시 등사기로 발간된 지하신문 가운데 대표신문이다. 1919년 8월 20일자로 현재까지 실물로 확인되는 조선독립신문 가운데 마지막 호수이다. 2009년 서울 진관사에서 건물 수리 중 발견되었다.

진관사 복제

 

 

 

함흥 3 · 1만세운동 주도자 조영신 장례식 / 독립기념관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의 담화문

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3 · 1운동 발발 뒤 발표한 세 번째 글이다. '일본 정부에 군대 파견을 요청했으니 일반인은 경솔히 불량배와 섞여 화를 입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완용의 경고문

이완용이 발행해 배포한 전단지이다. 3 · 1운동을 '선동, 거짓, 망동'이라고 평가하고, 이를 따라하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는 이 글을 1919년 4월 5일자 첫 면에 실었다.

 

 

 

 

 

 

 

 

 

등사판 독립선언서

1919년 3월 2일 연희전문학교 학생 정석해가 등사기로 찍은 선언서이다. 3월 3일 서대문 우체국에서 자신의 고향 평안북도 철산에 있는 유봉영 앞으로 발송하였고, 이를 간직한 유봉영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독립기념관 복제

 

 

 

 

 

 

기미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공표한 독립선언서이다. 선언서의 첫 문장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에서 '조선'이 '선조'로 글자가 바뀌어 인쇄되었다. 조판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이다.

 

 

 

현재 민족자결주의 아래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국의 자격에 따라 자유독립운동을 함은

                                                   국민의 당연한 책임이다.

이경호, 가죽가공업, 38세

 

산 자, 죽은 자가 함께

                큰 가뭄에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기다려 온 것은

                                       조선 독립의 네 글자이다.

서형욱, 농업, 43세

 

새장 속에 외로운 새가 새장을 열 때 기쁘게 날아감은 새의 본성인데

                          어찌하여 사람으로서 새보다 못 라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준겸, 미동병원 직원, 41세

 

우리는 여성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여 한국 만세를 부른다.

윤악이, 농업, 33세

 

내일 동지와 함께 조선 독립을 부르며 만세를 외칠 작정이다.

                                 그러면 바로 체포될 것이므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여 달라

이도상, 쌀장사, 30세

 

인권이 존중되는 이 시대에

                 자유를 박탈하고 생존을 압박하고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대우를 받으니

                                       불평을 견디지 못하겠고 독립사상이 스스로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다.

채덕산, 농업, 2세

 

만약 일본이 오늘의 조선의 상태를 맞이한다면

                                이 좋은 기회에 일본은 반드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지 않겠는가.

김승광, 학생, 21세

 

조선총독부 법원 판결문과 상고 이유서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 청사 / 경기도박물관

 

 

 

 

 

 

 

 

 

 

 

 

대한민국임시약헌

등록문화재 제549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7년 4월 11일에 공포한 제3차 개정 임시약헌, 곧 헌법이다. 1939년 15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 김봉준이 보관한 자료이고 앞표지에 적혀있는 김기원은 그를 달리 부르던 이름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61호

등록문화재 제550호

 

1936년 11월 27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국에서 발행한 공보이다. 국무위원과 상임위원회의 선출, 부서조직과 직원 임면, 임시의정원 회의경과, 임시정부 정무상황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大韓民國 臨時憲章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 民主共和制로 함

1919년 4월 11일 제정

 

 

 

1919년 제6회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회의기념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공채

1921년 4월 1일 재무총장 이시영의 직인이 찍혀 있는 공채이다. 이자는 연 5퍼센트이고, 지급할 때 공채 오른쪽 표에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원금 10원의 상환 기간은 독립 후 5년에서 30년 이내이다. 관련 규정은 뒷면에 적혀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연금 영수증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서재필 명의로 이희철에게 발급된 의연금 영수증이다. 구역, 지방, 성명과 함께 금액 26달러가 적혀 있으며, '공채' 부분이 '의연', 곧 기부로 수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시민증

미국 워싱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업무를 담당한 구미주차한국위원회가 1924년에 발행한 안재창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시민증이다.

 

 

 

 

 

 

 

 

 

<보병조전 초안>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가 1924년 발행한 군사훈련 교범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군사훈련과 독립군 양성을 위해 제작되었다.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지낸 윤기섭이 발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식민통치의 실상을 왜곡하는 것에 대응하고 3 · 1운동을 비롯한 한국 독립운동과 그 정당성을 국제연맹에 알리기 위해 1919년에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등록문화재 제395ㅡ1호 (복제)

 

김봉준 일가가 소장한 자료로 김봉준의 부인 노영재가 직접 바느질하여 제작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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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립영웅

독립운동가 스토리 영상 나의 독립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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