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념관 등

[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2

드무2 2023. 3. 9.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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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 ㅡ 역사관] 02

 

 

 

 

 

 

 

제국주의의 침략

일본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은 전쟁터가 되었고,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승인 아래 한국을 지배하였다. 한국인은 이에 맞서 저항하였다.

 

 

 

 

 

 

悉ク 殺戮 スべシ

모조리 살육할 것

일본 대본영 병참총감이 보낸 전보에서, 1894년 10월 27일

 

 

 

 

 

 

일본인이 그린 청일전쟁 판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군대를 파견해 조선의 왕궁과 서울을 먼저 장악하였다. 이 과정을 일본의 시각에서 그린 판화이다. 당시 전쟁 소식을 궁금해 하는 일본인을 위해 이와같은 판화가 많이 제작 판매되었다.

 

 

 

1904년 제물포역에서 출발해 서울 남대문역에 내린 일본군

 

 

 

 

 

 

정치 풍자화로 그려진 동아시아의 정세

 

 

 

 

 

 

"춤추는 한국인",

"이 나라 사람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조르주 비고, <그리스와 터키 화집> (1897)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또 다른 나라가

한국을 줄로 잡아당기고 있다.

 

 

 

 

 

 

 

 

 

"일본은 오히려 이 균형을

이용하여 테이블 위의 코리아를

조용히 독식하고 있다."

<클라데라다치 Kladderadatsch> (1894)

 

청일전쟁 시기 풍자화로 영국과 러시아가

탁자를 잡아당기고 있고, 일본은 탁자에

올려진 음식, 곧 한국을 먹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대포 사이에 있는

불쌍하고 커다란 중국"

<미네아폴리스 트리뷴 Minneapolis Tribune> (1904)

 

러일전쟁 직전 시기 풍자화로

중국이 만주와 한국이라고 적혀있는 양손으로

자신을 향한 대포를 힘겹게 막고 있다.

 

 

 

 

 

 

 

 

 

조르주 비고의 풍자화가 실린 엽서 (1902)

 

영국은 일본에게 러시아와의

싸움을 부추기고,

미국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러일전쟁에 이르는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압축한 그림이다.

 

 

 

 

 

 

 

 

 

 

1904년 군용철도 파괴죄로 일본군에 의해 처형되는 김성삼, 이춘근, 안순서 / 눈빛 아카이브

 

 

 

 

 

 

 

 

 

러일전쟁지도

러일전쟁이 진행 중인 1904년 5월 30일 일본에서 발행된 지도이다. 일본 군함의 이동경로와 전투위치를 볼 수 있다. 한반도에는 경의선과 공사 중인 경부선, 그리고 한복을 입고 일본 국기를 든 사람을 그려놓았다.

 

 

 

 

 

 

 

 

 

러일전쟁 주사위 놀이판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서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1905년 1월 1일자 부록으로 제작한 것이다. 러일전쟁의 전개과정과 관계자들, 그리고 전투의 승리에 기뻐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총 22개의 삽화로 그려져 있다.

 

 

 

 

 

 

 

 

 

의병부대 / 독립기념관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맥켄지, <한국의 독립운동 Korea's Fight for Freedom> (1908)에서

 

 

 

 

 

 

<남한폭도 대토벌 기념사진첩>

일본의 시각에서 의병을 '폭도'로, 전라도를 '남한'으로 부르며 진압을 기념하고 있다. 일본군 기록에서 1906년 5월부터 1911년 6월까지 의병 사망자는 17,779명이다. 민간인 피해자 수는 집계된 바 없다.

 

 

 

 

 

 

일본의 남한대토벌 작전에 의해 체포된 호남지역 의병장들 / 눈빛아카이브

 

 

 

뒷줄 왼쪽부터 황두일, 김원국, 양진여, 심남일, 조규문, 인규홍, 김병철, 강시문, 박사화, 나성화

앞줄 왼쪽부터 송병운, 오성술, 이강산, 모천년, 강무경, 이영준

 

 

 

 

 

 

 

 

 

포고천하문

1896년 재야 유림 곽종성이 대표로 일본의 침략을 규탄하기 위해 주한 각국 공사관에 발송한 포고문이다. 구미 열강의 도움을 청하는 외교적 방법을 취했다는 점에서 당시 유림의 다양한 대응을 보여준다.

 

 

 

지금은 천하에 공법을 두어 만국이 함께 쓰고 있으니

반드시 천하를 위하여 흉악한 이들 凶逆을 토벌하여

임금은 임금 되고 신하는 신하 되게 해야 할 것이거늘···

아! 지금의 천하 만국은 다 일본만 알고 말 것인가?

이른바 공법이라는 것도 역시 천하의 반역하는 신하 逆臣 다음으로

제 나라를 팔고 그 이익을 먹은 것을 떠받드는 것입니까?

 

 

 

 

 

 

국가안위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

보물 제569ㅡ22호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것이고 '국가안위 노심초사'는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뜻이다. 오른쪽 위에 있는 글, '증안강검찰관'에서 뤼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에게 준 것을 알 수 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복제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며

극동의 평화에 직접적으로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1905년 7월 가쓰라ㅡ태프트 각서

 

 

일본은 한국에서 정치상 · 군사상 · 경제상의

특별한 이익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국은 일본이 이 이익을 옹호 증진하기 위하여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 관리 감독 · 보호 조치를

한국에서 취할 권리를 승인한다.

1905년 8월 제2차 영일동맹

 

러시아는 일본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 전달한,

현재 유효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협약 및 조약에 의거한

양국의 정치적 유대 관계를 인정하며,

한일 양국 관계의 추후 발전에 있어서 어떠한

간섭이나 방해도 하지 않기로 한다.

1907년 7월 제1차 러일조협약

 

 

 

 

 

 

식민 지배 체제

일본은 1910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총독부를 정점으로 하는 통치기구와 억압적인 법령으로 지배하였다. 한국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과 차별을 겪으며 살아가야만 하였다.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할 뿐 다른 뜻은 없다. ···

함부로 제멋대로 망상하여 감히 통치를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의 담화문

1910년 8월 29일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이 식민 통치의 시작과 그 방침을 알리는 글이다. 세금 감면, 병원 설립, 도로 철도 건설, 협력자에 대한 특별 대우 등으로 한국인을 회유하면서 저항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있다.

 

 

 

 

 

 

 

 

 

한일병합조약문

1910년 8월 22일 이완용 내각총리대신과 데라우치 마사다케 통감이 서명한 한국병합에 관한 협정문이다. 이 조약의 체결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완용은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이름을 남겼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복제

 

 

 

 

 

 

 

 

 

순종황제의 칙유

1910년 8월 29일 순종황제가 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기는 것을 알리는 글이다. 순종이 서명과 국새 사용을 거부하자 통감부가 칙유의 형식으로 날조해 발표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조선총독부 조직과 관료 명단

1912년 당시 식민지 통치기구와 이에 참여한 고위 관료의 명단을 볼 수 있는 표이다. 다양한 기관과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훼손되는 경복궁 / 눈빛아카이브

 

 

 

 

 

 

조선신궁

 

 

 

 

 

 

조선은행 / 부산박물관

 

 

 

 

 

 

 

 

 

조선총독부

 

 

 

 

 

 

경성재판소 / 부산박물관

 

 

 

서울의 제1헌병분대원 / 눈빛아카이브

 

 

 

서대문형무소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대구감옥 내부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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