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명화 돋보기

[門이 등장하는 작품들]

드무2 2023. 5. 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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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이 등장하는 작품들]

 

 

 

① 도러시아 태닝, '밤의 소곡 (小曲)', 1964. ②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실내', 1908. ③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잠든 여인', 1657년경. ④ 에드가르 드가, '분장실에서의 무용수', 1880년경.

 

 

 

호기심 자극하는 門··· 속마음 표현하고, 건너편 상상케 해요

 

 

 

그림 틀 활용, 들여다보는 느낌 줘

최근 개봉한 日 애니메이션에선

이곳과 저곳 구획하는 경계 뜻해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주인공 소녀의 눈에는 보이고,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문이 등장합니다. 지진이나 쓰나미를 일으키는 괴력의 덩어리가 갇혀 있다가 그 문을 통해 빠져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잠가둬야 하는 문이죠. 우연히 그 문의 비밀을 알게 된 소녀, 스즈메는 일본 곳곳에서 갑작스레 일어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잠그려 뛰어다닙니다. 이영화에서처럼 문은 이곳과 저곳을 구획하는 경계이고, 여기에서 저기로 넘어서는 입구를 뜻하는데요. 무니 등장하는 다양한 그림을 통해 좀 더 자세한 의미들을 파헤쳐 보기로 합시다.

 

"상상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작품"

"내 작품은 상상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는 것이에요. 관람자가 볼 때마다 매번 뭔가 다른 걸 볼 수 있도록 말이죠."

1940 ~ 1950년대에 실내의 열린 문을 주제로 그림 여러 점을 남겼던 미국 화가, 도러시아 태닝 (1910 ~ 2012)이 했던 말입니다. 태닝은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게일즈버그에서 태어나 17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어요. 화가의 기억에 따르면, 교회와 영화관 외에는 갈 곳이 없고, 변화도 거의 없는 마을이었다고 해요. 심심하고 답답할 때마다 태닝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장소에 대해 상상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상상 속에는 늘 어떤 곳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대요.

<작품 1>은 '반의 소곡 (小曲)'이라는 태닝의 그림인데, 화면 오른쪽에 그려진 맨 마지막 문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 살짝 열려 있어요. 그곳에서 눈부시게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왼편에는 두 소녀가 복도에 서 있는데 밤에 기숙사에서 잠자던 중 꿈속 상태 그대로 걸어 나온 듯 보여요. 바닥에는 노란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놓여 있는데, 눈을 감은 두 소녀를 향해 손을 뻗듯 꿈틀꿈틀 넝쿨을 뻗고 있네요. 곧 두 소녀는 이 해바라기 넝쿨에 이끌려 열린 문 바깥으로 나가 꿈속을 여행하다가 돌아오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 문은 꿈나라로 향하는 문이겠군요.

문은 마음에도 있나 봐요. 가끔 '마음의 문을 열다'라는 말을 쓸 때도 있잖아요. <작품 2>는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1864 ~ 1916)가 그린 여인의 뒷모습입니다. 이 여인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데, 옆의 둥그런 탁자에 책이 한 권 놓여 있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독서를 하던 중이었나 봐요. 여인의 바로 앞에 열린 문이 있고, 그 문보다 깊숙한 안쪽에도 문이 열려 있어요. 문들로 중첩된 이 공간은 마치 여인의 마음속처럼 느껴집니다. 마음속에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열려 있고 열린 틈새로 햇빛이 들어옵니다.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림 속의 이 여인은 차분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인 것 같아요.

하메르스화이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데, 자기 집 내부를 자주 그렸어요. 뒷모습의 주인은 화가의 아내랍니다. 그의 작품은 화가가 살아있을 적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죽은 지 몇 십년이 흐른 후에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를 계승한 화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뒤늦게 주목을 받고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페르메이르는 조용한 실내를 그린 그림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요.

 

문, 구획의 도구

<작품 3>을 보세요. 페르메이르의 이 그림 속 여인은 하메르스회이의 그림과는 방향이 반대로,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며 앉아 있어요. 집안의 안주인인 듯 보이는 여인은 식탁에 앉아 가족을 기다리다가 손에 얼굴을 괴고 깜빡 잠이 든 모양입니다. 여인의 등 뒤로 문이 있고, 조금 열린 사이로 거실이 살짝 보여요. 아직 누구도 집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으니, 그녀의 낮잠은 방해받지 않겠군요.

이렇듯 그림에 문을 그려 넣으면 캔버스라는 네모 틀에 인물을 가두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화면을 두 개의 공간으로 구획할 수 있고, 화면 안쪽으로 깊이 있게 확장시킬 수도 있거든요. 또한 관람자에게 문 건너 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게 하는 즐거움도 주지요.

그림 안에 다른 방으로 가는 문이 있는게 아니라, 아예 그림의 틀을 문으로 활용한 작품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 (1834 ~ 1917)가 그린 '분장실에서의 무용수' (<작품 4>)를 볼까요?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발레리나가 옷매무새를 다듬는 현장이 보입니다. 문으로 인해 공간이 안쪽과 바깥쪽으로 나뉘었어요. 문 저편의 안쪽에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발레리나가 있고, 우리는 문 바깥쪽에서 그녀를 슬며시 들여다보고 있어요.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공연자는 그저 무대 위의 인물일 뿐,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어요. 그러나 드가는 무용수가 무대 바깥에 있을 때의 모습과 행동까지 화면에 담아 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극장의 특별회원이던 친구의 도움으로 드가는 무대 뒷문으로 출입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분장실에서의 무용수'처럼 문 뒤에 서서 몰래본 듯한 그림을 남길 수 있었던 거죠.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 · 구성 = 안영 기자 (anyoung@chosun.com)

 

[출처 : 조선일보 신문은 선생님 2023년 3월 27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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